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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r Jul 09. 2024

아픔을 닮아 버린 나 6

에필로그

글을 연제 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출산하고 이혼을 했지만 이혼 후 나는 늘 아프고 힘들고 슬프지만 않았다. 때론 아이와 함께 하루종일 뒹굴거리며 만화 영화를 보며 깔깔 거리며 웃고, 때론 집에 있는 아이 동화책으로 집안 가득 성을 만들고, 아이와 며칠 레고 조립을 하고 손가락이 마비가 와서 한동안 밥 먹을 때 수전증 환자처럼 손을 덜덜 떨며 밥을 먹어야 했던 웃지 못할 이야기... 태어나 보니 우울한 감성은 타고났고 심하게 내성적인 사람이지만 가끔 사람들 앞에서 개그 욕심을 부리기도 하는 상상력 풍부한 엉뚱하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는 슬프고 우울하지만 슬픔 가득 담은 행복을 이야기에 다 담아낼 수 없기에.... 이번 "아픔을 닮아 버린 나"에서 6화는 에필로그로 준비를 해봤다. 이혼 후 본의 아니게 음악 카페를 하면서 우울증이 심해졌고 누군가 나를 끓어 당긴 것처럼 여행했던 그곳에 첫사랑과 재회가 있었고 짧지만 내 평생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신앙과 같은 그를 향한 사랑을 담아 보려 한다.

조금 느린 한 여자가 아픔도 상처도 느리게 스스로의 방법으로 치유하며 또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로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선천 적으로 우울한 감성을 많이 가지고 태어난 것 같다.

그런데 우울하다고 해서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가 내리는 어두운 하늘을 좋아하고 어둠이 내려앉은 깊은 밤시간을 좋아한다.

마이너코드에 슬픈 노래를 좋아하고 그 안에서 사랑, 연민,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우울함 속에 슬픔 가득 담긴 행복도 느끼는 나.... 나의 글이 한편으로 어둡고 우울하고 무거울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누구나 처럼 배꼽 빠지는 재미도 있고 아름다운 사랑도 있다. 그래서 나의 계획에 없었던 슬프지만 아름다웠던 나의  추억상자에 빛나고 있을 이야기를 꺼내 본다.  


나는 한때 내가 좋아하는 사진작가들의 커뮤니티 "레이소다" 사진을 시간 날 때마다 볼 때가 있었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나의 시간은 멈춰 버리고 세상의 시간에 놀랄 때가 많았다.

늘 집순이에 서울 촌년이라 사진 속 나와 다른 세상을 보는 게 참 좋았다. 요즘 내가 브런치 스토리를 읽으며 좋아하는 이유와 같다.


그런데 한 작가 사진이 눈에 계속 들어왔다. "어.... 이상하다.... 맞을까??"이름을 보니 19살 늘 세상을 돌아치던 그때 나의 첫사랑 이자 짝사랑 그와 이름과 같았다. 그 사람 이름은 흔한 이름이 아니었기에… 운동을 했던 그 사람이 사진작가?? 그 사람은 전화번호가 공개돼 있었다. 무슨 용기였을까...? 뭐에 홀린 듯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잊을 수 없는 아주 느린 말투에 그의 낮은 목소리였다. 그는 나를 반가워했다. 왜일까?? 그는 내가 결혼을 했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솔직하게 결혼을 했고 이혼도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가 보고 싶었다. 그는 결혼도 안 하고 혼자였는데 운동은 건강에 문제 생겨 못하게 되었고 답답한 마음에

시골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다 보니 사진작가가 되었다고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생각보다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사진작가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와 만나기로 했다. 그를 꼭 만날 이유는 없었지만 얼마 전 혼자 무작정 떠났던 그곳 춘천에 살고 있다고 하니 가고 싶어졌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 다시 19살 소녀로 돌아가 설레었다. 기차를 타고 가는 길 어찌나 떨리던지 입이 마르고 심장이 마구 뛰며 나의 볼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역 앞에 나와 있었다. 사실 그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나...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도 자세히 본 적이 없다. 너무 떨려서 그의 얼굴을 보면 심장이 멎일 것 같았다.

그의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한적한 카페에 들어갔다. 그는 나를 한참을 바라보며 하나도 변한 게 없다며 웃었다. 느린 말투 굵은 베이스톤 그의 목소리는 어느 클래식 교향곡 보다 감미로 왔고 한편 야릇함까지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빗소리... 그래 그의 목소리는 빗소리를 닮았다. 느리고 무거운 어쩐지 슬픈 그의 목소리...

그는 그동안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다.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냥 그와 마주 앉아 있는 그 시간이 꿈같았다. 나는 그와 연인이 된다거나 재혼을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그냥 그는 나에게 첫사랑이고 나의 과거 속 예쁘게 포장해서 담아둔 추억이었기에 어쩌면 그 시간도 나에게는 조금 더 담아둘 추억일 뿐이었다.


그는 작은 아파트에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었다. 마치 그때 상황은 몽환적이었다. 그가 춘천에 있는지 모르고 나는 춘천 여행을 갔고 이유 없이 연고가 없는 춘천이 좋았다.

그런데 그는 춘천에 살고 있었고 한동안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 그가 찍은 사진이라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나는 몇 번 더 춘천에 내려가 그를 만났다. 그는 내가 내려가면 역으로 나와주었다. 그리고 하루는 예쁜 산길을 드라이브하며 커피를 마시고 슬픔에 잠겨 걷던 공지천 호수를 그와 함께 걸었다. 그와 함께 걷는 호수는

봄날의 햇살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어디선가 꽃향기가 불어오는 것 같았다.  꿈속을 걷는 듯했다. 그는 내가 춘천에 내려가면 춘천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기도 하고 사진 찍는 장소를 데려가 직접 보여 주기도 했다.  꿈속 시간은 더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의 만남도 그리 오래 이어 갈 수 없음을... 그저 그도 내가 예쁘게 포장해 담아둔 추억처럼 그렇게 담아주길 원했던 거 같다.


어느 날 그는 사진작가모임에 나를 초대했다. 중학교 때 동아리 활동을 사진부로 했었다. 늘 학교 밖을 나가는 자유로움과 사복을 입는 것이 좋아서였다. 그래서 나는 비싸지 않은 필름 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 두 가지 다 가지고 있었고 출사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비빌을 알고부터 나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아무튼 그는 내가 낮을 많이 가리고 사람들 많은 공간을 힘들어한다는 것을 몰랐다. 낮에는 함께였지만 서로 각자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다 오후가 되면서 함께 이동을 했다.


예쁜 식당으로 들어 셨다. 7~8명 정도 되는 작가들이 식사를 하며 술이 들어가니 그들의 예술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졌다. 19세기 이후 산업혁명으로 모든 예술이 개개인의 몫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모가지에 핏대를 세우며 이야기하는 그들의 대화가 한편 재미있었지만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지치기 시작했다. 사실 그들은 나를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서울에서 놀러 온 그의 친한 동생 즈음으로 생각하는 거 같았다. 몇몇 사진작가들이 말없는 미녀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지만 그들은 예술 이야기를 하기에도 모자란 흘러가는 시간에게 화를 내듯 목소리를 높여 갔다.


지긋지긋한 예술 이야기... 두통이 시작된 듯 머리가 무거워졌다. 잠시 바람을 쐬고 싶었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식당은 옛날 한옥집이었는데 화장실을 가려면 마당으로 나와야 했다. 생각보다 깨끗한 화장실... 나는 변기에 앉아 흘러가는 시간을 재촉하며 멍하니 어쩌면 그 자리에 나온 나를 부정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내 이름을 부른다. 그였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그가 좁은 화장실 안으로 나를 밀고 들어왔다. 좁은 공간 순간 나의 심장은 멈춰 버린 듯했고 우리의 시간도 함께 멈춰 버린 듯했다. 그가 나에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너무나 돌차적이었고 당황했지만 한편 꿈을 꾸는 거 같았다. 내 삶에 전혀 일어나지 않을 일이 그렇게 영화 속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이 되어 그곳에 속절없이 서있었다. 그리고 조금뒤 옆칸에 사람이 들어온 듯했다. 일행이었다. 우리는 나쁜 짖을 하다 걸린 아이들처럼 숨죽이며 소리를 내지 않았고 그는 나를 아무렇지 않게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한참을 안고 서 있었다. 그렇게 굳어 버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조금은 술에 취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하듯 " 나는 어떻게 해야 하니?..." 대답 없는 물음을 했다. 그 또한 나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느끼고 있었다. 우리의 만남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와 어떤 미래도 그릴 수 없는 내가 그의 사랑을 받아 드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의 첫사랑이며 짝사랑이었던 그 사람... 예쁘게만 그리려 했던 추억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나는 그를 무조건 적으로 사랑했고 참 이기적으로 사랑했던 거 같다.


어느 날 늦은 시간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와인을 마셨다.

내가 13살 때 엄마는 음악을 좋아하는 나에게 그때 당시 꽤 비싼 작은 오디오를 선물로 사주셨다. 오디오가 생기고 내가 그토록 오디오로 듣고 싶었던  헨델의 메시아를 처음 들을 때 그 웅장함과 깊은 슬픔... 환희가 황홀함까지 느껴지는 영혼의 울림...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천국음악이었다. 나는 꾀 오랜 시간 헨들의 메시아 곡을 들었다.  보통은 헨델의 메시아를 듣는데 오디오를 사용했지만 별이 반짝이는 깊은 밤에는 라디오를 들었다. 나의 유일한 감정 사치였고 취미였고 친구였다.

결혼을 하면서 내가 아끼던 오디오는 누구도 듣지 않아 구석자리에 처 박혀 있었다. 나는 오디오 먼지를 닦고 오랜만에 라디오를 틀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은  그 순간만큼 마치 세상은 내가 중심이 되어 돌아가는 듯했다. 라디오에서 그와 함께 그의 차에서 듣던 음악이 때마침 흘러나왔다. 그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슴 설레게 사랑했던 그가 너무 보고 싶어 나는 결국 저녁 11시가 넘어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탔다. 평소 나의 성격으로 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몇 잔 마신 와인이 나를 과감하고 용기 있는 어쩌면 대책 없는 여자로 만들어 주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빈 도로를 달렸다. 무모한 바보 같은 짓이다. 새벽 1시가 넘어 춘천 역에 도착했다. 그가 역 앞에 나와 있었다. 그의 차를 타고 나는 말이 없다.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차 안은 정적만이 흐르고 이었다. 그는 자기가 사는 아파트에 차를 세우고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다 나에게 주었다. 가로등이 있는 벤치에 앉아 나를 바라보는 그는 무슨 일인지 왜 왔는지 물어보지 않고 함께 커피를 마셨다. 한참을 그렇게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 이럴 거면 나한테 오던지.... 난.... 나는.... 네가 이렇게 한 번씩 왔다 가면 혼란스럽고 힘들어"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쫄보에 겁쟁이였다 그에게 갈 용기 없었다. 그냥 나와 같이 이쁘게 어느 즈음 기억으로 추억상자에 담아 주길 원했다.

시간이 얼마나 더 흘렀을까?? 칠흑 같은 어둠 속 고즈넉한 세상에 마치 그와 나만 존재하는 듯했다.

그는 나를 호텔로 보낼 수 없다며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그는 작은 방을 암실로 만들었는데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방이었다. 아침의 여명이 밝아 오는 시간 이 있었다. 그러나 그 방안은 여전히 어둠이 내려앉아 나를 더욱 깊은 어둠으로 끓어 당기는 듯했다. 그는 이불을 펴주고 나갔다. 눈물이 흘렀다. 그의 마음을 나는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사실 내가 느낀 그를 향한 감정은 태어나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내가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이유는 어쩌면 사랑하는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처로 갈기갈기 찢어진 나의 마음에 하나 남은 자존심 같은 것이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보았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와는 그렇게  추억으로 간직하려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우는 소리가 났을까.... 아마 그러지 않았겠지만 느낌으로 알았을까....

그가 암실로 다시 들어왔다. 울고 있는 나을 말없이 안아 주었다. 그렇게 그와의 시간이 멈춰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가난한 사진작가였고 나는 이 꿈속에서 빨리 나와 현실로 돌아가야 했다. 아침 8시가 되었을 때 나는 그 암실에서 나왔다.  그는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나와 아파트 단지 앞 슈퍼에서 국거리와 반찬거리를 사 와 아침을 차렸다. 왜 그랬을까... 오버스러움이 있지만 그러고 싶었다.

그의 아버지가 일어나셨다. 그는 아버지에게 친구라며 나를 소개해주었다. 아버지는 당뇨로 다리가 불편하셨다.  그의 아버지와 함께 우리는 아침 식사를 했다. 아버지는 밥을 한 공기 더 드셨다. 아침을 많이 안 드시고 입맛이 까다롭다는 아버지가 내가 만든 음식이 입에 맞으신 모양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닮았다.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다. 아마도 그게 우리의 마지막 식사였을 것이다.


 이후 나는 아이와 함께 일상을 살아 내고 있었고 그는 이후 서울에 여러 번 올라와 나를 찾았고 나를 만나려 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만나지 않았다.

나는 그와 함께 한 추억을 이쁘게 추억 상자에 담아 나의 기억 어느 즈음 두고 꺼내지 않았다. 이후 열심히 일을 했다. 낮에는 방과 후 학원과 시간 타임으로 대형 약국에서 일을 했다.

저녁에는 클래식 기타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 부탁으로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카페 타임 통기타 가수로 하루 두 번 40분씩 무대에 올라가 노래를 했다. 내가 카페를 할 때처럼 손님을 마주할 일이 없으니 그 또한 할만한 쏠쏠한 알바였다. 나는 일상을 충실히 살아 내고 있었다.

나의 첫사랑과의 재회는 그렇게 짧게 아쉬움 가득 담아 슬프고 아름답게 포장하여 기억 속 어느 즈음 가져다 두었다.


어린 시절 집안에 남자가 없다는 사실은 스스로 남자를 거부하게 했다. 그래서일까? 이성에게 관심이 없었다. 결혼을 할 때까지 이성교제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나의 이런 감정은 어린 날 너무나 짝사랑했던 나의 첫사랑이 처음이었다. 아마도 그때 그런 감정은 앞으로도 내가 다시 경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를 향한 나의 사랑은 마치 신앙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린 날 학교 선생님을 짝사랑하거나 연예인을 좋아하는 그런 감정과 더 비슷했을 것이다. 상식적이거나 정상적이지 않은 일방적이면서 지독하게 이기적인 사랑.... 이미 나의 마음에는 그는 현실 속 인물이 아니었을 수도.....

함께 걸으며 수줍은 많은 나는 그의 손 한번 잡아 보지 못하고 사랑한다 말 한마디 못하고 그렇게 흘려보냄이

때론 서운도 했지만 그는 나에게 현실이 아닌 꿈이었기에 어느 날 잠시 깊은 꿈에서 다시 오지 않을 사랑을

예쁜 기억만 모아 내 멋대로 추억상자에 담아 본다.


가끔 나는 레이소다에 들어가 사진을 본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를 찾으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렇게 세상 살면서 뜨겁게 사랑하고 세상 꺼지게 슬펐던 사랑의 추억이 나의 어느 즈음 추억상자에 담겨 있음을 기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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