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달클래식클럽 두 번째 책 음악회
* 제11회 반달음악회 아르케컬처 「반달클래식클럽」: 2024년 3월 23일 (토요일)
2023년 6월 10일 제9회 반달음악회는 아르케컬처 대표님이 모임장이 되어 운영하는 독서모임 「반달클래식클럽」 1기부터 3기까지 함께 읽은 9권의 책을 주제로 한 음악으로 구성된 음악회였다 (관련글: https://brunch.co.kr/@ebec0174a6a7411/37). 이 후로도 「반달클래식클럽」은 이어지고 있었고, 9개월이 지나 다시 함께 읽은 책 9권이 모인 시점이 되자, 동일한 구성으로 책과 함께 하는 또 하나의 소중한 음악회가 열렸다.
4기에 읽은 책은 『사랑하는 예술에게』,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스타인웨이 만들기』로 음악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각기 다른 색을 가지고 다양한 방향으로 쓴 책이어서 매달 책 읽는 재미와 책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예술에게』로 모임을 했을 때 저자인 임 에스더 오르가니스트의 친절하고 다정한 설명으로 초보인 나는 한층 클래식 음악에 다가갈 수 있었고, 클래식 음악을 포함하여 문화 전반에 조예가 깊은 다른 회원들은 책 내용에 공감하며 자신들의 문화적 경험과 감상을 나누며 소통을 하었다. 아르케컬처 대표님이 이 책을 읽고 음악회 연주곡으로 선택한 곡은 그리그의 서정모음곡 중 1권 Op.12 1번 아리에타, 2번 월저 (E. Grieg <Lyric Pieces Op.12 1. Arietta 2. Walzer>)이었다. 부드럽고 편안하지만 연약하지 않은 선율로 여유를 만들어 줌으로써 오히려 좋은 삶을 향한 힘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 <서정 모음곡>을 들어 보면 저마다 아름다운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나비', '멜로디', '여름날의 저녁', '오래된 사랑', '회상' 등. 소박한 것을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재능이 있었던 그리그의 시선으로 한 곡 한 곡이 아름답게 쓰였습니다. 마치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요.
- 『사랑하는 예술에게』중에서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와 함께 한 시간은 지난 글 (https://brunch.co.kr/@ebec0174a6a7411/43)에 썼듯이,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연주자를 이해하며 그의 음악 세계의 흐름과 세계관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늦은 저녁시간에 늦은 저녁 회원들과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를 보며 감동을 나누었던 순간도 기억으로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다. 음악회에서 아르케컬처가 연주한 음악은 영화 《마지막 황제 (The Last Emperor)》에 사용된 음악 <Rain>이었는데, 음악 자체도 좋았지만 책에서 이 음악을 작곡하게 된 경위가 유쾌하게 서술되어 있어, 읽으면서 그리고 함께 토론하면서 다 같이 즐거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촬영 현장에는 음향 기재도 없는데 작곡과 레코딩에 쓸 수 있는 시간은 겨우 사흘밖에 안 된다고 했다. 베르톨루치 감독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엔니오는 어떤 음악이든 그 자리에서 당장 작곡했어."
그러니 나로서는 못하겠다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중에서
피아노 제조업체인 스타인웨이 사의 역사를 담았다고도 할 수 있는 『스타인웨이 만들기』는 「반달클래식클럽」 3기에서 읽었던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 (Lev’s violin)』을 연상케 했다. 하나의 악기를 만들기 위해 재료부터 다각도로 살피고 노력하는 장인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흥미로울 줄이야. 나의 반려악기인 우쿨렐레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있을까 궁금해 찾아보지만, 악보집과 에세이는 나와 있지만 우쿨렐레 제작사의 이야기는 아직 없는 듯하다. 좀처럼 늘지 않는 실력이지만 작다면 작은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노라면 마음이 편해져, 그야말로 반려한다는 마음이 들기에, 연주 … 아니 연습을 하면 할수록 우쿨렐레를 더 잘 알고 싶어 진다.
5기에서 읽은 책은 『엔니오 모리코네의 말』,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생각합니다』, 『펜으로 쓰는 춤』이었다.
「반달클래식클럽」 3기에서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을 감명 깊게 읽었기에, 『엔니오 모리코네의 말』에도 기대를 가졌고, 과연 영화 《시네마 천국》와 《미션》의 아름다운 음악과 영화 《황야의 무법자》의 쓸쓸한 음악이 나오기까지의 그 뒷 이야기 등 엔니오의 삶과 일 흥미로웠다. 그러니 보았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이 영화를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로써 대담 형식의 책을 읽는 재미가 더해졌다.
나는 저급하다고 평가받는 작품에도 나의 음악적 자질과 의지를 쏟아 부었습니다.
...
세르조 영화들이 흥행한 뒤부터 다들 서부영화 음악을 의뢰했어요. 계속 서부영화뿐이었어요. 난 못내 거절해야 했습니다. 서부영화 작곡가로 분류되어 그 밖의 영화에서 배제되고 싶지 않았거든요. 계속 나만 찾는 그 악습을 반드시 멈춰야 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부딪혔죠.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주었는데 나는 전문가가 아니었으니까요.
- 『엔니오 모리코네의 말』중에서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생각합니다』를 보면서 저자는 정말 음악을 좋아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사랑하는 예술에게』의 저자 임 에스더 오르가니스트가 차분하고 조곤조곤한 어조로 음악 이야기를 풀어가며 음악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면,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생각합니다』의 저자 정경영 음악학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음악 이야기를 폭넓고 세세하게, 그리고 다소 상기된 어조로 함으로써 얼마나 음악을 좋아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은 같지만 표현 방식은 다른 두 사람의 책을 보며,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과연 누가 처음으로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렀을까요? 혹시 이런 궁금증을 가져본 적 있으신가요? 사실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한 사람은 여러분도 다 아는 사람, 바로 모차르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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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과연 모차르트는 어떤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한 걸까요?
"어떤 바흐라니? 바흐가 여러 명이란 말이야?"
네, 여러 명입니다.
-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생각합니다』중에서
한편 아르케컬처 대표님은 음악은 관계라고 생각하고 곧바로 모차르트를 떠올렸고, 바이올린 전공자인 만큼 바이올린 소나타 (W. A. Mozart <Violin Sonata No.18. G. Major. K.301 II. Alegro>)를 선곡했다고 말한 후 연주에 돌입하였다.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대표님의 마음과 열정이 전해졌다.
『펜으로 쓰는 춤』은 제목이 저자를 너무 잘 설명하고 있다. 저자인 김윤정 안무가의 글에 그녀의 생각이 오롯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녀의 사유가 춤으로 표현되는 것이라 몸짓 하나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자기만의 안테나를 바로 세워 자신에게 맞는 주파수를 맞추고 자기다움을 표현한다고 말하는 아르케컬처 대표는, 그래서 음악회에서 바그너의 꿈 (R. Wagner <Träume>)을 아련하게 연주하였다.
쿠사마 야요이의 전시는 생명과 자연의 입자들이 영원 속으로 날아오르는 이미지로 관객에게 무한대라는 세상에 빠진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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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쿠사마 야요이의 고통이 승화된 내면이 보이는 <자화상>이란 페인팅 작품이 특히 와닿았는데, 검은 바다를 배경으로 성충을 뚫고 나온 나비들이 그녀의 깊은 내면과 맞닿아 있는 느낌이었다.
-『펜으로 쓰는 춤』중에서
6기에서 읽은 책은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 『베토벤 현악 사중주』, 『예술가란 무엇인가』였다.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의 저자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의 섬세한 감각은 글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그야말로 예리하면서도 차분하게 기술되어 있다. 가령 여행을 가서 묵는 호텔 숙소의 방 호수는 ‘9의 규칙’을 지킨다든지 하는……. 하지만 그 섬세함이 싫지 않다. 악보를 절대 외우지 않는 그에게 꼭 필요한 사람, 악보의 페이지를 넘기는 페이지 터너에 대한 생각을 쓴 글에 담긴 유대감과 감사에서 겸손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는 악기와 떨어져 여행한다. 따라서 악보는 앞으로 있을 콘서트에서 그의 주된 물리적 닻이 된다. 피아니스트에겐 악보가 전부다. 내 악보는 나의 무대 동반자다. 나는 절대 외워서 연주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악보는 내가 정성 들여 만든 검은 표지에 덮인 채, 저녁 내내 청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군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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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터너는 없는 사람 같아야 한다. 최고의 페이지 터너는 일본인이다. 그들은 옷차림만 봐도 예술 그 자체다. 외과 의사처럼 정확한 그들의 동작은 의식 같고, 음악에 대한 그들의 헌신은 경건하다. 페이지 터너는 도우미다. 무예에 가까운 몸짓으로 좋은 음식을 내놓으며 행복해하는 호텔 지배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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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중한 도우미들이여, 그대들이 없다면 나는 하찮은 존재입니다.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중에서
거기에 알렉상드르 타로는 전 세계의 공연장 중 좋아하는 공연장에 LG아트센터를 포함시켰는데, 나도 그 공연장을 좋아했기에 반가운 마음이었다. 역삼에서 마곡으로 옮긴 새로운 LG 아트센터가 알렉상드르 타로의 마음에 들지 궁금하다. 음악회 연주곡으로 라벨의 곡 (M. Ravel <Vocalise-etude en forme de Habanera, M.51>)을 연주했는데, 라벨의 음악은 앞서 타로의 페이지 터너를 표현했던 말로 외과 의사처럼 디테일을 살려서 연주해야 한다는 대표님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면서 마지막 곡으로 포레의 4 hands 곡 (G. Fqure <Dolly Op. 56 I. Berceuse>)을 연주하며 이 곡은 꼭 알렉상드르 타로가 연주한 곡을 들어보기를 권했다. 마침 대표님이 공유해 준 유튜브 채널 마지막 곡에 해당 영상이 있어 보았는데, 두 사람의 조화로운 연주가 편안함을 주었다. 4 hands 속 다른 2 hands의 주인공인 니콜라스 안겔리치는 이 연주 1년 뒤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어 어쩌면 더욱 찡한 가슴으로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베토벤 현악 사중주』는 베토벤의 현악 4중주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좋았지만, 베토벤의 인간적인 면모에 더 큰 감명을 받았다. 특히 자식처럼 생각한 조카 카를과 애증의 관계를 지속했지만, 이를 견디지 못한 카를이 권총 자살을 시도하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빌었다는 부분에서 진정 조카를 위하려는 베토벤의 진심이 느껴진 것이다. 이 책은 당시 도서관에서 대출을 해서 읽었는데, 읽으면서 베토벤을 이해하는 책으로서 소장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가란 무엇인가』는 비교적 적은 페이지수에 여러 예술가들이 남긴 단상이 중간중간 담긴 책으로,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비교적 자세히 설명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연주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 타이머를 놓고, 건반 뚜껑을 닫고 닫는 동작만 3번 반복할 뿐, 건반은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 4분 33초를 보내는 그 시간의 흐름이 음악이라니…… 소리의 부재에 대한 곡이라는 설명은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을 귀로 듣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음악회에서는 이 곡을 대신하여 존 케이지 (J. Cage)의 <In a Landscape>가 아스라이 들렸다.
케이지는 이 두 가지 일화를 통해 감각을 자극하는 모든 원인을 제거하려고 했음에도(케이지의 경우에는 소리를 제거했다.) 인지할 수 있는 감각 요소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정신은 표면적인 동일성에서도 차이를 발견하려는 경향이 있는 듯했다.
그리하여 확신을 얻은 케이지는 소리의 부재를 의도적으로 사용한, 동시에 소리의 부재에 대한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음악이 바로 <4분33초 4'33''>이다.
-『예술가란 무엇인가』중에서
앵콜곡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을 들으며 이 날의 반달음악회는 끝이 났다. 하지만, 「반달클래식클럽」은 계속 이어져 예술과 문화 분야의 여러 책을 읽으며 그와 관련된 음악을 생각하고 들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둘 모아진 에너지가 다음 반달음악회에서 형형색색으로 발현될 것을 이제는 당연하게 생각한다.
* 참고자료
1. 『사랑하는 예술에게』 임 에스더, 르비빔, 2023
2.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류이치 사카모토/양윤옥, 청미래, 2023
3. 『스타인웨이 만들기』 제임스 배런/이석호, 프란츠, 2020
4. 『엔니오 모리코네의 말』 엔니오 모리코네,주세페 토르나토레/이승수, 마음산책, 2022
5.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생각합니다』 정경영, 곰출판, 2021
6. 『펜으로 쓰는 춤』 김윤정, 오렌지디, 2023
7.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 알렉상드르 타로/백선희, 풍월당, 2019
8. 『베토벤 현악 사중주』 나성인, 풍월당, 2020
9. 『예술이란 무엇인가』 레너드 코렌/박정훈, 안그라픽스, 2021
10. 반달서림의 반달음악회 안내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3374902948)
11. 반달서림의 반달음악회 후기글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3393013824)
12. 아르케컬처 유튜브 채널 재생 목록 중 반달음악회 「반달클래식클럽」(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8UUJ1D1syiQCtojKbKMeHF9vTaAe-cPD) - 3/23인데 4/23으로 날짜가 잘못 기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