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ir Jul 02. 2024

아픔을 닮아버린 나 5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내며 엄마가 되고 있었다.

 한겨울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동네 스카이라운지에 있는 카페에 나갔다.

내 생각과 전혀 다른 분위기에 그 여자손님은 남자 셋과 함께 있었다. 왜 그렇게 까지 해서 나를

그 자리에 불렀는지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그 자리에 합석을 했다.

창가 쪽 앉은 한 남자는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고 그 옆자리에 앉은 남자는 나를 위아래로 살피며 웃고 있었다.

다른 한 남자는 덩치가 있고 넉살 좋게 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당황한 나에게 설명했다. 그 여자손님은 본인 가게의 단골손님이고 이 자리를 아마도 나처럼 나온 모양이었다. 사실 그 남자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주절주절 말이 많은 그 남자는 대충 이런 말을 하는 거 같다. 고작 이런 자리에 거짓말까지 하며 부른 이유가 무엇일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불쾌하고 기분이 좋지 않아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다. 이미 상상 속 시뮬레이션까지 했지만 앉아 있었다. 그만큼의 용기가 난 없었다.


그 카페는 연어 요리가 맛있는 집이었는데… 날 위해 주문 했다는 음식을 먹으며 나는 그들과 함께이지만 또 함께가 아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답답했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하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 생각했다. "어떻게 말하고 나갈까?"" 집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할까?" " 아이가 깨서 나를 찾는다고 할까??" 그런데 난 이렇고 저렇고 말도 하기 싫었다.

"그래 그냥 집에 간다고 하자!! 이유를 물어볼까?? 그럼 뭐 개인 일이 생겼다고 하지 뭐...."

그녀에게 어떤 핑계를 대는 것도 너무 예의를 차리는 것 같아 싫었다. 나에게 무뢰한 그녀에게....


화장실 앞에 말없이 창 밖만 바라보던 남자가 서있었다. 남자는 주춤하는 듯하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본인도 이 자리가 많이 불편하고 어렵다고 하며 함께 조용한 카페를 가자고 했다. 평소 내 성격상 적당히 둘러대고 거절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날은 눈이 내리고 커피가 마시고 싶기도 했다.

나와 그 남자는 다른 카페로 이동을 했고 그녀는 덩치가 큰 그 남자의 가게로 자리를 옮기는 거 같았다.

카페 들어선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대화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편안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 눈이 제법 쌓여 있었다. 코끝이 찡 하게 차가운 공기가 좋았고 어두운 밤 전봇대 불빛에 반짝이는 눈을 보며 집까지 걸어가며 밤새도록 걷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다음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 남자였다. 나의 번호를 물어 물어 전화를 한 듯했다. 전화를 걸었던

그 남자는 커피를 마시자고 했고 이후 나는 그 남자와 가끔 커피를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말이 없는 그 남자는 그 밖에도 가끔 집 근처까지 찾아와 책이나 커피를 사다 주고 갔다.


그 남자는 호텔, 컨트리에서 요리를 했던 요리사였고 위암에 걸려 치료를 받고 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나와는 아무것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느껴졌지만 그 남자는 나중에 말하기로 처음 만난 날 첫눈에 반했고 창밖을  본 이유는 창밖으로 반사되어 비추는 내 모습이 너무 이뻐서 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 만남을 나는 계속 이어 갈 수 없었다. 단연코 재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남자에게 지금의 마음을 전하려 그를 만났다. 그는 내 말을 다 듣고 그냥 이렇게 가끔 커피 마시고 이야기하는 친구가 되자고 했다.

나는 말이 없는 그와의 만남이 편안했고 무엇보다 늘 젠틀한 모습이 싫지 않았다. 남녀 사이에서 친구가 가능할까? 그렇게 물어본다면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러나 그때 당시 나는 내 앞에 장동건, 공유가 와도 이성으로 느낄 여유?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남자와 친구도 될 수 없다는 것쯤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늘 그렇듯 나의 행동을 지배하지 못했다.

생각은 그를 밀어내야 한다고 했지만 행동은 그러지 못했다.

어느 날에는 한동안 영화를 보러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에 그 남자는 영화를 예매했고 함께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는 것에 들뜬 마음이었고 그 남자 옆에서 나는 세상 속 소인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연스럽고 뻔뻔하게 행복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착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영화를 보는데 전화밸이 계속 울렸다. 집에서 오는 전화였다. 영화가 끝나고 전화를 거니 이혼한 남편이 친정집에 와서 나를 기다린다는 거였다.

나는 급하게 그 남자와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갔다. 전 남편은 안방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 안에 들어 서니 술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전 남편은 나를 보고 내손을 잡아끌고 안방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남자가 생겼냐며 욕을 퍼붓고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비참함에 이미 마음은 죽어 가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었다.  바닥에 쓰러진 나를 길바닥에 버리는 담배꽁초처럼 짓눌렀다. 화가 풀리지 않는 그는 길바닥에 쓰레기를 발로 걷어차듯 나를 걷어찼다.

엄마의 초인적인 힘으로 방 문이 열였고 엄마는 필사적으로 전 남편을 밖으로 밀어냈고 경찰을 부르겠다는 말에 전 남편은 집 밖으로 밀려 나갔다. 전 남편을 밀어내는 과정에서 엄마의 그 여린 팔이 시뻘겋게 멍이 들었다.


우리 집에 여자만 있다는 것을 전남편은 잘 알고 있었고 나와 우리 가족은 지금껏  거인나라에서 소인으로 밟히는 않으려 했던 시간이 산산이 무너지는 시간이었다. 나로 인해서......

가슴이 쪼여 오는 것 같았다. 숨을 쉬는 게 힘들었다. 숨을 몰아 쉴수록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나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가치 없고 인간도 아닌 그것 가치 없는 그것 그까짓 것이 되어 밤새도록 차라리 죽여 달라 하나님께 간곡히 빌고 또 빌었다. 오늘밤 제발 나의 심장이 멈추길 빌었다.


이혼 후 처음 있는 일이었고 우리 가족은 너무나 큰 상처를... 씻을 수 없는 그 상처를 나 때문에 받게 되었다.  


날이 밝았고 나의 시간은 멈춰 버린 듯했다. 그 남자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받을 수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나의 비참함과 역겨운 시간이 그에게 들켜버릴 것 같았다.


나는 친정 식구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있었지만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 일이 일어난 후 3개월이 안 돼서 친정집은 이사를 했다.

이 땅에서 우리 집은 여자만 사는 집이었고 이유 없이 약자로 이방인처럼 거인나라에 소인으로 살았다.

일가친척도 없는 외동딸이었던 여자는 두 딸을 키워냈고 끝내 다 큰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슬픔이 한동안 그녀의 모든 시간  그 작은 몸에서 그리도 긴 시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동생은 한동안 일하던 아동센터에서 지냈다.


이후 친정과 나는 분리되어 살았다. 엄마와 동생은 늘 하나님아버지께 간절한 기도를 드렸고 죄인의 마음으로 슬퍼할 나를 늘 먼저 위로했다.

따로 살았지만 엄마는 자주 집에 오셔서 반찬을 해주셨고 동생은 조카 먹을 간식을 늘 집 문고리에 걸어두고 갔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나는 엄마다.

난 아이와 함께 집 앞 놀이터에서 함께 놀고 더운 여름날이면 아이와 돗자리를 들고 집 앞 공원에 나가 나무그늘 아래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나는 아이는 밖에서 뛰어놀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에도 그 남자는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러나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너무 쉽게 결혼을 했고 그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기에... 나의 삶 속에 누군가 들어온다는 것은 이제는 받아 드릴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나만의 작은 세상 아이와 나는 또다시 이유도 알 수 없이 세상의 속 소인으로 그렇게 살아 내고 있었다. 평온한 일상 같았지만 어둠이 찾아들면 두려움이 밀려와 아이를 꼭 껴안고 창밖에 달빛과 별빛을 바라보며 빨리 어둠이 사라지길 기다렸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친구들과도 만나지 않았다. 교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나와 아이의 세상 속 어느 누구도 들어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난 무의식 중에도 방어태세를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가끔 아이가 그려주는 엄마 얼굴 그림을 보며 웃고. 그때 당시 유행 했던 팽이( 탑플레이드) 놀이를 하고 피카추 카드를 모아 카드게임을 했다. 하루는 집 근처 주민 복지 센터 앞 화단에 봉숭아잎을 뜯어 아이와 함께 엄지발톱에 물을 드리기도 했다. 가을에는 국화를 사다 창틀에 올려놓고 아이와 함께 꽃에 물을 주며 잘 자라도록 노래도 불러 주고 때로는 꽃과 대화도 하며 아이와 나의 하루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일을 해야 했지만 아직 어린아이를 두고 일을 다니기는 그리 녹록지 못했다. 매일 아이가 어린이집 등원을 하면 벼룩시장 신문을 보며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그러다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부업을 찾고 하게 되었다. 핸드메이드 실내용 실리퍼 리본을 고정해서 바느질하는 일이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바느질을 하고, 아이가 돌아올 무렵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고 찌개를 끓였다.


하루는 세탁기가 고장이 나서 AS기사를 불었는데 아들이 집에 있었다. 현관문으로 들어선 기사님은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분이셨다. 그런데 7살 된 아들 녀석이 " 엄마! 아빠 오고 있지?" "어?.... 그래..." 어린 아들이 엄마와 둘이 사는 집에 거인 같은 아저씨가 들어오니 순간적으로 뱉은 말이 가슴이 아리고 먹먹했다. 현실은 그렇게 우리가 거인나라에 소인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아이는 잠들기 전 늘 어린 왕자 책을 읽어 달라고 했다. 작은 별 어린 왕자 어느 날 날아든 꽃씨 그리고 자란 장미.... 서로를 길들이려 소유하려 했던 어쩌면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했던 어린 왕자와 장미.... 결국은 헤어진다.... 어린 왕자 책은 내가 임신했을 때 태교로 아이에게 읽어주던 책이었는데 아이는 무척이나 그 책을 좋아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아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도를 했다.


" 하나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엄마가 건강하게 해 주세요. 할머니 이모도 건강하게 해 주세요. 우리 집이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게 해주세요." 아이의 기도는 늘 똑같이 나와 친정식구의 건강이었고 마당이 있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길 원했다. " 엄마! 엄마는 왜 기도 안 해?" " 엄마는 마음으로 기도 했어" "엄마! 사랑해"

아이는 늘 나에게 사랑한다 말해줬다. 청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나에게 사랑한다 이야기하는 아들... 그렇게 아들과 나는 우리만의 작은 별에 서 서로를 의지 하며 살아 내고 있었다.













이전 04화 아픔을 닮아 버린 나 4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