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참았으면 바뀌었을까?

by 서쌤

교직생활 20여 년이 다되어 간다.

며칠 전 교직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은 누구세요?라는 질문을 주변 지인에게 받았다.

바로 떠오르는 학생이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말할 수 없었다. 자리 분위기에 맞는 이야기도 아니었고

나도 여러 사람 앞에서 떠벌리듯 이야기 하기는 어려운 기억이었다.


웬만하면 아이들의 페북 친구 신청 요청은 다 받아준다. 그런데 딱 한번 친구 수락을 못한 적이 있다.

그 아이였다. 친구 수락을 누를까 꽤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누르지 못했다. 그 후로도 수락 요청은 꽤 오랫동안 취소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을 밝힐 수 없어 A로 지칭하겠다.

A는 키도 작고 왜소한 학생이었다. 활발하기도 하고 평소에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갑자기 돌변하면서 분노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었다. 몇 번 이런 일이 있어 학급에서 여학생들과 문제가 발생했다.

학교 전문상담 샘께 상담의뢰를 부탁했다. 아무래도 여학생이고 하니 여선생님이 상담하는 것이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 시간 후 상담 샘이 잠깐 나를 보자고 하였다. 아마 A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상담실을 갔다.


상담실을 나오면서 나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 당시는 교직경력도 몇 년 되지 않을 때였다.

A의 아버지는 교도소에 가 있었고 어머니는 어릴 때 이혼해서 연락도 되지 않았다. 아버지를 신고한 것은 바로 A 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지속적으로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해왔고 결국 중학교 2학년 때 본인이 신고한 것이다.

현재는 고모네 집에서 살고 있었지만 고모는 아버지를 교도소로 보낸 A를 탐탁지 않게 보고 있어 불화가 있었고 결국 A는 집을 떠나게 되었다.


집을 나온 A는 여기저기 전전하기 시작했고 학교에 결석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예전에 알던 아줌마네 집, 아는 언니네 집 등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유일한 보호자인 고모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자기 동생이 교도소를 가게 했다고 A를 탓하는 듯한 뉘앙스의 말들을 했다. 고모한테서는 A의 보호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없을 것 같아 상담 샘의 도움을 얻어 청소년 쉼터를 알선해 주었다. 그렇지만 거기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지고 있고 성격불안이 심한 A가 쉼터에서도 다른 아이들과 잘 지내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상담 샘과 같이 여러 군데 수소문하여 정신상담도 가능한 천주교 계통의 쉼터로 옮기게 하였다. 그리고 학교에 나오면 꼭 상담실에 들려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직접 수녀님께 전화를 걸어 A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부탁의 말씀을 드렸고, 수녀님께서도 잘 보호하겠다고 하셔 마음이 조금 놓이긴 했다.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쉼터로 옮긴 다음에는 A의 학교 출석률도 좋아지고 조금씩 생활이 안정되어 가는 듯 보였다.


그런데 정말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생겼다.

A의 아버지가 형기를 채우고 출소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랜 기간 여기저기를 떠돌아서 가족의 정이 그리웠는지 A는 아버지와 같이 살겠다고 하였다. 쉼터에서 학교에서 여러 번 상담을 받고 나도 설득을 해봤지만 A는 요지부동이었다. 아버지도 그렇게 원한다는 것이다. 결국 A는 아버지와 같이 살게 되었고 비교적 안정적으로 학교에도 출석을 하게 되었다. 결석 없이 계속 학교를 잘 나오니 담임으로서는 신경 쓸 부분이 줄었지만 '지금까지 난 무엇을 한 것일까'하는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A의 평안한 학교생활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PTSD로 인해 과도한 공격성을 가지고 있는 A가 여학생들과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 당시는 지금과 같이 법령으로 명확하게 학교폭력에 대한 대응시스템과 규정이 확립된 시기는 아니었다.

따돌림을 한 아이들도 문제가 있지만 담임인 내가 보기에도 A의 성격은 단체생활에서 받아 주기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지속적이고 보다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지만 학교에서는 한계가 있었고 보호자인 아빠는 자신 때문에 발생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없었다.


이제 정말 지치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A만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아이들도 관리를 해주어야 하고 행정업무도 처리하고 수업도 해야 되는데 언제까지 이 아이 만을 위한 케어를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째튼 학생부에도 알리고 절차에 따라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A의 아버지가 학교를 방문했다. 정말 보고 싶지 않았지만 담임으로서 학부모의 면담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A와 비슷하게 자그마한 체구였지만 단단해 보이는 몸집이었고 팔의 일부분에는 문신이 조금 있었다. A 아버지가 쏟아낸 말의 요지는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이 발생하는 것도 어떻게 모르고 관리를 못했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속으로 정말 꽉 차 있던 분노 같은 것이 끓어올랐다. 대강의 사정을 눈치껏 알고 계시던 옆자리에 계시던 선생님이 내 표정을 보고는 얼른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셨다. 선생님의 편안한 말과 조언을 듣고 화를 가라앉히고 다시 교무실로 들어와 상담을 했다.

'죄송합니다. 학생부에 연락을 해 놓았으니까 절차대로 정확하게 A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처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리고 상담을 마무리했어야 했는데 한 마디를 더해 버리고 말았다.

'아버님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A의 상황을 제가 잘 알고 있어서 그래도 상담도 많이 했고 쉼터도 여러 군데 알선했습니다.'

격앙된 목소리로 항의하던 A의 아버지는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고 잠깐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상담은 종료되었다.

'아 마지막 말을 하지 말고 그냥 상담을 종료했어야 되었는데...' 두고두고 후회스러운 순간이었다.


며칠 뒤 A는 보호자 동의하에 자퇴의사를 밝혔다. 다시 생각해보라고 상담을 하고 상담실에 보내도 A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학교에서 관계가 불편하니까 자퇴를 하고 새로 배워볼 일을 찾아보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A는 학교를 떠났다. 임신한 몸으로도 A를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상담 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했다.

상담 샘은 '샘도 정말 고생하셨어요. 그런데 자퇴를 해버렸으니 무슨 소용인가 싶어요'

맞는 말이다. 그동안의 노력들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상담할 때 내가 그런 말만 안 했으면 A는 학교를 잘 다니고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수없이 되뇌었다.

이제 정말 학급과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정말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면 안 되는 건데 하면서....


그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A는 나이 많은 남자 한데 시집을 가서 그 집에 들어가서 애기도 낳고 살고 있다고 했다. '가정을 이루어서 엄마도 되고 했으니 행복한 결말이 된 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는 더 이상 A의 소식을 듣지 못했고 수소문하지도 않았다.



교사와 학교는 아동폭력 신고 의무 대상자이며 법적으로 고등학생도 아동폭력 피해자에 해당된다. 그리고 아동에 대한 성폭력도 아동폭력에 포함된다. 특히 아동에 대한 성폭력은 가족, 친족 또는 친밀한 관계의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이었고 결말이 너무 아쉬워서 잊고 싶지만 항상 어떤 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로는 기억이다. 그렇지만 남은 교직 생활 중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이야기지만 내 뜻대로 되는 것을 아닐 것이다. 만약에 혹시라도 또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면 이번에는 정말 아쉬운 기억이 남지 않게 잘 대응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해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 섣부른 다짐보다는 그냥 하루하루 교사로서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지 뭐' 이제 제법 되는 교직 경력에서 나오는 경험으로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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