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달클래식클럽 세 번째 책 음악회
* 제12회 반달음악회 아르케컬처 「반달클래식클럽」: 2025년 4월 25일 (금요일)
반달클래식클럽에서 읽은 책을 주제로 한 세 번째 음악회이자 새 보금자리로 이전한 반달서림에서의 첫 음악회였다. 새로운 무대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관객석은 어떻게 마련될지 궁금증을 품고 음악회를 찾았다.
2023년 6월 (https://brunch.co.kr/@ebec0174a6a7411/37)과 2024년 3월 (https://brunch.co.kr/@ebec0174a6a7411/46)에 이어지는 이번 반달클래식클럽 책음악회. 동일한 주제로 하는 세 번째 음악회로서 이제 명실상부한 반달서림 정통 음악회로 자리 잡았다고 할 만 하지 않을까?
7기부터 11기까지 읽은 책 총 15권 중 8권의 책 이야기를 곁들여 음악을 들었다. 각각의 책과 상응하는 음악은 아래와 같다.
1. 『생각의 음조』 by 한병철 / 바흐 「프랑스 조곡, 사라방드」 (J.S. Bach: French Suite No. 3 in B Minor, BMV814: III. Sarabande)
2. 『음악 수업』 by 파스칼 키냐르 / 바스크의 춤곡 (Le Basque)
3. 『세이렌의 노래』 by 이디스 재크 / 에이미 비치의 「로망스」 (Amy Beach: Romance for Violin & Piano, Op.23)
4. 『피아노로 돌아가다』 by 필립 케니콧 / 멘델스존의 「무언가」 (Mendelssohn Songs without Words Op.53 no.1 in A flat Major)
5.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by 최혜진 / 그리그 「소나타 3번 2악장」 (Grieg: Violin Sonata No. 3 in C Minor, Op.45: II. Allegretto espressivo alla Romanza)
6. 『여기, 카미유 끌로델』 by 이운진 / 폴랑 「사랑의 길」 (Poulenc: Les chemins de I’amour FP106)
7.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by 피에르 베르제 /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8.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 by 양성원&김민형 / 포레 「자장가」 (Faure: Berceuse, Op. 16)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 음악회에서 연주한 음악들이 책의 주제 혹은 분위기에 맞게 선곡되었음을 알겠다. 이런 선곡이 나오기까지 아르케컬처 대표님의 고뇌가 얼마나 깊었을까? 지난 1회와 2회 반달클래식클럽 책음악회에서도 그랬듯 음악을 연주하기 전 대표님이 책 이야기를 할 때면, 독서모임에서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와 감상들이 떠오른다.
저 책들 모두, 회원들이 좋아했던 책으로 많은 이야기가 오갔는데, 이 중 『여기, 카미유 끌로델』은 읽고 난 후 모두가 가슴 아파한 새끼손가락 같은 책이었다. 천재 조각가였지만 로뎅의 뮤즈이자 버림받은 연인으로 알고 있던 그녀를 영화 『까미유끌로델』로 본 적이 있었다. 영화를 볼 때의 나는 그녀의 삶을 이해하기엔 어렸을까? 그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안타까움이 이번 책을 읽은 후엔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유명작가이자 외교관이었던 까미유 끌로델의 남동생 폴 끌로델은 차치하고,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그녀의 어머니였는데, 딸을 아꼈던 남편이 사망하자마자 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이후 단 한 번을 보지 않고 끝끝내 병원에서 세상의 마지막을 맞이하도록 한 어머니의 마음이란? 자신의 남편이 딸인 까미유의 재능을 아끼고 특별히 딸을 애정하는 것에 대한 질투가 어느 정도 깊어야 딸을 그렇게까지 미워할 수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불가였고, 그래서 까미유 클로델에게 드는 가여운 마음이 컸다.
가여운 마음을 격렬하게 느끼며 대표님이 선곡한 폴랑의 「사랑의 길」을 듣고 있노라니, 까미유 클로델의 조각 「왈츠」가 떠올랐다. 역동적으로 왈츠를 추며 굴레에서 벗어나는 듯 행복했던 순간. 그 순간을 되뇌며 살았을 그녀의 삶이 또 안쓰러웠다.
『여기, 카미유 끌로델』을 읽기 5개월 전 먼저 읽은 『세이렌의 노래』에 등장한 여성 작곡가들도 함께 떠올랐다. 그 여성 작곡가들이 지금까지 받은 평가와 명성은, 주변 남성 음악가들에 가려지거나 심지어 착취당한 탓에 그녀들이 가진 능력에 비해 소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비록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지 언정, 그녀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음악에 대한 스스로의 열정과 애정으로 예술활동을 지속했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자립하려는 노력이 까미유 끌로델에게는 부족했을까? 현실적인 벽을 느끼기에 음악과 미술이라는 장르 간 차이가 있지 않았을지 생각해 본다. 생각해 보면 유명 화가들이나 조각가는 후원자가 있어 마음 놓고 작품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로뎅을 제외하고는 후원자라 할만한 사람이 없으니, 까미유 끌로델은 조각을 하기 위한 재료를 마련하려면, 특히 대리석 같은 고가의 자재를 다루려면, 작품을 판매하고 그 비용으로 다시 재료를 구입하여 작품을 만드는 방식으로 이러한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하는 순환구조를 만들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까미유 클로델은 스스로 부숴버린 작품이 많았다고 책에는 언급하고 있어, 좁은 곳에 갇혀 날개를 활짝 펴지 못해 몸부림치는 가여운 새를 보는 듯 해 슬펐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시스템을 찾거나 마련하거나 했으면 하는 다소 막연한 생각을 해본다.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는 『여기, 카미유 끌로델』과는 상반된 책이다. 2008년 6월 1일 세상을 떠난 이브 생 로랑에게 연인 피에르 베르제는 편지를 썼다. 장례식 추도식을 시작으로 하여 이브 생 로랑 1주기에 낭동학 추도문을 끝으로 한 편지글은 50년을 함께 한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그와 공유했던 예술에 대한 회상과 애정으로 가득했다. 그러니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바로 그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로 자연스럽게 감정 이입되는 한 편, 까미유 끌로델 사망 시 행려자들의 공동 무덤에 묻혔던 사후 상황과 상반된 느낌이라 또다시 안쓰럽다.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을 읽고 서늘한 첫인상을 가진 북유럽의 따스한 그림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익숙한 칼 라르손의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담은 그림은, 자세한 설명과 간절함이 어우러져 아름답게 느껴졌다.
칼 라르손 그림 속 일상의 찬란함은 불로소득이 아니며, 불공정 억압의 결과도 아니다. 의도된 선택과 박제에 가깝다. 그의 그림을 다시 본다. 목소리가 들여온다. 너무 간절했다고, 이 웃음이, 이 햇살이, 사랑으로 가득한 작은 공간이, 이 모두가 사라지지 않게 붙잡아두고 싶었다고.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중에서
독서 모임에서 생긴 북유럽 그림에 대한 관심이 이번 추석 명절을 앞둔 연휴에 나를 부산으로 이끌었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스웨덴 여성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독서 모임 회원 한 분이 다녀온 후 추천해 준 전시회였다. 연휴를 앞두고 전시회가 종료되는 무렵이어서 그런지 관객이 붐비지 않은 쾌적한 상태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전시회장 마지막 파트에 분리된 어두운 공간, 편한 빈백 의자가 여유 있게 마련된 장소에서 94분가량의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었다. 빈백 의자에 반 누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에 빠져 감상을 끝마치고 나오니, 미술관에서만 거의 4시간가량 있었던 듯했다.
육아와 가사와 같은 여성의 삶은 자신의 생에서는 없을 거라 단언하고 예술을 숙명으로 여겼던 힐마 아프 클린트. 신지학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몇몇 그림을 포함하여 본인 사후 일정 기간 동안 전시하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는 글을 먼저 접해서 그녀의 그림이 몹시 궁금했다. 왜 그런 유언을 남겼을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며, 유언의 유효기간 만료로 전시를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그림을 감상하였다.
그림 한 점 한 점 영혼이 담긴 듯 경건한데, 다시 그 그림을 따라 그린 많은 습작을 보며, 끊임없는 노력 또한 담겨 있음을 알았다. 특히, 3m 높이의 10점의 대형 그림이 압권이었는데,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로 나누어 추상적 표현을 각 시기의 색에 담은 그림은, 한 사람의 인생책을 보는 듯 해 아무리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았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제공한 팸플릿의 소개글이 마음에 와닿아 실어 본다.
“1907년에 제작된 <10점의 대형 그림>은 높이 약 3미터에 달하는 캔버스 열 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 생애의 네 단계를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화면은 원, 나선, 곡선 등 자유로운 형상과 색색의 운동으로 가득 차 있으며 추상과 상징, 언어와 비언어적 흐름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연작은 힐마 아프 클린트의 형식 실험이 가장 극적으로 구현된 예시이자 이후 작품의 구성 방식을 예고한 결정적인 작업이다.”
또 대립과 조화를 표현한 <백조> 연작을 보면서 요즘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요소를 작품으로 표현한 것 같아 마음이 울컥했다. 역시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제공한 팸플릿의 소개글이 마음에 와닿아 옮겨 실어 본다.
“<백조> 연작은 힐마 아프 클린트의 상징체계에서 가장 선명하게 이원성과 변화의 과정을 시각화한 연작이다. 흑과 백의 대조와 암수의 쌍 그리고 상하의 대칭은 단순한 이분법의 구조를 넘어 상호 침투하고 뒤섞이는 과정으로 이어지며 이질적 세계들의 전환과 통합을 시도한다. 특히 이 연작은 각 화면 사이의 점진적 변화와 도상의 뒤틀림과 전이를 통해 고정된 상징체계를 해제하고 그 안에서 생성되는 역동적인 질서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은 자신의 삶을 예술로 표현하며 이야기한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고, 반달음악회에서는 이 책을 위한 곡으로 역시 노르웨이 출신인 작곡가 그리그의 소나타를 연주했다. 다양한 속도와 느낌의 바이올린 소리를 음악으로 들으며, 뭉크가 자신의 삶을 그림으로 표현했 듯 그리그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이올린 선율에 실어 표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덧 음악회의 시간은 흐르고 흘러 앵콜곡 순서 이르렀다. 저물어 가는 금요일 저녁 이소라의「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를 저물어가는 편안하게 감상하며 새 보금자리로 이전한 반달서림에서의 첫 음악회를 무사히 마쳤다.
이 음악회를 계속 이어갈 수 있어 다행이다.
* 참고자료
1. 반달서림 안내문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3828565828?trackingCode=blog_bloghome_searchlist)
2. 아르케컬처의 후기글 (https://blog.naver.com/archeculture/223849313042)
3. 『생각의 음조』 한병철/최지수, 디플롯, 2024
4. 『음악 수업』 파스칼 키냐르/송의경, 안온북스, 2025
5. 『세이렌의 노래』 이디스 재크/배인혜, 만복당, 2019
6. 『피아노로 돌아가다』 필립 케니콧/정영목, 위고, 2023
7.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최혜진, 은행나무, 2019
8. 『여기, 카미유 끌로델』 이운진, 아트북스, 2022
9.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피에르 베르제/김유진, 프란츠, 2021
10.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 양성원&김민형, 김영사, 2024
11. 아르케컬처의 유튜브 재생목록 중 열두 번째 반달음악회 플레이리스트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8UUJ1D1syiS9dO7NaAXIUqTZAvxSaMlm&si=aNoFAwj3tZdXQkJ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