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차마 아는 척 할 수 없었어.

평범한 일상 속 이야기

by 서쌤

인천에서 고양시까지 출퇴근을 한다.


차를 가지고 가면 1시간 남짓 걸린다.


지하철을 갈아타면 3번을 갈아타고 1시간 30분이 걸린다.


고유가 시대를 맞아 차로 장거리 출퇴근하는 것이 부담이 된다. 그래서 종종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한다.


시간은 더 걸리지만 잠깐 앉아서 졸 수도 있고 브런치 글도 읽고 영화도 보고 나름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다.


환승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멀리서 누구인가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는 게 들렸다. 목소리가 익숙하다 싶어 돌아봤더니 A가 보였다.


10여 년 전에 내가 담임을 했던 아이다.


주변이 다 들리게 큰 목소리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특유의 말투와 목소리도 그대로였다.


그리고 과장된 제스처와 걸음걸이도..


A는 나를 보지 못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아는 척해야 되나 자리에 서서 잠깐 고민을 하고 있었다.


마침 스마트 폰에서 열차 도착 알림이 울렸다.


'그래, 오늘 집에서 조금 늦게 나왔는데 그냥 가자. 마침 열차도 도착했으니까' 생각하며 빠른 걸음으로 환승장으로 향했다.




A는 특수학생이다. 요즘에는 경증 장애 학생들은 일반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받는 통합학급이 운영된다. 직업교육이나 상담이 필요할 경우만 특수학습에 가서 수업을 듣는다. A는 10여 년 전 내가 담임을 맡은 반의 특수학생이었다.


A는 신체장애도 약간 있어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긴 하지만 생활에 지장이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자폐가 있었다. 자폐가 있지만 기억력이 굉장히 좋아서 지하철 노선도를 다 외우고 있었다. 역을 물어보면 몇 호선이고 앞 뒤 역이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특수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기억력이 좋아 학업성적도 좋았다. 국, 영, 수와 같은 과목은 어려워했지만 암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목들은 학급에서 중상위권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폭력적인 성향이 있었다. 흥분하게 되면 학급의 게시판을 주먹으로 내리쳐서 움푹 들어가게 만들 곤 했다. 아이들에게 미리 사전에 A 특성에 대하여 인지를 시키고 주의를 주었지만 종종 문제가 발생하였다. A를 화나게 하려고 살살 약 올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예측할 수 없는 폭력적 성향을 갑자기 드러내어 아이들을 당황케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를 중재하느라고 학생부와 특수학급 사이에서 꽤나 애 먹었던 기억이 있다.


A의 큰 아버지가 다른 학교 교장선생님이었다. 우리 교장과도 아는 사이이고 같이 근무했던 분들도 여러분 있어서 솔직히 담임으로서 A를 생활 지도하는데 부담이 많이 갔다.

그러나 진짜 어려움은 졸업 이후에 나타났다. 졸업 후에도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왔다. 처음에는 기특하게 생각하고 잘 받아 주었지만 횟수가 많아져 일주일에 두세 번씩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를 받아 보면 늘 똑같은 이야기였다. 혹시 내가 핸드폰을 안 받으면 학교로 전화를 해서 나를 찾았다.


학교를 옮기고 나서도 어떻게 알았는지 옮긴 학교로 전화를 해 나를 찾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가니 전화 오는 것이 뜸해지고 나도 A에 대하여 잊고 있었다.





특수반 학부모님들께서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를 가장 걱정하고 두려워하신다. 공교육에서 제공하는 특수교육이 끝나는 것이다. 지역의 센터 등에서 작업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집에만 있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지체 부자유 학생의 경우는 입학을 받지만 정신지체를 받아 주는 대학은 거의 없었다. A의 경우에는 졸업 이후 진로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채 졸업을 하게 되었다. 졸업 후 진로는 특수학급에서 담당을 하기에 통합반 담임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이미지 출처: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지하철 역에서 우연히 지나친 A의 모습은 좋아 보였다. 옷을 단정하게 입고 있었고 등에는 백팩을 메고 있었다. 대학을 다니는 건지 아니면 취업을 나간 건지 지역 센터에 다니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여 들을 수 있었던 통화 내용으로는 정해진 목적지가 있었고 조금 늦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늦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반쯤 열려있는 백팩 속에 책이랑 클리어 파일처럼 생긴 것들이 보였다.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말끔히 차려입고 책이랑 클리어 파일을 가방에 넣고 날마다 다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이다. 기억력 하나는 비상했으니까 잘 가르쳐 준다면 복잡하지 않은 일들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튼 잘 살고 있어서 다행이네! 샘이 아는 척 못해서 미안해!

항상 그렇게 바쁘고 열심히 살았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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