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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멘달 Aug 14. 2022

꽃다발은 속옷이 필요하지 않아요

꽃, 그대로의 아름다움

  지난달은 우리 부부의 18주년 결혼기념일이었다. 결혼기념일을 매년 요란하게 보내진 않았어도 늘 가족끼리 모여 소소하게 식사 정도는 하며 보냈었는데 지난달은 남편도 나도 서로 바쁘다 보니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다음 날, 결혼기념일을 잊었다는 것을 깨달은 남편과 나는 서로 마주 보며 풉~하고 웃고 말았다. 결혼 8주년도 아니고 18주년 즈음되면 이런 여유도 생기나 보다. 아무튼 아무렇지 않았던 나에 비해 남편은 꽤나 미안했던지 그날 저녁 집에 들어오는 그의 손에는 나를 위한 풍성한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꽃 하는 사람한테 꽃 줘도 되나?” 라며 쑥스럽게 꽃을 건네는 남편.


  꽃일을 하는 나는 매일 꽃을 보고 만지지만 정작 나를 위한 꽃 선물은 낯설기만 하다. 누군가로부터 꽃을 받은 적이 언제이던가. 그렇게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받아본 꽃다발 선물에 나는 오랜만에 설레었다.


  하지만 꽃을 화병에 옮기기 위해 포장지를 벗기면서 그 행복했던 기분은 점점 멀어지고 말았다. 겉 포장지를 벗기자 그 안으로 몇 겹의 속 포장지를 더 벗겨야만 했다. 마치 프릴 달린 속옷을 꼼꼼하게 챙겨 입은 듯했다. 드디어 마지막 속옷을 벗기자(?) 수북하게 쌓여있는 비닐 포장지 옆에 놓인 몇 송이의 꽃들은 오히려 초라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한 번밖에 안 쓴 이 많은 포장지들을 그냥 버리자니 너무 아까웠다. 잘 펴서 꽃다발을 만들 때 재활용을 하자니 구겨진 주름이 눈에 띄었고 그냥 버리자니 죄책감이 들어 영 마음이 불편했다.


‘왜 하나의 꽃다발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 많은 비닐 포장지를 사용해야만 하는 걸까? 꽃,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아름답지 않은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 보니 내가 처음으로 꽃을 눈여겨보게 되었던 이십여 년 전 네덜란드 유학 시절까지 추억은 거슬러 올라갔다.

한국에서 내가 느끼는 ‘꽃’이란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을 위한 것(고로 비싼 것)이었다면 그곳에서의 ‘꽃’은 사람들의 일상에 아주 가까이 있는 모두를 위한 꽃(고로 비싸지 않은 것)이었다.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나는 고된 하루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날 하루 처음으로 제대로 된 끼니를 먹기 위해 장을 보러 슈퍼마켓에 들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게다가 그곳에는 마치 식료품처럼 내가 좋아하는 다양한 꽃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가격도 비싸지 않아서 마치 빵과 우유를 사듯 부담 없이 꽃을 골라 살 수 있었다.

빠듯한 생활비를 고려한 몇 가지의 식료품과 함께 신문지 혹은 누런 종이로 둘둘 말린 한 다발의 꽃을 장바구니에 담아 자전거에 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아무리 힘들고 지쳤던 날에도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은 하루였어’라는 생각이 들던  나날들이었다. 그때 그렇게 샀던 한 다발의 꽃은 가난한 유학생이 누릴 수 있었던 최고의 사치이자 매일매일의 위로였다.


 또 하나의 기억은 저녁을 먹고 해가 어스름하게 질 때쯤 나서던 동네 산책이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일층 집이라도 창문에 커튼을 잘 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걷다 보면 의도치 않게 다른 집의 거실 풍경까지 함께 구경하게 되고 때로는 안에 있던 사람들과 눈이 마주쳐 얼떨결에 눈인사까지 주고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누군가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난 서로 다른 집들의 거실 풍경을 은근슬쩍 구경하는 재미는 산책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그 풍경 속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는데 모두 한 아름의 꽃이 담겨있는 화병이 있다는 점이었다. 거실 한가운데 위치한 소파 테이블 위 혹은 창문턱 아니면 벽난로 위에 놓여 있던 그 꽃들은 그들의 가족들을 위한 것이고 동시에 지나가는 사람들(바로 나 같은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따뜻한 오렌지 빛 조명(유럽에서는 형광등을 사용하지 않아 조명이 모두 어두운 편이다) 아래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여있는 거실에 있던 그 꽃은 ‘화려함’ 보다는 ‘따뜻함’과 ‘편안함’의 상징이었다.


 그 시절 누군가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선물로 들고 갔던 꽃다발도 장을 보며 나를 위해 슈퍼에서 샀던 꽃다발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단지 신문지나 누런 종이에 둘둘 말렸던 꽃다발이 투명한 비닐에 쌓여 스티커나 심플한 리본 하나만 더해졌을 뿐. 이런 기억들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형형 색색의 포장지로 속옷을 겹겹이 입은 듯한 비싼 몸 값의 화려한 꽃다발보다 한 손으로 자전거를 운전하던 키 큰 네덜란드 사람들의(그들은 모두 자전거 고수다) 다른 한 손에 들려있던 소박한 튤립 한 다발이 더 예쁘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내가 만드는 꽃다발은 심플하기 그지없다. 풍성한 포장지 대신 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어떤 부담감이나 죄책 감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그저 그런 꽃다발이다.


  꽃, 그 자체가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에게 축하와 위로를 전하는 방법은 여전히 내게 숙제로 남아있다. 불편함이나 부담감 혹은 왠지 모를 죄책감 따위는 벗어버리고 진실하고 따뜻한 마음 만으로 사람들 사이를 오고 가는 그런 ‘꽃’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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