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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멘달 Aug 24. 2022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용기

인간 관계에 있어서의 어떤 진솔함

 “띠띠띠띠~”


  오늘도 나는 네 자리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나의 작업실로 들어선다.

가장 먼저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듣고 싶은 음악을 신중하게 선택하여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한 후 마지막으로 커피를 내린다. 묵은 공기를 새것으로 바꿔준 나의 공간이 음악과 커피 향으로 가득 차고 마침내 혼자가 된 이 순간을 나는 매일 설레며 기다린다.


  하지만 그때 들려오는 또 한 번의 비밀 번호 누르는 소리는 금세 내 얼굴을 찌푸리게 한다. 이 행복한 시간은 아주 잠시만 허락될 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공간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공간을 매일 음악으로 숨결을 불어넣듯이 나의 오피스 메이트도 매일 그의 공간을 음악으로 채우는데 문제는 전혀 다른 취향의 음악소리가 한 데 섞이면서 벌어진다. 나는 주로 클래식 음악과 함께 하는 꽃 수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강 약이 도드라지는 음악을 집중 있게 듣는 반면 그는 허리나 목 등이 불편한 사람들을 운동으로 치료하는 사람이기에 같은 비트가 빠르고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소위 헬스클럽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듣는다.


  예를 들어 만일 내가 아련한 쇼팽의 왈츠 곡과 함께 꽃 수업을 하고 있으면 바로 옆 공간에서 들려오는 쿵작 거리는 음악 소리(가끔은 치료 중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까지 함께 들린다)에 이미 쇼팽의 아련한 왈츠 곡 따위는 어디론가 섞여 날아가 버리고 내 심장도 이내 빨리 요동치기 시작한다. 매일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 였다.


  그와 나는 지금 한 공간을 나누어 사용하기 전 같은 공유 오피스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알게 되었다. 우연히 같은 시기에 계약이 끝났고 함께 새로운 공간을 알아보며 정보를 공유하던 중 지금의 공간을 알게 되었다. 우리 둘 다 이곳이 마음에 들었지만 문제는 너무 넓은 공간과 부담되는 월세가 문제였다. 그러던 중 가벽을 세워 공간을 둘로 나누어 함께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런저런 우려가 분명 있었지만 그때는 이 공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게다가 월세는 반으로 줄었으니 서로에게 너무 현명한 처사라고 확신하며 일을 저질러버렸다.


  그러나 역시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한 공간에서 섞이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어쩌자고 그런 결정을?!’ 후회해봐야 이미 때는 늦었기에 어떻게든 이 상황을 극복하고 싶었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이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에 서로의 영업을 방해할 만한 상황을 무리하게 요구할 수도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라 일 년에 1~2번은 꼭 다시 보기를 하는데 재미있는 건 그렇게 수없이 봤음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새로운 장면, 새로운 대사가 가슴에 꽂힌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이 장면 이 대사다. 청각장애를 가진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손녀에게 수화로 메시지를 전한다.


“가만히 보면 모든 인연이 다 신기하고 귀해. 갚아야 돼. 행복하게 살아야 돼. 그게 갚는 거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인간관계란 동네에서 만난 내 아이 친구의 엄마들이 거의 전부였는데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그 관계가 거침없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첫 만남부터 그냥 좋았던 사람들, 처음에는 좋았지만 점점 힘들어지던 관계, 그리고 첫 만남부터 별로 였는데 정말 끝까지 별로인 사람들 등 다양한 인연이 내 곁에 머물거나 스쳐 지나갔다. 이 중 가장 힘든 관계는 처음에는 좋았지만 점점 힘들어지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분명 처음에는 ’이 사람과 함께 일을 하거나 한 공간을 나누어 써도 괜찮을 것 같아~’라고 판단할 만큼 좋은 관계였지만 막상 한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서로 다른 디테일이 보이게 되고 불편함을 느끼다 못해 관계마저 서먹해지는 지금의 그와 나의 관계처럼 말이다.


  한동안은 내가 왜 그토록 원했던 나만의 공간에서 이런 스트레스를 받아야만 하는 것인지 나인지 그인지 모를 상대에게 원망을 하고 후회로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매일 반복되는 스트레스에 견디다 못한 나는 그에게 느끼는 불만들을 하나하나 적어보았다. 물론 소음은 공간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므로 불편함이 더 큰 내쪽에서 우리의 공간 사이에 문을 하나 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 외 나머지 불만 중 가장 싫은 점이었던 ‘음식 냄새’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기로 했다. 싫은 소리 잘 못하는 나는 밤 잠까지 설치다가 다음 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좋은 목소리로 그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제 공간에 들어오면 음식 냄새가 남아있어서요.. 죄송하지만 전자레인지만 선생님 쪽 공간애서 사용하시면 안 될까요?”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의외로 그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로부터 원하는 대답을 들었음에도 여전히 찜찜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했다. 가슴앓이하기 전 진작 불만을 그와 대화로 풀었다면 어쩌면 나는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문제였던 거지..?


   최근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다시 읽었다. 그녀는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연간 500파운드의 돈, 자기만의 방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부분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위의 세 가지중 ‘자기만의 방’만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그때서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악역이 되고 싶지 않아 싫으면 싫다고 딱 부러지게 말하지 못하는 나

속으로는 불편해하면서도 누군가에게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이기적인 나

고로,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던 나


  여전히 오늘도 나는 쿵작쿵작 음악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음식 냄새로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돈이 조금 더 모이면(연간 500파운드(지금으로 치면 약 3000만 원)를 향해 달려가 보자!) 곧 문도 달 것이다. 그러면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고 그때는 정말 ‘자기만의 방’을 가진 내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고 싫으면 안 봐도 되었던 세계(아주 좁은 인간관계)에 익숙했던 나는 이제 이 넓은 사회 속 인간관계로 한 발짝 내디딘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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