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일호 <시사인> 기자『슬픔의 방문』
* 장일호 <시사인> 기자 『슬픔의 방문』 : 2023년 2월 25일 (토요일)
<시사인> 장일호 기자의 에세이 『슬픔의 방문』 북토크가 있는 날. 반달서림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미 한참 전에 도착한 듯, 장일호 기자가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아 활짝 웃음과 함께 두 손을 막 흔들고 목소리를 높여 “어서오세요~~”라고 인사하였다. 순간 '내가 장일호 기자와 잘 알던 사이였던가?' 착각할 만큼 친근하고 쾌활한 인사였다. 책방에 들어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장일호 기자의 환대가 이어지고 활력이 더해졌다.
북토크 참석 전 책을 먼저 읽었는데 저자 이름을 보고 당연히 남성이라 생각하고 책을 읽다가, 저자의 성별이 드러나는 대목에서 화들짝 놀랐던 생각이 났다. 내게 내재된, 이름에 대한 선입견을 마주하며 저자가 가진 반전 매력을 즐겼다. 책 속 문장들이 깊이가 있고 차분하여 저자 성격 또한 고요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발랄한 인사를 건네다니, 저자의 반전 매력 하나가 추가되었다. 이처럼 장일호 기자의 의도 여부와 무관하게 그녀의 반전 매력을 두 번 경험한 후, 사유와 연대의 넓이와 깊이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장일호 기자가 진행하는 북토크에 대한 기대감은 커졌다.
“아버지는 자살했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에세이 『슬픔의 방문』를 읽으며 저자가 지나치게 솔직하게 쓴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로 시작하는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 해방일지』첫 문장이 연상되었으나 더 강렬했다.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하였다지만 『아버지 해방일지』는 어쨌건 소설, 실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에세이는 거짓을 쓰면 안 되는 장르이니 진실임에 틀림없는데, 어찌 보면 비극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아버지의 죽음을 직접 언급하다니 충격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장일호 기자가 에세이를 ‘자신을 착취하면서 쓰는 글’이라 말하기도 했는데, 과연 자신이 정의한 신념에 맞게 써내려 간 에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솔직함은 장일호 기자 자신을 향한 단순 고백에서 벗어나 확장된 솔직함이라고도 이야기하고 싶다. 자신의 내밀했던 경험을 먼저 솔직 담백하게 기술하고,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 사실, 느낌 등에 관련된 여러 문헌 구절을 인용하며 깊고 얕은 감상을 첨언하는 방식의 에세이. 읽는 이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글이었다.
장일호 기자의 이야기를 들은 후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이야기하고 눈물을 흘린 북토크 관객들이 적지 않았는데, 특히 한 엄마와 대학생 딸 그리고 딸의 이모이자 엄마의 자매 일가의 눈물은 다른 관객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말 그대로 눈물과 감동이 함께 한 북토크로 책의 힘과 북토크의 힘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장일호 기자는 인생의 숙제가 “엄마”라며 모녀사회학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고 언급했다. 문득 대학시절 친구들과 보았던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 Antonia’s Line》의 대규모 모계사회가 떠오르면서, 앞 글(https://brunch.co.kr/@ebec0174a6a7411/34)에서 소개한 『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와 『H마트에서 울다』에서도 다룬 엄마와 딸 사이 다양한 형태의 갈등과 해석을 보며 그 말에 공감이 되었다. 실제로 모녀관계 심리학은 종종 여러 연구자에 의해 연구되어 책으로도 출간되는 것을 보면 언젠가 모녀사회학 분야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장일호 기자가 힘겨운 암투병을 하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앞에서도 말했듯 북토크가 무겁고 조심스럽게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책 제목도 『슬픔의 방문』이지 않은가? 결코 반갑지 않은 ‘슬픔’의 방문. 나를 찾아온 손님이 슬픔이라 해서 박절하게 그냥 돌아가시라 말할 수 없는 노릇, 문을 열고 마뜩잖게 슬픔의 방문을 받아들인다. 찾아온 슬픔을 어찌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장일호 기자가 책 면지에 저자서명과 함께 자필로 써 준
‘슬픔이 쓸모가 있는 다정한 미래를 함께 발명하고 싶어요.’
라는 문구에 있다. “그래, 어차피 찾아온 슬픔이라면 쓸모를 찾아야겠군.”이라 생각하고 다시 책을 들춰보는데, 소개글 ‘슬픔의 자리에서 비로소 열리는 가능성’을 시작으로 써 내려간 책 속 글들이 너무 좋다.
아프고 다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원하는 장일호 기자에게 머문 슬픔은, 책을 읽으며 쉼이 되기도 하고 책의 행간을 돌아다니며 삶의 마디마디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런가 『슬픔의 방문』은 책에 대한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책이 감상과 함께 소개되어, 장일호 기자에게 머문 슬픔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래서 책들로 그녀가 얼마만큼 성장할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소개한 책 중 마음을 움직이는 글들이 많아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은 찾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슬픔의 방문』 북토크를 마치고 “독립서점” 간판을 “책맥클럽”으로 바꾸고 장일호 기자를 포함한 4명이 유쾌한 이차모임을 가졌다. 맥주 네 캔이 있다고 하여 추가로 맥주 네 캔을 사 왔는데, 『슬픔의 방문』 41쪽을 기억하지 않은 나의 불찰이었다. “충분하다니? 알코올의존증 환자에게 그것은 생경한 미지의 언어다. 충분히 마시는 일이란 없다.”라는 분들에게 인당 맥주 두 캔은 가당치 않은 것이었다. 중간에 맥주와 마른안주를 공수해 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서로 소개하는 자리에서 장일호 기자와 함께 오신 분이 건넨 명함이 참 독특했다. 작은 즉석사진으로 만든 명함이었는데, 즉석사진엔 반려묘 ‘아니’의 사랑스럽고 앙증맞은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 당시 나에게도 고양이가 있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사진과 영상으로만 볼 수 있음에 가슴이 아리다. 책에도 고양이 아니가 직접 쓴 글이 있지만, 고양이란 집사가 자신을 외면한 채 일한다는 핑계로 노트북 화면만 보며 자판을 두드리는 것을 참지 못하는 법. 우아한 몸짓으로 화면을 가리고 자판 위에 올라앉는다. 고양이가 집사에게 보내는 못마땅한 시선 뒤로, 화면에 찍히는 고양이의 잔소리는 끝이 없다. 때로 자판 위에 얹은 집사의 두 손과 두 팔로 이루어진 곡선을 등쿠션 삼아 골뱅이 자세로 누우면, 집사인 나는 또 이때다 싶어 고양이의 뾰족한 두 귀 사이 동그란 뒤통수에 코를 박고 따뜻한 털냄새를 마음껏 맡곤 했다. 골골송을 부르는 고양이도, 나도, 마음 편하고 행복했던 시절이다. 보석 같고 우주 같은 눈동자를 넋 놓고 보며 황홀해하던 순간. 이제 다시 오지 않을 순간. 사실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 몇 년 전부터, 고양이를 보고 쓰다듬는 중에도 이 순간이 그리울 때가 올 거라 는 것을 알아, 고양이를 보고 있는 그때도 슬펐다.
2006년 겨울 오백그램으로 내게 온 고양이는, 오자마자 코로나 장염으로 한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다행히 무럭무럭 자라 한 때 육 킬로그램을 조금 넘었다가, 2023년 여름 이 킬로그램이 조금 넘는 몸무게로 무지개다리를 건너 고양이별로 돌아갔다. 다른 종의 동물과 함께 가족으로 지낸 열일곱 해가 내게는 정말 소중했는데, 숨을 크게 두 번 쉬고 떠나간 나의 고양이는 어땠을까? 존재하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위로를 해줄 줄 아는 착한 고양이. 집사가 힘들 때 다가와 앞발을 집사 손 위에 살짝궁 포개고 자신의 머리를 톡톡 치며 위로해 주던 고양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또 집사가 결혼한 후 가족이 생겨 자기보다 작았던 아기들이 자기보다 또 집사보다 훨씬 큰 사람으로 커가는 것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또 그중 한 아이에게 알러지가 생겨 분리를 위해 베란다와 작은 방에서 살면서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리고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하지만 물어볼 길은 없다.
길을 가다 만나는 길고양이들. 반가운 마음에 조심스레 다가가 보지만, 하나같이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경계 태세를 갖추다 이내 후다닥 달아나기 일쑤다. 이제 내게 다정한 고양이는 없는 것이다. 언젠가 길을 가다 우연히 어떤 고양이를 만나고, 그 고양이가 스스로 내게 다가와 골골송을 부르며 종아리에 헤드 번팅을 해주는 상상만이 위안이 될 뿐이다.
북토크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을 상기해 본다. 장일호 기자도 여러 번 강조할 정도로 의지를 보였던 부분으로, 만약 암이 재발한다면 자신이 받은 의료 치료는 다시 받지 않을 것이라는 대목과, 뒤에 오는 후배 여성들에게 책임을 느낀다는 대목이다. 우선 암 재발 시 암치료 거부선언은 치료의 고통이 극심했음을 짐작할 수 있어 모쪼록 암이 재발되지 않아 장일호 기자가 더 이상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회에 먼저 발을 들여놓은 선배 여성으로서 겪은 우리 사회는, 유독 여성이 조심할 것이 많다. 우리 사는 세상에서 강자가 자신의 안위를 지키려 조심하는 경우가 있을까? 여성에게 조심을 강조하는 사회는 그들이 사회적 약자라 규정하는 사회.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무작위로 휘두르는 흉기의 끝조차 여성을 향했다. 한편 또 다른 사회적 약자라 할 수 있는 어린이를 함께 생각하며, 나이나 성별과 무관하게 한 사람의 인격체를 존중하는 분위기의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픈 마음에, 상대를 인격적으로 대하려 노력한다. 다행히 김소영 작가가 쓴 『어린이라는 세계』에 어린이를 대접하는 방식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어 참고서로 삼았다. 여성과는 물론 남성 동반자들과 연대하여 인식을 새롭게 하면 좋겠는데, 장일호 기자가 제일 많이 말했다는 “같이 망해드릴께요.”라는 말은 끝까지 연대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이러한 개인의 노력에 더해, 국가는 사회 안전망을 촘촘히 챙겨야 한다는 책무를 무겁게 받아들여 모쪼록 안전한 사회를 만들면 좋겠다.
*참고자료
1.『슬픔의 방문』장일호, 낮은산, 2022
2.『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 창비, 2022
3.《안토니아스 라인, Antonia’s Line》 마를렌 고리스 감독, 1997
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사계절, 2020
5. 반달서림 『슬픔의 방문』 장일호 북토크 안내문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30103368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