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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전업주부 4일차

눈 깜짝할 사이 벌써 4일째 아내없이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여유있는 생활을 할 것이란 기대는 나만의 착각이었나보다. 아침에 일어나면 고상한 클래식 음악을 지긋이 눈을 감고, 들으며 모닝커피 한 잔은 충분히 할 줄 알았는데...왠걸? 일어나자마자 애들 아침밥 차려주기에 혼쭐났다. 밥먹고 나면 머리감고, 드라이기로 말리고, 이빨닦고... 그야 말로 시간 전쟁이다. 여자 아이라서 머리 묶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평생 머리 묶어 본 적이 없으니, 등교시간은 다가오고, 머리는 잘 안묶이고...머리 묶는 게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있냐면... 마치 학창시절 수학시험에서 시간이 부족해 전전긍긍하며 답안지를 제출했던 기억과 흡사하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면 좀 여유로울까 했는데, 집안 청소에, 빨래에, 방정리를 하고 나면 언제 시간이 그렇게 갔는지 벌써 점심식사할 시간이 온다. 그러면 또 마음이 조급해 진다. 아이들 저녁은 뭘해서 먹여야 하는지, 또 내일 아침밥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여간 쉬운 게 아니었다. 그래도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 아빠를 보며 해맑게 웃는 얼굴, 실험정신으로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애들을 보면 고단한 하루가 언제였는지 잊혀진다.


며칠 전업주부 역할을 해 보니, 이 역할에서도 요령이라는 게 생기는 것 같다. 아침에는 국에 밥말아 주는 게 젤 간편하면서도 젤 건강식이고, 머리는 저녁에 감겨서 드라이까지 마치고, 입을 옷을 미리 정해서 자기 전에 준비하는 요령이 생겼다. 무슨 일이든 요령은 참 중요한 것 같다.


오늘은 평일 오후에 마트와 시장에서 장보기도 해봤다. 오늘 저녁에 준비할 요리재료와 과일, 내일 아침상에 차릴 재료와 간식들을 사고 뿌듯하기도 했고,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걱정없이 먹고 싶은 것을 사줄 수 있는 나 자신도 자랑스럽고, 지금 이 순간이 참 감사하기까지 했다. 또한 장보기를 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깊이 보게 되었고, 식자재들을 사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고, 잘 먹지 않는 음식을 잘 먹게 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도 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이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보게 되었고, 그러한 생각이 주는 새로움도 몸소 느끼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익숙한 상황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에서 오는 배움도 참 크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며...


나름 이 역할에 자신하며, 스스로에게 자문했던 것들이 있다. 무엇을 하는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현재 있는 상황에서 어떤 태도로, 어떤 생각으로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가가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어렵게 마련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내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며, 이 시간이 더욱 가치있는 시간이 되기 위해 내가 해야될 일은 무엇인가?를 자문했다. 이 역할이 종료될 때 즈음에는 아마도 그 답을 여기에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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