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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맑음 Sep 12. 2024

[에세이] 모범생은 사직서 내는 것이 힘들어

9화 모범생은 사직서를 내는 것이 힘들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학창 시절 늘 모범생이었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누가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내가 학생이기 때문에 공부했었다.


반장에 늘 나를 추천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책임지는 게 싫었기에 늘 사퇴했었다.


그리고 나는 대학을 졸업할 때 졸업생 대표가 되었다.


모범생으로 사는 사람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때, 내 경우엔 주변의 [기대]를 배반하는 것이었다. 힘이 들 때에도 조금 더 버틴 이유는 누군가의 기대 때문일 때가 많았다.


지금 직장에 근무한 지는 3년이 다 되어간다. 때는 근속연수 3년을 몇개월 앞두고 있었으며, 곧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서 일정을 조율하는 중이었다.


본래 나는 수술을 위해 입원하기 전부터 수술 후 1년 동안 총 쓸 수 있는 병가를 모두 끌어서 2달가량 쉬기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마 별일이 없었으면 그렇게 했을 것이고, 지금쯤 복직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좋은 직장은 아니었지만, 적당히 참으면서 다니려고 했었다. 비리와 괴롭힘, 그리고 성희롱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사회엔 정의가 없다고 믿는 직장인이 되었다. 그래서 참으려고 했다.


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휴직 후 쉬는 기간 내 안의 선을 넘지 않았다면 아마도 복직했을 것이다. 내 안의 선이란 인간에 대한 믿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자기 잘못을 뉘우칠 수 있다는 기대였다.


아마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그 또한 참아넘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늘 고통 속에 있었고, 이미 인간 불신이 뿌리 깊게 자리를 잡았다.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 회사 사람들이 이것 하나만은 너무나 잘했기 때문이다. 그건 [남 탓.]이었다.


환멸이 났다. 그리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수술대에서 죽는다면 내가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것은 내 인생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은 회사 동료들이겠구나.’


죽음을 앞둔 내가 미래의 안정을 위해서 현재의 괴로움을 넘겨야 할까. 이것이 진짜 마지막이라면 나는 그들과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


본래 휴직을 논의하기 위한 면담에서 사직서를 내겠다고 했다. 나를 면담했던 분은 나를 설득하다가 일찍 휴직을 할 수 있도록 처리해주었다. 수술하고 나면 마음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 그 마음은 더 확고해졌다.

지금 생각할 때, 가장 잘한 일은 수술 전에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회사를 그만둔다고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내가 없다는 이유로 회사가 멈추는 일도 없다.


만약 내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 날까지, 나에게 있어 중요하지 않은 일에 몰두하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대신 꼴도 보기 싫은 인간들과 함께했으면 어땠을까. 수술 결과가 지금만큼 좋았을지 장담할 수 없다.


나는 내가 받은 응원 대신 타인의 험담과 남 탓의 속에서 수술을 기다렸을 것이다. 끔찍하지 않은가.


한동안 집, 직장, 집, 직장을 오가는 모범생 생활을 하였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남편이거나 회사 동료들 뿐이었는데 불만과 불평만 쌓여서 나중에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도 무너졌다.


그만두기로 결정하자 홀가분했다. 그제야 내 인생에서 이것은 [에피소드.]로 지나갈 일임을 알았다. 내 인생의 종착역이 여기가 아니란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여기서 내 소망에 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20대 시절 나의 소망은 [세계평화]였다. 그때의 나는 잦은 다툼과 싸움에 질려있었다. 나에 대한 것이 아니라도 세상이 평화롭길 바랐다. 미움이 없길 바랐던 것 같다.


30대 중반인 지금, 나의 소망은 [나의 평화]이다.


주변에서 지뢰가 터지고 폭탄이 터져도 내가 평화롭길 바랐다. 나는 내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사람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돈을 벌기로 한 건데, 일하는 동안 행복을 잃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병에 대해서 알려진 원인은 없다. 그러나 내가 받은 스트레스를 매일, 그리고 3년 동안 지속했다면 몸이 탈이 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나는 현재의 괴로움 때문에 내 미래를 함께할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될 몸이 되었다.


오랜 직장생활은 내가 긍정주의자가 되도록 도왔지만, 그와 반대로 나를 비관적으로 만들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비관적이다. 내가 현재 믿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 정의는 없다. 좋은 일을 한다고 꼭 복을 받는 것도 아니며, 나쁜 짓을 한다고 꼭 벌을 받지도 않는다. 권선징악은 어린아이의 동화 속에만 나오는 이야기이다.


학교 선생님인 남편에게 아이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 중엔 이런 것이 있다고 이야기하면 남편은 웃는다. 세상이 본래 불공평하다는 진리를 일찍 아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것이 나의 생각이다.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다. 조교 중의 하나가 사무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 사람이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지 그리고 그의 사연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사람의 주변에서 힘들면 그만해도 된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은 것이었다.


내가 하는 것 중, 많은 것을 지금 당장 그만둬도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며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뿐이다. 그러는 나도 사람들의 기대를 지레짐작하면서 그만하겠다는 말을 잘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운동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익히는 것은 잘 넘어지는 것이다. 뛰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자그마한 돌부리와 같은 장애물에 걸려 넘어진다. 그럴 땐 내 몸을 다치지 않도록 충격을 덜 받을 수 있는 부위로 넘어지는 훈련을 해야 한다.


연습 중 넘어져도, 심지어 시합 중 넘어져도 내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내 삶이 긴 영화라면 지금 닥친 시련은 어쩌면 [컷]으로도 쓸 수 없는 사소한 연습 장면일 것이다.


좋아하는 시가 있다. 용기에 대해서 말하는 시이다.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용기를 내야 해.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용기를 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못 해요.]

-이규경 작가, 어쩌고저쩌고 발췌.-


용기를 내라, 이겨내라는 응원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때가 있다.


이번 직장은 늘 그만두고 싶었다. 번듯하지도 돈을 많이 주지도 않았지만,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할 수 있었기에 부모님이 좋아하셨다. 부모님은 힘들어하는 나에게 늘 ‘힘내라!’ ‘이겨내라!’라고 말했다.


착한 딸은 그러겠다고 말했다. 그만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는데도 바보같이 돌아섰다. 수술을 앞둔 어느 날, 부모님을 만나서 말했다.


“이제 직장 그만다니고 싶어.”


부모님은 그제야 왜냐고 묻는 대신 네가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왜 진작 그만두지 않았느냐고 묻는 부모님에게 내가 했던 말은 이것이었다.


“엄마·아빠가 좋아하는 것 같아서.”


“우리 딸 아프게 했던 직장, 엄마·아빠도 싫어.”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어깨를 누르던 짐이 사라졌다. 나는 지레짐작으로 부모님이 이 직장을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내 마음과 건강임이 분명한데도 그만두겠다고 말하지 못해서 끙끙 앓았다.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회사를 그만 다니기로 결정했다. 그토록 미워했지만, 그들과 나의 연결고리는 오직 [회사.]뿐이었다. 이제는 남이 된 그들을 굳이 미워하기 위해서 시간을 쏟지 않을 것이다.


용기를 내어 일을 그만하겠다고 말한 것은 올해 들어 가장 잘한 일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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