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달과 5펜스가 사랑하는 유진목 시인과 함께 하는 낭독회
* 제10회 반달과 5펜스가 사랑한 한연희 시인과 함께 하는 낭독회 : 2024년 4월 27일 (토요일)
낭독회
반달서림 대표님이 베트남으로 떠났으니 당분간 (당분간이라고 쓰고 향후 4년 동안이라고 읽는다) 시낭독회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시와 사람이 어우러져 만든 다양한 감정과 느낌을, 시인과 함께 말과 글로 공유하였던 2022년과 2023년의 따뜻한 시낭독회를 그리워하며 2024년 한 해를 보내겠거니 생각했다.
그랬는데, 2024년 4월 예정된 김탁환 작가님 북토크 진행 차 대표님이 한국에 방문하는 기간에 맞추어, 시낭독회도 열기로 했다는 것이 아닌가? 그 깜짝 시낭독회의 주인공은 유진목 시인이었다.
반달과 5펜스는 유진목 시인의 시집 『연애의 책』과 『작가의 탄생』에서 각각 다섯 편씩 발췌하여 총 열 편의 시를 필사하였다. 신기하게도 신진목 시인의 시는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읽으면 머릿속에 영상이 재생되는 특징이 있었다. 특히, 『작가의 탄생』 시집은 ‘장’이나 ‘부’가 아닌 ‘막’으로 구분하고, 8막의 「식물원」은 시나리오처럼 쓰여 있어, 시나리오집의 경계를 오가는 시집인가 싶었는데, 시낭독회에서 유진목 시인이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시를 읽을 때의 그 묘한 느낌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접몽」과 「인간은 머리를 조아리며 죽음에게로 간다」 두 편의 시가 인쇄된 현수막 아래 큰 키에 시크한 카리스마를 지닌 유진목 시인이 자리한 후, 담백하지만 무게 있게 시낭독회가 시작되었다.
「접몽」은 유진목 시인이 감독으로서 동명의 제목으로 2017년 시나리오를 쓰고 2021년 영화를 만들기도 하였다는 사실도 시낭독회에서 알았다. 시낭독회 후 25분의 짧은 독립영화라 쉽게 감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는데, 짧은 예고 동영상을 볼 수 있을 뿐 영화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아쉬운 대로 영화 「접몽」 예고 동영상을 보니, 시낭독회 때 유진목 시인이 이야기했던 마침 그 대목이었다. 짝을 맞추어 구입한 접시, 어느 날 그 접시 중 한 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 사라진 접시의 행방에 대해 생각하고 남편 혹은 연인과 대화하는 이야기하는 대목. 제목을 보고는 장자의 나비 이야기와 같이 사물과 물아일체의 상태를 표현하는 영화와 시로 짐작했다. 현실과 꿈의 모호성을 상징하는 장자의 나비 역할을 영화에서는 접시, 시에서는 당신이 하고 있어 얼추 비슷하지 않나 싶다.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모호하고 몽롱한 시의 해설을 시인에게 들음으로써, 모호함의 안개와 몽롱함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었지만, 유진목 시인은 모든 것은 시에 담겨 있다며, 시에 대해 (시인이) 답을 하는 순간 그 시의 수명은 다한 것이라 생각한다는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을 해주었다.
오롯이 시 그대로 독자에게 다가가 독자 나름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시라는 그의 말을 들으니 시를 읽은 독자들이 이런저런 느낌과 해석을 공유하는 것과, 시인이 직접 답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반달과 5펜스가 사랑한 시인들’ 시낭독회를 위해 찾았던 여러 시인들 면면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시인들 마다 시를 소개하는 다양한 관점을 생각해 보았다.
시를 쓰게 된 배경과 시의 대목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 시인,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짝 암시를 주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은 시 안에 있으니 시를 읽으며 시 속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으라고 용기를 주며 말해주는 시인도 있다. 이렇듯 독자로서 시에 접근하는 여러 방향을 제시해 주는 시인들이 있어, 새로운 시인의 시낭독회에서는 과연 어떤 관점으로 시를 소개하고 낭독할 시인인지, 또 시낭독회에서 만났던 시인이 새 시집을 내고 여는 시낭독회에서는 이전에 참석했던 시낭독회를 떠올리며 이번 시낭독회는 어떻게 진행될지 기대를 하며, 꿋꿋하게 시와 시낭독회를 즐기며 살아갈 것 같다.
다음으로 낭독한 시는 「망종」으로 내레이션을 따라서 쓴 시라고 한다. 다시 쓰기 어려운 시라고 생각해서 좋아하는 시라고 유진목 시인이 말하니 흥미가 생겼다. 꿈과 현실의 만남에 집중에서 시를 쓰려한 때가 있었고, 일상에 끼어든 꿈을 서사로 만들어 시로 쓰고 싶어 쓴 시가 「망종」인데, 「낮잠」 또한 그렇게 쓰인 시라고...... 유진목 시인은 집착과 집념이 있어야만 글을 쓰는 스타일로 꿈에 집착했으며, 집착은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망종」에서 ‘가끔씩 내가 다른 사람이 꾸는 꿈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라는 구절에서 20대 어느 날 꾸었던 과거의 나를 보는 꿈을 생각한다. 단칸방에서 아기인 나를 돌보는 젊은 부모님을 바라보는 나, 어린 시절 골목에서 노는 나를 보는 나. 꿈에서 깬 지도 여러 해가 지났지만 꿈에서 느꼈던 따뜻하고 그리운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유진목 시인과 나눈 꿈과 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눈 가운데 기억에 남는 두 가지는, 꿈속에서도 내가 나를 복기하고 있고, 현실보다 꿈에서 감정의 폭도 크고 정직할 수 있어 더 큰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데, 꿈처럼 시 역시 감정과 행위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 하나와, 또 내가 먼저 나를 타인화하여 소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의 타자화’ 연습을 많이 한다고 하는 이야기 둘이다. 솔직하고 자유로운 감정 표현과 나를 타자화 할 수 있다는 공통점으로 시는 꿈의 세계와 잘 맞는 장르라 인정할 수 있었다.
다음 낭독한 시 두 편은 그 시를 쓸 당시의 장소에 영향을 받았다고 유진목 시인은 말했다. 말이 어떻게 이어지고, 잡히지 않는 단어에 집착하며 단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신경을 쓰며, 전체는 조망하지 않고 시를 쓰던 스물한 살에 쓴 시 「당신의 기원」. 이 시를 썼을 때의 반지하에 높은 창문이 있던 집이 떠오른다고…… 제주도에 살고 있을 때의 집으로 먹을 것을 직접 해서 먹어야 했던 시기로 살림에 집중했던 시기에 쓴 시 「뒷문이 있는 집」.
거실 베란다 앞에 놓은 테이블 앞에 앉아 이따금 베란다의 화초들과 그 너머 산과 거리를 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글을 쓰는, 지금의 내 모습을 나중에 이 글을 볼 때면 떠올릴 것 같다. 동네서점이 내게 준 혜택을 나누려 빈약한 어휘로 한 문장 한 문장 부끄럽게 써 내려가는 내 모습을…… 부족함을 알지만 그래도 꾹꾹 진심을 담아 글을 쓰는 이유는 동네서점과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은 소망 때문이다. 동네서점 홍보를 하는 글이라 해도 좋다. 아니 오히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동네의 문화공간으로 동네서점을 적극 활용하였으면 하는데, 그러려면 정부의 지원과 많은 사람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겠다. 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불씨 하나 되고픈 마음으로 책방뿐 아니라 동네의 문화 공간과 문화행사 참관기를 꾸준히 글로 써보려 한다.
글을 쓸 때는 거점을 옮겨서 쓰는 편이라는 유진목 시인은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어디인지 묻는 질문에 쿠바와 하노이를 말했다.. 새로운 곳으로 훌쩍 떠나 한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글을 쓰는 몸을 담고 글을 쓰는 작가라…… 어떤 의미로 노마드족 Nomad 인가 싶었는데, 쿠바를 이야기하며 가고 싶지만 정작 쿠바에 가있으면 집에 가고 싶은 곳이라는 상당히 공감 가는 말을 하여, 완전한 노마드는 아닌 반노마드족인 듯하다. 항상 돌아올 수 있는 기점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 기점의 하나가 부산 흰여울문화마을에 유진목 시인과 손문상 화백이 운영한다는 카페 겸 책방 ‘손목서가’ 일까 궁금했는데, 그 책방은 이제 두 분이 운영하지 않는다고 하여 왠지 아쉬웠다.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익숙함과 편안함을 기점으로 두고 조금씩 자유롭게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번 시낭독회에서 얻은 가장 큰 이득이다.
*참고 자료
1. 『연애의 책』 유진목, 2022(개정판), 문학동네
2. 『작가의 탄생』 유진목, 2020, 민음사
3. 반달서림 블로그의 유진목 시인 시낭독회 안내문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3409930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