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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멘달 Aug 11. 2022

두 마리 토끼는 잡을 수 있을까?

오늘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인생을 배워갑니다

 아이들 여름 방학이 시작된 지 오늘로써 일주일 째다. (설상가상으로 방학과 동시에 남편의 코로나 격리도 시작되었다. ㅜㅠ)

마침 꽃 시장이 휴가 기간이라 나도 함께 모든 수업과 예약 주문을 쉬어가며 오랜만에 여유를 즐겨보려 했지만 현실은 하루 세끼 아이들의 식사와 간식 그리고 안방에 격리 중인 남편의 식사까지 따로 챙기다 보니 나의 여름휴가는 어느새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더운 여름 온 식구가 (앵무새 두 마리까지 총 여섯) 옹기종기 모여 있다 보니 설거지며 빨래 그리고 돌아서면 어지러워진 집안 청소까지 몇 배로 늘어난 집안일은 나를 체력적으로 힘들게 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힘든 건 늘어져 있는 식구들(나만 빼고)의 모습을 고스란히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계획 형 인간이다. 늦잠이나 낮잠이 익숙하지 않고 오늘 하루가 잘 굴러가려면 매일매일의 루틴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 내가 열 시 넘어 부스스 일어나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워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큰 딸과 눈 뜨자마자 거실 티브이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가 리모컨으로 디즈니 채널을 찾는 둘째의 모습을 매일같이 지켜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 더운 여름 힘들게 학교 다녔던 아이들의 수고를 생각해봐…이 정도 자유는 누릴 자격 있어!’

라며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아이들의 이런 행동을 연속적으로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이렇게 더운 날, 아침부터 쉬지 않고 집안일을 하고 있는 나만 철저하게 희생양이 된 것 같은 부당 함에 분노노에 이르게 되고… 그 분노는 당연히 아이들 몫이다.


“야! 늬들!!(날카로운 목소리로)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냐?! 지금 몇 시인데 아직도 이러고 있어!? 엄마만 혼자 계속 일 하는 거 보여 안 보여?!”


엄마의 호통에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할 일들을 억지로 찾아 나서는 아이들을 보니 내가 어쩌다 이렇게 조급하고 여유 없는 엄마가 된 걸까. 자괴감마저 들며 서글퍼진다.


아~나는 각자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평일이 좋다!

문득 작년,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가 생각이 났다.

임신, 출산, 육아를 2번씩 반복하고 나니 나의 삼십 대는 훌쩍 지나있었다. 아이들이 커서 학교에 가고 그때서야 내 시간이 조금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내 나이 사십 대 중반이었다. 이십여 년을 해왔던 연주자의 길을 다시 걷기에는 비워둔 공백이 너무 컸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도 나는 음악을 사랑하지만 늘 경쟁 속에서 나를 평가받던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하루하루였다. 그러던 중 오랫동안 취미생활로 해오던 꽃꽂이를 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클래식 작곡가들이 꽃을 모티브로 작곡한 곡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음악을 통해 느끼는 감성을 꽃으로 표현해 보는 수업을 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재미로 블로그를 통해 음악과 작품을 연결한 글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글들이 서른 개쯤 모여졌을 때 나는 내 이름을 걸고 음악과 함께하는 꽃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니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것부터 내가 하는 일이 여러 갈래로 확장되어 가는 것까지 모든 것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내 손길이 필요한 나이고 가사와 육아를 병행하며 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한창 일을 하고 있을 때 하교 후 혼자 집에 있던 아이가 전화를 걸어와

“엄마~배고파~~ 언제 와아~~?” 하고 힘없는 목소리로 물으면 괜히 가슴이 콩닥 거리며 하던 일을 대강 마무리하고 집으로 바삐 돌아가는 일이 빈번했다. 그때마다 하던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해 찜찜한 마음과 함께 돌아가서 바로 저녁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짓누르며 누군가 가사 만이라도 도와준다면 나는 내 일을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전업 주부로 살아왔던 나는 그때서야 매일 출퇴근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워킹맘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인간은 결국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몇 개월 간의 몸살을 앓은 뒤 지금은 나도 아이들도 이 상황을 잘 헤쳐나가고 있다. 나는 여전히 헐레벌떡 정신없는 여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더 이상 두 가지 몫을 잘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따위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다. 당당하게 밀 키트를 주문하고 반찬 가게를 들낙 거리며 끼니를 해결하고 나의 현재 그릇의 용량을 인정하며 늘 흘러넘치지 않도록 조절을 하고 있는 중이다.

가끔 일이 몰려 정말 정신이 없을 때에도 ‘아~나는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 두 가지 일이 부담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여겨졌다. 여전히 아이들이 필요할 때마다 곁에 있어주지는 못하지만 집에서 간단한 음식 정도는 챙겨 먹을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은 자라났다. 그리고 지금은 “엄마가 꽃을 하는 사람이라서 좋아”라고 말해준다.


  ‘두 마리 토끼는 못 잡는다’라는 말이 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 말은 두 가지 다 완벽하고 싶은 우리의 욕심이 아닐까 싶다. 일을 하던 하지 않던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결국 ‘완벽’이란 건 없고 어차피 아이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일 뿐이다.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지금 내가 놓친 기회가 아쉬워도 훗날 더 좋은 기회로 되돌아 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차피 모든 일에 정답은 없을 뿐, 그저 그때그때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지금도 나는 말로는 ‘휴가’ 라며 몸은 집에 있지만 머리는 계속 일을 생각하고 있으니 좀처럼 내 시간이 나지 않는 이 ‘방학’을 못 견뎌하는 것이다. 나의 일 욕심으로 아이들의 방학까지 망치면 안 되겠다. 시행착오는 이미 겪지 않았던가!


 문득 여름밤에 종종 찾아 듣던 프레더릭 딜리어스의 <여름밤 물 위에서 부르는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몽환적인 분위기에 가사가 없는 합창곡인 이 음악은 유난히 더웠던 오늘의 열기를 가라앉게 해 줄 것이다. 음악을 다 듣고 나면 오늘 밤엔 아이들 손을 잡고 심야 영화를 보러 나가야겠다. 힘든 여름 방학은 어차피 지나갈 것이고, 다시 내가 좋아하는 평일은 돌아올 것 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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