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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bobusang May 20. 2024

자아의 혼돈을 거부하라

찰스 핸디는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에서 말한다. 

 "삶은 발견의 여정, 즉, 자아를 발견해 가는 여정이다. 우리에게 적어도 세 가지의 다른 자아가 있다. 일에 열정에 그리고 가족에게 각각 다른 자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세 자아의 모습이 각각 다르다고 해도 모두 너 한 사람이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진정한 나인가, 무엇이 중요한가는 삶의 도착지에 이른 후에야 알게 되는 것은 아닐까. 중요한 것은 삶의 각 단계에서 중요한 것이 달라진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라고.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국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고 시대의 요구에 인간의 거부는 추락만 허락할 뿐이다.

 온 가족이 몇 년 동안 밤낮없이 매달렸던 매점 수입이 IMF로 3분의 1로 뚝 떨어졌다. 점심시간이 되면 손님들로 앉을 데가 없던 의자는 덩그러니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강아지들만 신이 나 이 의자 저 의자를 폴짝폴짝 넘나들며 훑고 간 자리를 네가 쓸고 있을 때였다.


 “내 머리가 저 텅 빈 의자 같네. 왜 내 머리가 점점 텅 빈 거 같지? 여기에 갇혀 있다가 세상 물정도 모르는 바보가 되는 거 아닐까? 내 나이 벌써 서른인데.”


 너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냅다 내 던지고, 난생처음 혼자서 중국 여행길에 올랐다. 버스로, 인력거로 발품을 팔면서 다녔던 한 달간의 베이징 여행에 몸은 고단했지만 묘한 자유에 흥분했지.   


중국 여행에서 돌아온 너는 무엇엔가 홀린 듯 말했어.

“엄마, 나 공부를 더 해야겠어. 매점은 이제 내가 없어도 할 수 있겠지?”

 


 

그렇게 네게 서른이란 나이는 일에 퍼부었던 자아가 너의 내면으로 향하는 여정의 새로운 출발선이 되었다.


 네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고 하면 감정 표현에 낯선 네가 엄마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던 그 순간을 빼놓지 않지. 바로 대학원 석사과정에 합격통지서를 받은 그날을.

 상업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을 하면서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한 네가 직접 교수들과 만나 수업하는 모습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겠니?

 처음 교수들과 직접 마주하며 공부한다는 흥분도 잠시 중국 지역 통상이라는 전공은 바로 한계에 부딪쳤다.


“정식 대학을 나온 사람들과는 질적으로 떨어지지.”

한 교수가 은연중 무시하는 말에 네 자존심은 비에 젖은 종잇장이 되기도 했다.

좋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온 동기생들과 빗대하는 말에 너는 학벌 사대주의에 반발심이 일었지만 침묵했다.


 10여 년의 사회생활이 네 인생에 던져준 게 있다면, 삶은 언제나 네 편이 될 수 없다는 것, 잘못한 것이 하나 없어도 비난받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게 삶이라는 것이다.


 “좌절은 하루면 충분하다.”


는 네 신조 때문인지, 아니면 사회 경험 덕분인지, 대학원 수업이 없을 때는 담당 교수의 허락을 받고 학부생 수업까지 들어가 기초 실력을 다지는 열정을 보였지.


 새벽 5시 반이면 학교 도서관에 들어가 12시 밤하늘을 보며 자췻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가는 길 불 꺼진 교수들의 연구실을 올려다보면서 연구실 창가에 서서 캠퍼스를 내다보고 있는 너 자신을 상상하곤 했지.


 뇌 속으로 한 방울 한 방울 수액이 들어가는 그 느낌이 참 행복하다고, 네 가슴 한가득 노란 프리지어 꽃을 안고 사는 사람 같았어, 너는.



 

 막연히 선생이 되고 싶어 했던 네 어린 시절의 꿈이 그렇게 한발 다가서고 있었다는 걸 그때는 아무도 몰랐어.


찰스 핸디의 질문처럼 자문한다.


“우리 중에서 자신이 어디를 목적지로 정하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설사 있다고 해도, 인생을 다 살아본 후에야 보일 목적지 때문에 오늘은 너무 방황하지 말자.


 그의 말처럼 우리는 살면서 상황이나 역할에 따라 여러 자아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런 자아를 하나의 자아로 묶으려고 하면 할수록 방황하는 시간이 길어질 뿐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여러 자아의 혼돈 속에서 머뭇거리게 할 뿐이다. 오늘은 그 질문을 당당히 거부하라.

 

  하지만, 그의 조언처럼

"적어도 사과가 떨어질 행운을 얻기 위해서는 과수원에 나를 밀어 넣었을 때 비로소 확률이 높아진다"

는 사실은 가슴 깊이 새겨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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