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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쌤 Feb 12. 2023

그래도 위안을 얻었다!!

# 건망증에 대하여...

일요일 오랜만에 덥수룩해진 머리도 자르고 염색도 했다.

거의 1시간 30분 정도의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이제 끝났다는 기쁜 마음으로 결제를 위해 지갑을 꺼냈다.

그런데...   체크카드가 없다.!!!  

어 분명히 여기 있어야 되는데...

결제를 기다리는 미용실 직원을 보며 더 당황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거의 잘 쓰지 않아 잔액이 얼마 남아 있는지도 잘 모르는 다른 체크카드를 꺼내 들었다.

혹시나 잔액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다행히 결제가 되었다.


언제 잃어버렸는지 집으로 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금요일 저녁 무렵 현금 인출기에서 돈을 찾으며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낭패다. 금요일에 분실한 것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쏟아지는 문자들과 sns 알림이 귀찮아서 영수증 확인하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카드결제 알림 서비스도 신청을 안 해 놓았는데 혹시 부정 사용이 되었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드사에 전화를 하여 분실신고를 하고 마지막 사용이 어디인지 확인을 했는데 나의 기억과는 다르게 밀키트를 파는 상점이었고 현금 인출기 인출은 금요일 오전이었다.


뭐지!? 나의 이 조작된 것 같은 기억은.........  분명히 저녁 무렵에 현금 인출기에서 돈을 인출했는데.......


집안에 물건이나 차키를 아무 데나 두고 기억하지 못하여 온 집안을 뒤지며 난리 치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카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참 이놈의 건망증은..  이놈의 정신머리는....   나 자신을 원망하며 밀키트를 파는 상점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일요일이라 밀키트를 파는 곳은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키오스크 옆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한참 신호가 간 다음에야 푹 쳐진듯한 목소리로 한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아마 주말이라 푹 쉬고 있었던 모양인데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혹시 금요일에 습득한 카드가 있는지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했다. 혹시 그러면 습득한 카드가 없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일단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10분 정도 지나니 밀키트점 주인이 들어왔다. 잠깐 기다리라고 말하고 키버튼을 누르고 주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조금 있다 무언가를 두 손 가득히 들고 나왔다.


순간 내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남자는 양손에 카드를 가득들고 나왔다.


"혹시 여기 중에 카드가 있으신가요?"


"어....     뭐가 이렇게 많아요?"


"손님들이 놓고 가시고 찾으러 오지 않으셔서..    버릴 수도 없고..."


남자가 가지고 있는 카드는 어림잡아도 50장은 훨씬 넘어 보였다.

테이블에 다양한 색상의 카드들을 모두 펼쳐놓고 꼼꼼히 들여다보다가 구석에 있는 내 카드를 찾을 수 있었다.

남자에게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밀키트점을 나왔다.


다시 재발급 신청을 안 하고 카드를 찾았다는 것도 기뻤지만 무엇보다 더욱 기뻤던 것은 남자가 가지고 나왔던 수많은 카드들이다.


'나만 정신없는 거는 아니구나, 세상에는 나 말고도 깜박하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니 약간은 위로가 되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지 마음 먹지만 분명히 다음에도 분명히 뭘 또 잃어버리고 기억해 내려고 애쓰는 나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나의 이 건망증은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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