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의 인연이 있던 아이
실습시간이 블록으로 잡혀 있어서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 가지 않고 그냥 자리에 앉아 볼일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앞자리에 앉았던 여학생 하나가 갑자기 나한테 오더니 말했다.
“샘, 페북에 샘 이름이 있어요”
"어, 내 이름이 페북에 떠 있다고?"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무슨 내용인가를 확인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누구가 페북에 띄운 생기부에 담임으로 내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 개인정보인 자기 생기부 앞장을 페북에 올렸을까' 하는 궁금증이 떠올라서 건네받은 스마트 폰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익숙한 이름이었다. 이름을 보니 누구인지 바로 기억이 났다.
고지식하지만 뚝심이 있고 또 정의감이 있었던 A였다.
대충 십몇 년 전에 담임을 했던 녀석이다. 학업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성실했고 예의가 무척 바른 아이였다. 그리고 또래 들과 다르게 굉장히 고지식하여서 어떤 때는 나보다도 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녀석이었다. 특별히 싸움을 잘하거나 운동을 하게 아니었지만 정의감이 굉장히 커서 불의를 잘 보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그 시대에 아이들에게 보기 힘든 뚝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1학기 말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A가 찾아왔다.
"어, 왜? 무슨 일로?"
공문서 처리에 바빴던 나는 다소 심드렁하게 물어봤던 것 같다.
"샘, 저 이번에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고 싶습니다."
"어..... 학생회장에 출마한다고?, 왜?"
제자가 학생회장에 출마한다고 하면 당연히 격려해주고 지원을 해주었어야 하는데, 그 당시 나의 질문은 지금 생각해도 낮 뜨겁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이었다. 그동안 학생회장은 인원수가 많은 전자과나 입학점수가 높은 식품과에서 도맡아서 했다. 전에도 조경과에서 도전을 한 친구가 있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지만 결국 낙선을 한 적이 있었다.
"야!, 너 지금까지 조경과에서는 학생회장을 한 적이 없는 거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도전에 보고 싶습니다."
반신반의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런 생각을 가졌다는 거 자체가 멋있기도 하고 도전하겠다는 정신이 멋져 보였다.
"그럼 내가 뭘 도와줄까?"
"담임 선생님 추천서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교과 선생님들께 양해를 받고 각 반을 돌면서 홍보를 하고 싶습니다. 그 시간들만 출결 인정 확인서를 작성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른 건 필요 없고?"
"네, 제 힘으로 한 번 해보겠습니다."
"알았어, 파이팅이야!"
A는 솔직히 학급에서도 크게 눈에 띄거나 하지 않았고 특별히 인맥이 넓거나 인지도가 있는 학생은 아니었다. 근데 상대 후보들은 나름대로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고 학생회 활동을 한 적도 있어 인지도가 있는 아이들이었다. 혹시 망신만 당하고 낙심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일단은 믿어 보기로 하였다.
사전 선거기간이 시작되자 A는 자기 친구들과 같이 때로는 혼자 쉬는 시간, 점심시간, 그리고 아침 등교 시간까지 특유의 성실함과 뚝심을 가지고 홍보를 다녔다. 저런면이 있었나 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자신을 홍보하고 공약을 알리고 다녔다. 처음에는 후보들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떨어졌었는데 차츰 인지도가 오르기 시작했고 다른 과에서도 A를 지지하는 아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선거 당일, 선거 직전까지도 A는 정말 열심히 유세를 했다.
결국 A는 모든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조경과 최초로 학생회장이 되었다. 선거전까지는 전혀 인지도가 없는 아이였는데 특유의 성실함과 뚝심으로 극복해 낸 것이었다. 학생회장으로서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열심히 활동에 임했던 것 같다.
3학년 때도 A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 A는 1년간의 활동을 마치고 후임 학생회장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고 진로에 대하여 고민을 하게 되었다. 형제 많은 집안의 막내로서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으로 졸업 후 진로에 대하여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학점제 과정으로 전문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공립 기숙형 교육기관의 조경과 입학을 알려 주었고 A는 그곳으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A를 졸업시키고 2년 정도 지났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교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누구가 했더니 A였다. 졸업 후 처음으로 전화를 한 거였다. 상병 진급 휴가를 나와서 학교로 찾아오겠다는 연락이었다. 기특하고 정이 많이 갔던 녀석이었던 퇴근 후 코스요리를 하는 한정식집에서 A에게 저녁을 사 주었다.
A는 많이 그을리고 보다 남자다워진 외모가 되었지만 예의 바르고 고지식하고 뚝심 있는 성격은 여전하였다.
"얼굴이 많이 그을렸네? 훈련이 많은가 봐?"
"훈련은 별도로 안 받고 조경관리를 하느라고 조금 많이 탔습니다."
"군대에서 조경관리를 한다고?"
"다 선생님 덕분이죠 뭐"
A의 이야기를 이러했다. 훈련소에서 혹시 조경 관련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조교가 물었는데 A가 번쩍 손을 들었다고 했다. A는 3학년 때 특성화고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필기면제 실기검정 위주의 의무검정으로 조경기능사 자격을 취득했다. 솔직히 자격을 취득하기는 했지만 설계도면 작성이나 조경 시공능력이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니었고 그냥 합격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A는 훈련소 퇴소 이후 자대에 배치되었다가 바로 군단 사령부 조경 관리병으로 차출되었다고 한다. 군단 사령부에서 별도의 훈련도 없고 침대가 있는 내무반에서 별도 생활을 하면서 조경관리를 했다고 한다. 자기가 다하는 것도 아니고 도면을 그리고 그에 맞추어서 다른 사병들이 조경관리를 할 수 있게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이등병이 말이다!! 어째튼 훌륭한 숙식환경이 보장되는 군단 사령부에서 거의 1년 가까이 파견을 마치고 상병을 달고 자대로 복귀했다고 한다. 가장 힘들었던 졸병의 시간들을 파견으로 다보내고 이제는 어느 정도 선임이 되어 자대로 돌아온 것이다. 혹시 자대에서 선임들이 편하게 지내다 왔다고 괴롭히지 않냐고 했더니 군사령부 있다가 와서 다들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조경을 배워서 군생활이 정말 편했어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래 그렇게 감사하면 다음에는 네가 한번 술 사라."
그렇게 훈훈하게 군복을 입고 찾아온 A를 만났던 기억이 생각났다.
그 후로 A가 대학을 졸업하고 조경 관련 일을 한다고 듣기는 했지만 그 이후의 일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 A의 근황을 알게 될지는 몰랐다. 생활기록부에 이외에 사진 몇 장만 올라있고 다른 내용은 올리지를 않아서 무엇을 하며 어디에 사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A의 사례를 경험하면서 나의 교직관에 대하여 교사로서의 모습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
또 내가 그동안 아이들에게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단지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그들의 가능성을 내 마음대로 제한하고 생각하고 이를 말로 내뱉지는 않았을까 하는 반성을 했던 것 같다.
어쨌든 그 이후로 의지와 끈기 그리고 뚝심만 있다면 우리 아이들도 못 할 일이 없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가끔씩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A의 이야기를 해주며 자신감을 가지고 끈기 있게 도전해 보라고 이야기한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를 통해서 선생님도 많이 배우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너 만이 가지고 있는 예의바름, 끈기, 뚝심을 잃지 않는다면 어디서든지 충분히 한 사람 이상의 몫은 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 모습은 평생 잃지 않고 간직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