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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멘달 Oct 24. 2023

노련하게 헤어지지 못하고 터진 눈물

도살견, 식용견이 아닌 반려견입니다.

  가을이 올 듯 안 올 듯 밀당을 하는 것만 같았던 늦여름의 어느 날, 선유도 근처에서 남편과 산책하던 중 예쁜 카페를 발견했다.

짙은 초록색 차양아래 놓인 라운드 커피 테이블과 빈티지한 나무 의자가 멋스러웠다. ‘살롱 드 비건’이라는 그 카페는 마치 유럽의 어느 골목길을 돌면 나올 것 같은 이국적인 분위기 가득한 노천카페였다. 그리고 그 앞에 쓰인 문구는 내 발길을 붙잡기 충분했다.


‘전 제품 식물성 재료로 만드는 비건 카페. 수익금은 전액 동물들에게 전달됩니다.’


  비건으로 살아가는 삶과 유기견 봉사에 늘 관심과 뜻을 두고 있지만 감히 실천하지 못했던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곳으로 들어갔다. 편안하고 조용한 내부와 우유 대신 두유를 넣은 고소한 쏘이라테를 즐기던 나는  그곳에 놓여있던 브로슈어를 통해 ‘아크보호소’를 알게 되었다.


  인천 계양산 깊숙한 자리에 위치한 아크보호소는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개 농장이었다. 철로 된 뜬장에서 추위와 더위를 온몸으로 맞으며 태어남이 곧 죽음이었던, 고기가 될 그날에야 뜬장을 벗어날 수 있었던 개들. 하지만 2020년 4월, 계양산에 왔다가 우연히 개 농장을 발견한 한 시민이 sns를 통해 개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면서 이 아이들의 운명은 바뀔 수 있었다. 시민들과 동물 보호 단체들의 길고 긴 노력 끝에 결국 동물권단체 ‘케어’가 농장주를 설득해  3300만 원에 개 280마리의 소유권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4명의 봉사자를 주축으로 2020년 7월, 아크의 전신인 ‘롯데복장 개 살리기 시민모임’은 시작되었다.


   280마리의 개들이 난생처음 맨땅을 밟았던 그날을 회상하며 인터뷰한 김영환 아크 보호소 대표의 말이 정책 주간지 ‘k공감’에 실려 있었다.


“뜬장을 벗어나본 적 없는 개들은 문이 열려도 스스로 나오지 못했어요. 건강 상태도 무척 안 좋았죠. 오랜 뜬 장 생활로 발바닥이 갈라지고 서로 물고 싸워 상처 입고, 암컷들은 반복된 임신과 출산으로 젖이 다 떨어져 나갔어요. 더욱이 30-40 kg에 달하는 개들을 받아주는 동물병원조차 없었죠. 의료 봉사자를 찾고 수십 년에 걸쳐 딱딱하게 굳어버린 배설물을 치우고 모든 걸 시민들이 직접 했어요. 매일 280마리에게 사료를 주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었어요. 그릇을 써본 적 없는 개들은 밥과 물을 엎어버리기 일쑤였고 바닥에 깔아준 볏짚은 똥오줌과 섞여 견사는 금세 엉망이 돼버렸죠. 계양산은 인천 시내보다 7도 정도 기온이 낮은데 날이 추울 땐 손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어요. “ (-정책주간지 k공감 김영환 아크보호소 대표 인터뷰 중)


  얼마 전 SBS 동물농장을 통해 개 도살장의 참혹한 민낯이 공개되었다. 제작진과 동물 단체 구조자들이 끈질긴 추적 끝에 도살장으로 강제 진입했을 때 안타깝게도 이미 도살은 진행되고 있었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우리에 갇혀 떨고 있던 수많은 개들은 극한 공포에 미처 짖지도 못하고 하나같이 멍한 눈빛이었다. 한 구조자가 안타까운 마음에 철장 사이로 손을 넣어 두려움에 떨던 개를 쓰다듬었다. “무서웠지? 이제 괜찮아. 조금만 기다려. 곧 꺼내줄게.”라고 말하자 그 구조자를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던 그 아이. 사람에게 그렇게 당하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다정한 사람의 손길에 꼬리를 흔들던 그 아이를 보며 방송을 보는 내내 참았던 눈물은 기어이 터지고야 말았다.


  누군가에게 개는 인생을 함께하는 소중한 가족이지만 누군가에게 개는 학대하고 죽여서 돈을 버는 수단이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사람에게 상처받은 아이들을 구조하여 거두고 새 삶을 주려고 애쓰고 있다. 사람은 이렇게 개에게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대하지만 개는 사람에게 한없이 맹목적으로 사랑만을 갈구한다.

  

 SNS를 통해 매일 아크보호소에 있는 개들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이들을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이 커져만 가던 중, 아크보호소에서 진행하는 초단기임시보호 1박 2일 봉사 캠프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망설임 없이 신청을 했다. 동물을 사랑하고 수의사를 꿈꾸는 11살 막내와 함께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먼저 사진으로 우리와 함께할 개 ‘데이지’를 만났다. 새까만 귀와 입, 주름진 이마, 처진 눈, 두툼한 발바닥과 큰 덩치의 누렁이 데이지. 꽃을 하는 내게 운명적으로 다가온 데이지와의 만남을 그날부터 손꼽아 기다렸다.


  마침내 디데이. 오후에 비소식이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아이와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캠프가 열릴 강화도 반려견 동반 숙소, 위플독 펜션으로 향했다.

도착 후 담당자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어서 데이지를 만나고 싶은 딸아이는 어느새  9마리의 개들이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켄넬들 속에서 ‘데이지‘라고 쓰여있는 켄넬을 찾아냈다. “엄마! 여기 데이지 찾았어!! “ 아이의 흥분된 목소리에 심장이 콩콩 뛰었다. “안녕 데이지~” 우리는 켄넬 앞에 쪼그리고 앉아 데이지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나누었다.


  데이지의 눈에는 두려움과 긴장이 가득해 보였다. 켄넬 문을 열고 이름을 불러도 데이지는 우리의 눈을 피한 체 켄넬 안에 웅크리고 앉아 나올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런 데이지의 모습에 막내는 애가 탔다. 더운 날씨에 장시간 차량으로 이동해 온 데이지는 목이 말라 보였다. 수돗가에서 시원한 물을 대약에 한가득 떠 와 내밀었더니 데이지는 드디어 천천히 이동장 밖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이나 물을 마신 데이지는 그제야 천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한 발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네스를 채운 데이지의 줄을 잡고 우리는 함께 걸었다. 데이지가 가고 싶은 곳으로 그저 따라가 주었다. 넓은 잔디밭을 천천히 냄새를 맡으며 탐색하는 데이지에게 속도를 맞추었다. 좁은 뜬장이 아니라 넓은 마당을 마음껏 돌아다니는 것이 어색한 데이지의 걸음은 더디고 느렸다. 데이지가 멈추어 있을 때는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그 옆에서 말을 건네며 쓰다듬고 간식을 건네어 주며 기다려주었다. 우리의 다정한 손길과 목소리를 통해 데이지가 안정감을 느끼기를 바랐다.


  마당에서 만난 다른 개들은 데이지와 생김새가 비슷했다. 모두 30킬로가 넘는 덩치들인데 하나같이 겁보, 쫄보인 것도 닮았다. 개들끼리 모여 있을 땐 꼬리를 흔들며 즐거워하는데 사람이 나타나면 얼음이 되고 마는 개들. 심지어 주저앉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개들도 있었다. 개농장에서 겪었던 공포의 트라우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이 너무 안쓰러웠다. 뜰장 밖에서 들려오던 친구들의 비명 소리는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사람에게 받았던 학대는 또 얼마나 무서웠을까. 사랑을 받은 적도 사랑을 준 적도 없는 것 같은 아이들의 텅 빈 눈동자를 보니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긴 산책을 마친 후 방에 들어가기 전 데이지를 목욕시키기 위해 수돗가로 데려갔다. 이 아이들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목욕이란 걸 해보았을까.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봉사자들은 차례대로 아이들을 목욕시켰다. 낯선 경험이 싫고 무서웠을 텐데 그 누구도 반항하지 않고 묵묵히 서서 봉사자들의 손길과 차가운 물줄기를 받아내던 아이들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했다.

목욕 후 드라이 시간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봉사자들은 한 대뿐인 헤어드라이어로 평균 몸무게 35킬로인 아홉 마리의 개들을 번갈아 말리느라 난리법석이었다. 날리는 개털과 흥건한 물 바닥 위에서 데이지의 털을 말리기 위해 드라이기를 가까이 가져가자 처음 느껴보는 바람과 소음에 주저앉아 벌벌 떠는 데이지. 못살아. 하는 수없이 수건으로 털어가며 겨우 털을 말렸다.


  산책과 목욕만을 했을 뿐인데 이미 나의 체력은 방전이었다. 데이지도 낯선 경험에 많이 피곤해 보였다. 2층 우리 방으로 데려가 사료도 먹이고 쉬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겁보 데이지가 또 한 발짝도 안 움직인다. 줄을 잡아당겨도 한사코 뒷걸음질만 치는 데이지를 보다 못한 담당자분이 번쩍 안아서 이층까지 데려다주셨다.


  방에 도착한 데이지는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한 자리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료를 주어도 먹지 않았다. 낯선 환경이 무서울 것 같아 나도 그 옆에 누워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삼십 분쯤 깜빡 잠이 들었다 깨니 날은 어둑해져 있었다. 아이들 목욕할 때쯤 내리던 비도 멈춰 있었다. 데이지에게 밤 산책을 경험해 주고 싶었다. “데이지 우리 산책 갈까?”

하네스 끈을 잡아당기자 웬일로 데이지가 순순히 따라나섰다.

“아이고 착해라! 우리 데이지 씩씩하네!!”

“잘했어~잘했어~~ 데이지!!”

우리는 폭풍 칭찬을 멈추지 않으며 순조롭게 계단을 내려와 잔디밭으로 나갔다. 비는 내리고 있었지만 거센 비는 아니었다. 데이지와 함께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막내의 뒷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면 안 되는 걸까. 왜 저렇게 착하고 예쁜 아이들을 학대하고 괴롭히는 걸까. 마음이 착잡해졌다.


  산책하며 시원하게 볼일까지 마친 데이지를 다시 방으로 데려가려는데 또 데 다리를 땅에 꽉 붙이고 꼼짝도 안 한다. 그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는 담당자님은 슈퍼맨.  그 품에 안겨 방으로 올라가는 아기 같은 데이지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방으로 돌아오자 빗줄기가 거세졌다. 데이지가 밤 산책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오늘 하루 엄청난 긴장을 했을 데이지는 방으로 들어오자 내 침대 옆에 자리를 잡고 엎드렸다. 나도 침대에 누워 티브이를 보며 이따금씩 데이지를 쓰다듬곤 했다. 따뜻하고 보드라웠다. 데이지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데이지는 이미 깨어있었다. 컹~하고 한 번 짖을 만도 한데 숨죽인 듯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데이지가 안쓰러워 서둘러 아침 산책을 나왔다. 잔디밭에 모인 친구들을 보자 데이지는 활발해졌다. 서로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단체 사진을 찍고 나자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 찾아왔다. 데이지를 켄넬 안으로 들여보내고 문을 닫았다. 철창문 사이로 데이지와 눈을 마주치고 싶은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길을 외면하는 데이지. “데이지~이모가 꼭 놀러 갈게.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엉엉 우는 막내를 달래어 돌아서는데 나도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웃으며 헤어지는 노련한 다른 봉사자 분들 사이에서 우리 모녀만 울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던 길, 강화도에서 예쁜 정원으로 유명한 카페에 들렀다. 아름다운 정원에는 마침 하얀 데이지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데이지의 꽃말은 ‘천진난만함’ ‘순수’.

너구리를 닮은 우리 데이지에게 딱 맞는 이름이었다.

집에 돌아가던 길 차에서 내내 말이 없던 막내는 “엄마, 데이지도 지금쯤 보호소에 잘 도착했겠지? 멀미는 안 했을까?”라고 물었다. 피곤해서 잠든 줄 알았더니 내내 데이지 생각에 마음이 씌였나 보다. “잘 도착했을 거야. 아마 데이지는 집에 도착해서 마음이 더 편할걸? 우리 데이지 꼭 다시 만나러 가자.”


  대형견들은 국내 입양이 힘들어서 대부분 해외 입양을 간다고 한다. 이 날 찍은 사진들과 영상은 해외 입양 홍보에 씐다고 해서 집에 돌아와 1박 2일  동안 열심히 촬영한 데이지의 사진과 영상을 정리해서 보내드렸다. 사진 속 찍힌 데이지의 표정은 여전히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한 눈빛이다. 데이지가 하루빨리 좋은 환경에서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남은 생을 보낼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나는 벌써부터 사랑받기 충분한 데이지와의 두 번째 만남이 설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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