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뒤틀린 채로 하루를 넘기는 날들이었다.”
내가 아빠의(자살)죽음을 알게 된 때는 열일곱 살, 사춘기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어린 마음에 세상이 밉고 모든 것이 싫어지던 그 시기.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떠돌이가 되었다.
늘 이유 없이 동네를 돌아다녔고,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 구석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200원짜리 작은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남은 나무토막으로 흙바닥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그러다 문득, 흙 위에 ‘아빠’라는 글자를 썼다.
수없이 쓰고, 다시 흙으로 덮고, 또 쓰고 덮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면 흙구덩이가 생겼고, 나는 다시 그 위를 덮으며
아무 의미도 없는 흙을 휘휘 저어가며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어쩌다 운동장에서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어린아이들을 볼 때면
속에서 천불이 나고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정신 나간 아이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떻게 아빠가 돼서 자식을 두고 죽을 수 있어…’ 대답 없는 질문.
그 질문조차 감당이 되지 않을 때면 흙뭉치를 한 주먹 쥐어 내던지곤 했다.
그렇게까지, 아빠는 사는 게 괴로웠던 걸까.
엄마가 너무 싫었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 우리 아빠를 죽인 건 아닐까.
가혹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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