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애 교수님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 전영애 교수님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 2023년 5월 20일 (토요일)
이 날의 북토크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해야 할까? 시인 라이너 쿤체 (Reiner Kunze)에서 시작을 하는 것이 좋겠다. 반달서림의 온라인 시필사 모임 ‘반달과5펜스’에서는 우리나라 시인의 시와 함께 종종 외국시인의 시를 필사를 하곤 하는데, 그중 제일 많이 필사한 외국 시인의 시가 바로 라이너 쿤체 (Reiner Kunze)의 시였다. 그만큼 시필사 회원들이 공감하며 좋아하는 시인이었는데, 그의 시 세 편은 나에게 특히 인상적으로 각인되었다.
2013년 동구권의 분쟁에 대한 우려를 담은 시이지만, 2022년 2월 시작되어 아직까지 지속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걱정으로도 읽힐 수 있는 「우크라이나의 밤」, 자신의 시를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는 번역자들에 대한 감사를 담은 「번역자의 특권」, 그리고 한국에 애정이 각별한 라이너 쿤체 시인이 한국독자를 위해 쓴 시 「뒤처진 새」가 그것.
특히 「뒤처진 새」 자녀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읽고 눈물이 핑 돌았다.
인생 길게 보고 충분히 시간을 들여 자신의 역량을 찾아 자신만의 속도로 부지런히 연마한다면, 본연의 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자녀의 뒤에서 힘을 보태지만 그 힘이 가 닿지 않는 것 같아 슬프고 답답함을 느끼는 요즘. 내 아이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 믿음 자체를 아이도 나도 확신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시인은 뒤처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며 힘을 보낸다고 하는 짧은 시로, 흔들리는 몸과 마음의 중심을 다정하고 조심스레 잡아 주고 있지 않은가? 이제 구순을 넘기신 노시인의 응원에 나도 다시 아이를 응원해 줄 힘이 생겼다. 연쇄적 응원의 힘으로 비록 뒤처져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아이가 뜻을 세우고 노력하여 이루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라이너 쿤체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면, 독일이 통일되기 전 동독 시민들은 동독 시절 체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저항의 의미로 라이너 쿤체 시인의 짧지만 깊은 시 「한 잔 재스민 차에의 초대」를 집의 문 앞에 걸어 놓았다고 한다. 이에 동독 정부는 라이너 쿤체 시인의 말이 갖는 힘을 두려워하여 서정시를 쓰는 시인은 학생을 교육할 수 없다는 논리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던 라이너 쿤체 시인을 내쫓아 자물쇠 수리공으로 만들었고…… 자물쇠 수리공일을 하며 시를 계속 써내려 간 라이너 쿤체는 1977년 서독으로 망명하기에 이르렀다. 시인 라이너 쿤체는 말 그대로 현대 세계사를 관통한 삶을 살며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신념을 지키고 생명을 존중하며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은 시인이었다.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58쪽에 「뒤쳐진 새」 시 전편과 그에 얽힌 전영애 교수님 에피소드가 있었고, 반가움으로 읽고 나니 그 시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은 코로나 시기에 전영애 교수님께 독일 여행일정이 생겼고 체류 일정에 맞추어 라이너 쿤체 시인 방문을 계획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셔서 장문의 편지 한 장을 공들여 써서 라이너 쿤체 시인께 팩스로 보내셨다. 그런데 당일 「뒤쳐진 새」 시 한 편과
‘오늘 새가 팩스기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몹시 기뻤습니다!
감사합니다! 라이너 쿤체’
라는 답장을 라이너 쿤체 시인이 보내신 것이다. 이렇게 훈훈한 필담이 전파를 타고 오고 가다니……
전영애 교수님께서 일생의 스승으로 삼았다고 말씀하실 만큼, 라이너 쿤체 시인이 삶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가히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한 일화로 전영애 교수님께서 그동안 독일에 진 빚이 많으시다며 라이너 쿤체 시인이 설립한 재단 부지 안에 시정(詩亭)이라는 작은 한옥 정자를 세우려 했을 때, 처음에는 제자의 부담을 걱정하여 이 ‘과분한 선물’을 받기를 주저하셨다는 이야기. 결국 ‘전영애 교수 부친의 유지를 기린다’는 팻말을 만드는 조건으로 이 선물을 받아들이셨다는 기사 내용도 감동적이었다. 같은 기사에 작은 한옥 정자 시정(詩亭)의 사진이 있는데, 숲과 어우러지고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도나우강을 볼 수 있는 정자라 시를 즐기는 독일인이 한국의 풍류와 멋을 함께 즐길 수 있을 명소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라이너 쿤체의 한국에 대한 애정은 또 다른 시집 『은엉겅퀴』의 5장 「메아리 시조」 편에 수록된 시 13편에서도 알 수 있다. 「메아리 시조」는 2005년 가을 라이너 쿤체 시인이 전영애 교수님 초청을 받아 자비를 들여 한국을 방문했을 때, 오시기 직전 팩스로 먼저 보내셨던 율곡의 「고산구곡가」 첫 곡에 화답하는 시로, 그 밖에도 율곡과 황진이, 황지우의 시를 찾아서 화답 시를 쓰셨다고 한다. 방문하려는 나라의 시를 찾아 읽어, 시로써 그 나라를 알게 되고, 그 마음을 또 시로 쓰시고 방문하셔서 학생과 독자들과 마음으로 쓴 시를 나누는 시인 라이너 쿤체. 2005년 이후 한국 방문은 없으셨는데 이제 구십 세를 넘기신 노시인의 한국 재방문은 아무래도 어려우실 듯 해 진작에 알지 못한 아쉬움만 삼킬 뿐이다.
“반달과 5펜스”에서 필사한 라이너 쿤체의 시를 접한 후, 자연스럽게 라이너 쿤체 시를 번역하신 전영애 교수님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KBS 다큐인사이트 유튜브 영상 《세계적인 괴테 연구가, 서울대 교수를 은퇴하고 홀로 뜰과 서원을 가꾸는 일흔둘 노학자의 이야기》을 보게 되었다. 30분 남짓한 영상에는 아이 같은 미소를 담고 자그마한 체구로 넓은 여백(如白)서원 구석구석을 정성스러운 손길로 가꾸시는 전영애 교수님의 행복한 모습이 담겨있었다. 조근조근 말씀하시는 전영애 교수님은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를 그대로 읽어 주시는 듯했다. 그러니까 전영애 교수님께서 평소 말씀하시는 말습관이 곧 교수님께서 평소 글 쓰시는 문체였던 것이다. 천천히 존댓말로 다정하게 말씀하시는데, 덕분에 이후 교수님의 에세이를 읽을 때면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효과를 얻었다.
여성이 공부하고 일하기 여의치 않았던 시절, 당신 또한 아이를 낳고 두 달 후 아이를 두고 독일 유학을 가셔서 힘들게 공부하셨지만, 독일문학을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표하셨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여건이 많이 좋아진 거라며 젊은이들에게 이야기하실 수도 있을 텐데, 그런 라떼류 발언 일절 없이 그저 당신이 연구하며 알게 된 고귀한 정신을 전해주실 뿐이셨다. 잘하는 후배들은 더 잘하라 격려하고 「뒤처진 새」는 끝까지 하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 마음을 담아 여백서원을 설립하시고 괴테의 마을을 조성하시며 낭독회와 강연을 이어가시는 전영애 교수님에게서 이 시대 진정한 스승의 면모를 보았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공개되는 여백서원을 방문하고 싶기도 했지만, 전영애 교수님께서 반달서림에서 북토크를 해주시면 참 좋겠다 생각해, 반달서림 대표님에게 제안해 보았다. 대표님 또한 전영애 교수님 북토크를 고려해보고 있었다며, 얼마 지나지 않아 전영애 교수님께서 북토크를 승낙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이후 공지를 올리고 세 시간 만에 마감되었다는 소식은,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전영애 교수님의 북토크를 고대했음을 짐작케 했다.
기다리던 북토크 당일 반달서림 단골손님으로서 먼저 가서 자리 정리를 도울 생각에 일찍 갔는데, 조용한 오후의 서점 안에 전영애 교수님께서 책을 읽고 계셨다. 나중에 북토크 때 말씀하시길 북토크 시간인 오후 4시를 오후 2시로 착각하여 일찍 오셨다고…… 함께 있었던 반달서림 대표님의 여덟 살 딸은 훗날 전영애 교수님을 2층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졸고 계신 할머니로 기억한다고 말했는데, 내가 기억하는 모습은 서점 문을 여는 순간 살짝 나른한 오후 사랑스러운 공간에서 서로 다른 세대의 세 여성이 각자의 일을 하던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윽고 북토크가 시작되고 자그마한 체구의 칠순을 넘기신 전영애 교수님께서 약 2시간 남짓한 북토크를 서서 진행하셨다. 의자에 앉아 진행하시기를 권해드렸지만, 서서 강의하시는 것이 편하시다며 그대로 강연을 하셨는데,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듯 교수님의 젊은 열정과 에너지가 전해졌다. 직접 찍으신 듯한 많은 사진 자료에 담긴 놀랍고도 멋진 이야기. 연륜과 애정으로 술술 풀어내시는 교수님 강연에 빠져들어 반달서림 공간은 그 순간 또 하나의 여백서원이 되었다.
여백서원을 지어야겠다 계획하시고, 당신의 전세금으로 여주에 땅을 구입하여 시정 (時亭)을 시작으로 우정 (友亭)과 예정 (藝亭),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 도서관을 차례로 지으셨다. 북토크 당시 총 3,200평의 여백서원을 혼자 관리하시느라 다섯 명 노비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최근의 영상에서 일곱 명 노비의 삶을 살고 계시다고 말씀하셔서 더욱 바삐 지내고 계심을 짐작할 수 있다. 힘이 드실 만도 한데, 여백서원 이곳저곳을 가꾸시는 일을 소개하며 자료 사진을 보여주시는 뿌듯함이 가득하였다. 강연을 들으면서 여백서원이라는 공간이 갖는 힘을 알 수 있었다. 여백서원을 지속할 수 있도록 움직이게 하는 힘.
여백서원을 찾은 누군가는 자발적으로 길게 자란 잔디를 정리하고, 누군가는 예쁜 천연염료로 마루에 색을 입힌다. 또, 독일에서 우연히 만난 누군가는 전영애 교수님 계획을 듣더니 여백서원을 짓는 데 사용해 달라며 기부를 하기도 한다. 공사를 하다가 공사비가 바닥날 때 즈음엔 있는 줄도 몰랐던 예금이 있다며 은행에서 연락을 받기도 하고…… 과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달까? 지성이면 감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달까? 전영애 교수님께서도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며 아이처럼 말씀하시는데, 여백서원을 살아있는 서원으로 만드시려는 확고한 뜻이 가져온 마법인 듯도 싶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괴테학회 회장을 역임하시고, 2011년 독일의 유서 깊은 바이마르 괴테학회에서 괴테금메달을 수상하신 명실공히 괴테 전문가로서 전영애 교수님은 「괴테할머니tv」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계신다. 라이너 쿤체 시인이 전영애 교수님의 일생의 스승이시라면, 괴테는 전영애 교수님의 일생의 탐구 대상이라고 하시며, 당신이 번역한 책을 낭독해 주시기도 하고 독일 문학에 대한 이야기, 인생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하여 가끔 들어가 보는데, 이 시대의 어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위로가 되고 때로는 나 자신을 반성하기도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서로 다른 우주. 그중 괴테의 우주는 넓고도 깊은 우주였다. 인형극 상자를 만들어 괴테가 5살 때 선물하고, 어린 손자 괴테를 앞에 앉혀 인형극을 하신 괴테의 할머니. 괴테를 양육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고 한 괴테의 아버지는 괴테를 대학 진학할 때까지 직접 가르쳤고,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나는 괴테의 어머니는 아이들 편에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양육했다고 한다.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떠오르며, 괴테의 글 “부모가 자식에게 주어야 할 것은 뿌리와 날개다.”를 다시 가슴에 새겨 본다.
전영애 교수님은 괴테마을을 계획하고 2023년 10월에 괴테 마을의 첫 번째 집 첫 「젊은 괴테의 집」을 개관하였다. 괴테마을은 유럽 전역에 괴테와 관련된 집들을 모아 이룬 마을로 아직은 첫 번째 집 완성만 예정되어 있을 뿐, 나머지 집들은 실제로 완성이 될지 알 수 없다고 하셨다. 첫 번째 집을 「젊은 괴테의 집」으로 한 이유를 말씀해 주셨는데, 한 사람이 큰 뜻을 세우면 얼마만큼의 일을 이룰 수 있는가를 괴테를 한 예로 들어 젊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라고 하셨다.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말씀하신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단지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간을 만들어 젊은이들이 그 공간에 있게 함으로써 스스로 오감을 통해 깨닫게 해주고 싶으셨던 마음. 그 뜻이 한 사람 한 사람 가슴에 닿고 있는 만큼 한 채 한 채 차곡차곡 계획대로 지어지면 좋겠다.
「젊은 괴테의 집」은 월요일을 제외한 날은 누구나 방문이 가능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니 꼭 한 번 찾아가 봐야겠으나, 그전에 「괴테할머니tv」에 30분 분량의 랜선 투어가 있어 온라인 방문으로 「젊은 괴테의 집」 안팎을 다니시며 공간과 소품이 갖는 의미와 취지를 설명하시는 전영애 교수님을 뵈었다. 괴테의 긴 생애 끝에 쓴 글귀라는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내가 살아 있는 것, 알게 되었네.’가 전영애 교수님에게서도 보였다. 앞으로의 희망은 박수부대라며 해맑게 웃으시는 전영애 교수님.
교수님은 1974년 『파우스트』를 번역하시며 괴테에 관심이 생겨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지금껏 나는 그저 괴테를 ‘독일의 대문호’로만 알고 있을 뿐 괴테의 책 한 권 읽어 본 적 없었다. 심지어 괴테의 그 많은 문장도 접해 본 적 없었는데,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를 읽고 북토크를 들은 후 괴테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평생 이만 통이 넘는 편지를 쓰고, 60년에 걸쳐 『파우스트』를 집필하며 사후 공개하도록 한 괴테. 바이마르 공화국의 재상을 지내기도 하고 색채와 식물에 호기심을 가지고 연구하여 『색채론』과 『식물 변형론』을 쓰기도 하고, 괴테의 인생과 독일 문화사를 바꾼 『이탈리아 기행』도 썼다 하니, 읽고 싶은 괴테 대작이 한 두 권이 아니다. 매해 신년 계획으로 괴테 저서 읽기를 추가해야겠다.
이제 기억에 남는 몇 개의 괴테의 문구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의 소망이란 우리들 속에 있는 능력의 예감이다.” (「괴테할머니tv」)
내가 소망하는 것이 바로 내 안의 능력의 예감이라고 하니, 소망하는 것은 꼭 이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용기가 생긴다. 소망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직 모른다는 뜻, 소망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그보다 한 단계 성장했고, 한 단계 성장을 기반으로 또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다음으로 시간의 중요성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문구
“내가 받은 유산 얼마나 찬란하고 얼마나 넓디넓은지
시간이 나의 재산, 내 경작지는 시간”
아울러 시간의 구체적 사용법도 몇 가지 적어두었는데 그중 손자 발터를 위해 쉽게 썼다는 글
“오늘과 내일 사이에는 아직 긴 시간이 있다.
처리하는 법을 빨리 배우라 졸리기 전에.”
피부에 와닿게 이해되면서 웃음이 났다. 아울러, 몇 년 전 함께 프로젝트를 했던 일본 회사의 팀장님에게 듣고는 곧바로 내 인생의 글귀로 삼은 글이 떠올랐다.
“네가 어떤 일을 받으면 까먹기 전에 넘겨라.” 팀장으로서 적재적소에 업무 분장을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까먹기 전에 넘기라’는 표현이 참 재미있어서, 이후 일을 받고 넘겨야 할 일이라고 판단되면 바로바로 적임자에게 지시하여 넘기는 습관이 생겼다. 마찬 가지로 졸리기 전에 오늘과 내일 사이의 시간을 처리하는 법을 배워 잘 활용해 가겠다.
마지막 글귀는 괴테가 60년에 걸쳐 쓴 『파우스트』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지금까지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로 번역되어 온 문장인데, 전영애 교수님 생각에 이 문장에는 “노력한다”이라는 단어가 주는 땀냄새가 너무 강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수십 년을 고민해 왔지만, 괴테가 의미하고자 하는 것이 단지 ‘노력’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지향이 있는 한’으로 바꾸셨다고…… 지향을 가진 인간이라면 흔들림 없이 지향점을 향해 꾸준히 나아갈 텐데 방황을 한다는 것이 모순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비록 지향점은 있을 지언 정 그 지향점에 닿기 위한 길은 알 수 없어 방황하는 사람을 생각할 수 있었다. 앞서 말한 ‘우리의 소망’이 ‘우리 안의 능력 예감”이라는 것과 연계하여, 우리 안의 능력을 깨우는 과정에서 방황이야 있겠지만 깨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소망을 이루고 지향점에 닿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과연 『파우스트』를 읽은 후엔 이 문장이 어떻게 다가올지 무척 궁금한 관계로, 이 책을 괴테의 대작 가운데 제일 먼저 읽어야겠다. 그리고 전영애 교수님께서 이제 절반정도 진행하셨다는 『괴테전집』을 완성하시면 그때는 그 책도 읽기 시작해야겠다.
*참고자료
1.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전영애, 문학동네, 2021
2. 한국일보 기사 [다시 본다, 고전] 「너를 밀어내고 나를 드러내야 이기는 세계… 시인은 ‘사라짐’으로 답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12413320002662?did=NA)
3. 조선일보 기사 [송의달 LIVE] 「40년 넘게 전영애 서울대 교수를 사로잡은 괴테의 세 가지 힘」 (https://www.chosun.com/culture-life/2023/12/20/AHIA33L2TRDSZK2GFZPSLUC364/?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4. 『나와 마주하는 시간』 라이너 쿤체/전영애∙박세인, 2019
5. 『은엉겅퀴』 라이너 쿤체/전영애∙박세인, 2022
6. 오마이뉴스 기사 [스승을 말한다] ‘괴테 연구 세계적 권위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라이너쿤체와의 만남, 시와 학문을 아우르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45433&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7. KBS 다큐인사이트 《세계적인 괴테 연구가, 서울대 교수를 은퇴하고 홀로 뜰과 서원을 가꾸는 일흔 둘 노학자의 이야기》, 2022.12.29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L7H3PZGKuKk)
8. 유튜브 채널 「괴테할머니tv」 (https://www.youtube.com/@Goethe-Dorf)
9. 반달서림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전영애 교수님 북토크 안내문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3106564525?trackingCode=blog_bloghome_search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