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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Aug 26. 2024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 기억되는 삶

기억되는 행복

5월 15일 스승의 날이다. 올 스승의 날은 석가탄신일과 겹쳐 어린이집도 쉰다. 천둥 번개에 많은 비 예보도 있지만 혹시나 졸업생 친구 중 누군가 찾아와 헛걸음이라도 할까 싶어 아무런 계획도 잡지 않았다.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처음에는 스승의 날 부모님의 손을 잡고 찾아와 주던 졸업생 친구들이 이젠 자기들끼리도 종종 찾아와 준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자꾸 핸드폰에 눈길이 간다. 매년 스승의 날이면 어린이집으로 찾아왔던 졸업생들이 혹시 어린이집에 들렀다 내가 없으면 전화라도 할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오전이 다 지나도 전화벨은 울리지 않는다. 혹시 오후에라도 어린이집에 들르려나 싶어 어린이집으로 나갔다.

  

 지난해 스승의 날에는 졸업생 친구 대여섯 명과 아버님들까지 함께 찾아와 저녁으로 중국 음식도 시켜 먹으며 아빠들과 아이들만 참석했던 “아빠 어디 가?”와 아빠들의 육아 상식을 퀴즈로 풀어 본 “아빠 골든벨” 이야기며 지난 추억으로 아름다운 이야기꽃을 피웠다. 부모님들과 어린이집 원생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는 소리를 들은 우리 친구들은 어린이집 홍보 안내문을 손수 만들어 어린이집 현관문에 여러 장 붙여 놓고 갔다. 가끔 커피나 음료수를 들고는 동네 사랑방처럼 오가는 졸업생들과 그 부모님들이 계셨기에 더 기다려진다. 올해는 어린이집 쉬는 날이라서 인지 어린이집으로 찾아오는 졸업생 친구가 없다. 은근히 기다렸는데 졸업생에게 잊히는 것 같아 쓸쓸한 마음이다.

    

오지 않는 졸업한 제자들을 기다리며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 생각이 난다. 가끔 안부 전화라도 드리면 반갑게 대해주는 선생님이시다. 찾아뵙지는 못했지만 얼마 전 초등학교 친구들과 여행 가서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놀던 모습을 글로 쓰고 읽어 녹음했다. 그리고 놀면서 친구들과 찍은 재미있는 사진과 동영상을 골라 “스승님 스승의 날 축하드려요. 며칠 전 친구들과 요렇게 놀다 왔어요” 하고 카톡으로 보내드렸다. 카톡을 확인하신 선생님께서는 “그래 참으로 보기 좋구나! 사진과 동영상 생생한 글까지 너희들과 함께한 것처럼 웃으며 행복하게 잘 들었다. 더 늙어 꼬부랑 할머니가 되더라도 그 우정 변치 말고 잘 이어가기를 바란다. 고맙다” 하는 답을 주셨다. 선생님의 답을 받고 보니 카톡을 보내면서 오글오글 민망한 마음에 망설였었는데 잘 보내 드렸다 싶다. 내게도 훌쩍 자란 졸업생들이 항시 세 살 네 살 아가로 보이듯이 우리 선생님께서도 우리가 그저 철없는 6학년 생으로 마냥 귀엽게 보일 것이다.

   

어린이집을 졸업한 친구들이 “선생님 보고 싶어서 왔어요.” 하며 가끔 지나는 길에 찾아주고 자기들끼리 놀다 내 생각이 났다며 “선생님 우리 이렇게 많이 컸어요” 하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준다. 그럴 때마다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것과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 모습에 고맙고 반가웠다. 그리고 어린이집에서의 소중한 인연으로 아름다운 우정을 쌓으며 서로 잘 지내는 모습도 흐뭇하고 뿌듯했다. 우리 선생님께서도 오래된 제자들이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말씀하신다. 더욱이 우리가 오래도록 우정을 지키며 서로 잘 지내는 모습이 흐뭇하신 마음이란 걸 선생님과 카톡을 나누며 알게 되었다. 올 스승의 날은 찾아와 주는 제자들 없이 잊혀가는 쓸쓸한 마음이다. 옛 스승님께 글과 사진, 동영상을 보내드리고 선생님께 받은 답을 친구들의 카톡방에 퍼서 옮기며 선생님과 함께했던 지난 추억으로 폭풍 수다를 떨며 쓸쓸함을 달랬다.

  

 다음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출근했다. 이른 시간 어린이집 벨이 울린다. 의아한 마음으로 문을 여니 해마다 찾아와 주는 졸업생 친구 네 명이 일렬로 서서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를 한다. 어제는 쉬는 날이라 원장 선생님 귀찮게 하는 것 같아 안 오고 오늘 등굣길에 잠시 들렸단다. 각자 쓴 손 편지와 손수 만든 카네이션을 전해주고 재잘거리며 바쁘게 등교하는 뒷모습을 보며 코끝이 찡해온다. 어제 잠시나마 들었던 서운했던 마음은 씻은 듯 사라진다. ‘그래 너희들은 나를 잊지 않았구나! 고맙다.’란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점심 식사 후 선생님들은 각자 자기 반에서 아이들과 쉬고 있다. 벨도 누르지 않고 현관문이 쓱 열린다, 깜짝 놀랐다. 졸업생 성진, 성아 남매의 아버님이시다. 말없이 씩 웃으시며 비타오백 한 상자를 툭 건네주신다. “웬일이세요?” 하고 물으니 “그냥 쉬는 날이라 왔어요” 하고는 돌아서 나가신다. 가끔 그렇게 불쑥 찾아와 커피나 음료를 건네고 가시는 아버님이시다. 올해도 잊지 않음에 감사하고, 고맙다. “누군가 잊지 않고 기억해 준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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