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신경 써주지 못해서 미안해!

# 나의 본 모습을 알아준 그 아이

by 서쌤



교직 2년 차 시절 전교에서 유일한 남자반을 맡게 된 나는 정말 매일 전쟁 같은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키 크고 체격 좋고 젊다는 이유로 전교에서 유일한 남자반이며 나름대로 이름날리는 아이들이 모여 있던 반의 담임을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거친 아이들이 많아서 정말 좋고 편하게 말하는 것은 잘 통하지 않았고 나름대로 젊었었고 어느 정도 체벌이 용인되던 시기여서 나는 폭력교사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렇게 거친 아이들에게 맞서다 나도 모르게 나의 말과 행동도 거칠어져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경험으로 나중에 아이들 문제로 경찰서 강력계를 방문했을 때 왜 그렇게 경찰관들이 퉁명스럽고 말투가 거친지에 대하여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거친 아이들이 많았지만 그 속에는 묵묵히 그리고 조용히 규칙을 잘 지키려고 하고 학급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A도 그중 하나였다.

A는 조손가정의 아이였다. 부모는 이혼하고 할머니와 같이 사는 학생이었는데 가정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못한 편이었다. 키는 큰 편이었지만 삐쩍 마르고 말수도 많지 않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편이었다. 유난히 신경이 가는 아이였지만 워낙 말썽을 피우는 녀석들을 매로 다스리느라 시간을 많이 내어서 이야기하거나 다정하게 말을 별로 결어 주지 못했던 것 같다. 가끔씩 지나가는 말로 지내는 것이 별로 어려운 점이 없는지 할머니는 잘 계신지 한 두 마디 던지는 정도였던 것 같다.


젊음의 열정과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만 나오는 나의 신념을 가지고 거친 녀석들과 1년 가까이 정말 드라마틱한 학교 생활을 하다 보니 졸업시기가 가까워 왔다. 미운 정이 더 무섭다고 1년 내내 혼내고 때리고 하다 보니까 정이 들기도 하고 이제 졸업을 앞두고 철이 들어서 그런지 아이들과의 충돌은 거의 없어졌다.


지금 같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지만 그 당시에는 교직 경험도 별로 없었고 아직 학교를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나는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 수업시간에 사제간의 편지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다. 편안하게 자신의 생각을 쓸 수 있게 무기명으로 쓸 수 있게 했다. 나의 생각보다 나에게 대하여 좋은 말을 쓴 아이들도 있었지만 평소의 원한(?)에 대한 불만을 쓴 녀석들도 있었다.

그렇게 교무실에서 아이들이 쓴 편지를 읽다가 특히 눈에 들어오는 편지가 있었다. A가 쓴 편지였다.

고맙고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는 기억만 있고 편지의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 한 문장이 있다.


" 선생님은 겉으로는 무섭게 보이지만 따듯한 마음을 가지신 분이신 것 같습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도 나의 본모습을 알아준 녀석이 한 명이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고 교직에 들어온 보람을 느끼게 되었었다. 지금은 모두 30대 중반을 넘었을 녀석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함이 가끔씩 든다. 그때 담임을 했던 녀석 중 한 명은 아직도 가끔씩 sns로 안부를 물어 오지만 워낙 조용했고 얌전했던 A의 소식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착하고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의연했던 A는 어디서라도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제 예전처럼 아이들을 혼내고 벌주고 체벌하는 것은 불가능한 사회가 되었다. 잘못한 것에 대한 혼내고 꾸짖게 되면 학교로 전화를 해서 항의를 하는 학부모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이렇다 보니 아이들의 문제행동에 대하여 지도하고 싶은 마음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된다. 예전에 스승과 제자 사이에 있었던 끈끈함이 다소 덜해진 느낌이 든다. 어쩌면 20년 교직생활로 내가 타성에 젖어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코로나 펜데믹이 만들어낸 비대면 교육의 시대를 끝내고 대면교육으로 전환한 2022년 학생부장으로서 수많은 사건 사고를 치러낸 나는 이제 번 아웃 상태인 것 같다.


그때 A의 눈으로 보았던 교사로서의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나의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 자문해 본다. 나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아이들을 향한 따듯함이 있는 걸까? 그냥 하루하루 지내면서 월급날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keyword
이전 08화그때 참았으면 바뀌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