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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bobusang May 28. 2024

너는 네 존재만으로 충분해

“This love is for you, not because you earned it, but because it`s just for you.

이 사랑은 당신을 위한 거예요. 당신이 무언가를 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그냥 당신이기 때문이에요.”

퍼포먼스 코치 리아 작가가 쓴 영어 필사책을 보다가 아스라이 떠오르는 얼굴, 네 삶에도 선물 같은 그런 한 사람이 있다.

2004년, 특별하고도 신비한 햇살이 집안을 환하게 비췄다. 서른 중턱을 넘기고도 결혼 생각을 않는 형과 누나에게 네 막냇동생이 사내 조카를 안겨 주었다. 너희 집식구는 원래부터 집이 절간 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누구 할 것 없이 말수가 적었다.


그랬던 집에 아이의 웃음은 천상에서 들려주는 노랫소리였다. ‘뽕뽕’ 소리에 까르르 자지러지는 조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너는 본래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일도 드물었다. 솔직히 친한 친구의 아이조차도 건성으로 귀여워하는 척했다. 그랬던 네가 조카가 생기고 세상에 모든 아이를 신비롭고 경이로운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


조카의 어린 시절,  고단한 하루를 살아가는 가족에게 햇살 같은 존재였다. 온 집안 식구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서일까? 웃음을 달고 사는 네 조카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아이 같았다. ‘해피 준’이라고 이름 지어주었을 만큼.

네 집 바로 위층에 살았던 조카는 눈을 뜨자마자 내려와 ‘고모’하며 네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그 고사리 같은 손에, 뽀얀 얼굴에 코끝도 닿기 전에 향긋한 분 내음에 심쿵할 때가 많았지. 좀 더 자라서는 글도 읽지 못하면서 그림으로 이해한 공상 과학 얘기며 게임 얘기를 맛깔나게도 종알거렸다. 게임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고모 가르쳐주겠다고 그 작은 입술이 얼마나 진지하던지 아직도 어제 일인 양 눈에 선하다.


어느 날, 너는 면을 좋아하는 조카를 데리고 수제빗국 집에 갔다. 주인장이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머리가 좋다는 말에 면을 좋아하지 않았던 너는 바로 그 집 단골이 되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아이들은 어릴 때 이미 평생의 효도를 다 한 거라는 말은 옳다.


당시 연애를 하던 너는 갈등이 많았다. 네게도 타인보다 가깝고 식구보다는 먼 네 편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하지만 성인의 세계는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이어지는 소설이 아니다. 관계의 결말이 니지 않는 한 위기의 연속일 뿐이다. 네 연애는 타인의 프레임 속에서 평온했지만, 서로 생활 습관이 달라 오는 갈등에는 서로에게 한치의 배려를 허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이별이 참 낯설었던 이유는 삶의 가치관이 맞았기 때문이다. 한바탕 쑥대밭이 된 마음이 옴짝달싹 못할 때 조카의 존재는 늘 위안이 되었다.


“너를 안아도 될까? 네가 다 자라기 전에 한 번 더. 그리고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도 될까? 네가 언제나 알 수 있게.”

라고 류시화 시인은 말한다.


아장아장 길을 걷는 조그마한 발마저 아깝고 안쓰러워 품에 안고 또 안았던 수많은 사랑을 기억하렴, 사랑하는 조카야.


  네 조카는 이제 자기 인생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살아가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대학 1학년을 마치자마자 입영하더니, 군복 입은 멋진 사진을 보내왔구나.

그렇게 네 조카는 네 삶의 단계마다 또 다른 감회와 감동을 준다.


조카 덕분에 이젠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볼 때면 고모 미소를 장착한 사람이 되었다, 너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 감사하고 싶어 지는 나리다.


양 떼 지나가는 길을 따라 푸른 초원을 바람 구두 신고 달렸던 내몽고 여행. 그리고 솜털 같은 너의 웃음소리.

삶의 길목 길목에서 너는 기억하렴.


“너는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이기 때문에 영원히 너를 사랑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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