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아서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졸업한 아이들 전화번호를 계속 저장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전화번호가 몇 백개나 되어 가급적 몇 년이 지나면 삭제를 하였다. 전화번호가 저장이 안 되어 있으면 졸업한 지 3년은 넘은 것 같은데 누구일까 하는 마음에 답문자를 보냈다.
'미안해! 누구니? 샘이 전화를 바꾸며 번호들을 삭제해서.'
'아! 저 18년도 □□고 졸업한 A입니다.'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녀석이었다. 전화번호가 몇 백개가 되더라도 그냥 저장해 놓을 걸 그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은 정말 으레 학교에 찾아오면 언제든지 선생님이 자기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수업이 있거나 출장을 가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다른 학교로 옮겨 간다는 것을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담임샘한테 전화를 했는데 전화번호를 저장하지 않아 누구냐고 물어본다는 것이 교사로서 조금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교 애완동물과에 특강을 하러 왔다가 내가 근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를 한 것이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내려가서 오랜만에 A를 만나게 되었다.
A를 처음 만난 건 몇 년 전 화성에 있는 학교에서 근무할 때였다. A는 우리 반 반장이었고 정말 성실하고 착한 학생이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진중하고 생각이 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학생이었다. 다만 착한 마음에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잘하지 못해 손해를 보기도 하였지만 기꺼이 감수하고 자신이 스스로 솔선수범하는 학생이었다. 학급 청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본인이 그냥 책임감을 가지고 뒷 청소를 하고 선생님들의 심부름도 도맡아서 하였다. 그리고 학업에도 집중하고 열심히 공부를 하는 학생이었다.
학급의 여학생들이 두 집단으로 나뉘어서 심각하게 대립하고 갈등을 할 때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관심을 두지 않거나 지켜보기만 했지만 A는 나서서 중재를 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좋은 소리도 듣지 못하고 결과도 좋지 못해서 많이 마음 아파했었다. 굳이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랬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학과별로 1개 반뿐이어서 3년 동안 같은 반이었는데 이렇게 관계가 나빠져서 졸업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키지는 않았지만 반장으로서 나서야 될 같아서 그랬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솔직히 그 말을 듣고서 너무 감동받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기적이고 자기만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전혀 이익이 되지 않지만 나보다 모두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 기특했다.
졸업식날 아이들 한 명씩에게 덕담을 해줄 때 A에게는 너는 정말 성실하고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고 의지도 강하니까 잘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물론 말하면서도 덕담의 차원이었고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 꼭 그러게 될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은 아니었다.
A는 인천공항에서 검역견을 관리하는 특별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하였다. 군대도 벌써 갔다 오고 이제 24살의 나이에 공무원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A는 학교 다닐 때 부터 애견 훈련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애견 훈련사가 매스컴에 많이 소개되고 보편화되면서 인기가 있는 직종이 되었지만 실상은 쉽지 않은 일이다. 훈련뿐만 아니라 같이 사육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고 고되였다. 이런 이유로 많은 아이들이 쉽게 애견 훈련에 도전하였다가 열악한 근무조건과 환경에 금방 그만두고 하였다.
학교 때 A와 같이 애견 훈련을 공부한 아이들 중에 남아 있는 것은 A 밖에 없었다. 학창 시절 때 보여 주었던 성실함과 끈기, 의지가 현재의 A를 있게 해 준 것 같았다. 일정이 있어서 더 길게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나도 집이 인천이니까 밖으로 나오면 식사 한번 하자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돌아오면서 뿌듯한 마음이 느껴졌다. 성실하고 솔선수범하며 착한 마음을 가진 A가 자신이 원하던 분야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것을 보니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졸업식 때 진심을 담아 해 주었던 덕담이 실현되어 가는 것 같아서 더 기뻤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할 때 올바른 학교생활과 삶의 표본으로 A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늘 아이들에게 성실과 끈기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지만 요즘 사회의 흐름에서는 조금 진보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좋은 취업자리인데도 힘듬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백수의 생활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늘 안타까웠다. 성실하고 끈기가 있었고 자신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을 배려할 줄 알았던 A의 학교생활과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어려움을 이겨내고 원하는 바를 이룬 의지와 끈기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애들아 성실과 끈기 그리고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어. 선생님 제자 이야기를 한 번 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