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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쌤 Oct 28. 2022

생애처음으로 차에서 잠복을 하게 되었다.

# 코로나 이후 처음 하는 체육대회의 단상

차의 클락션을 크게 누른 후 이쪽을 쳐다보는 아이들을 손짓으로 불렀다.

"어디 가는 거야?"

"화장실 가요"

"담임 샘 허락은 받았지?, 몇 학년 몇 반 누구야?"


코로나 이후 처음 치러지는 체육대회였다. 

오랜만에 이루어지는 행사다 보니 아이들의 기대감도 매우 컸고 또 일탈을 준비하는 아이들에 대한 첩보(?)도 들려왔다. 결국 체육대회가 이루어지는 축구장 출입문 근처에 내 차를 주차해 놓고 남자 샘 한분과 아이들의 입출입을 관리하기로 하였다. 계속 서있기도 뭐하고 특별히 앉아 있을 곳도 없어 생각해 낸 고육지책이었다. 

음악을 잔잔히 틀어놓고 창문을 열고 있다가 밖으로 나오는 아이들이 보이면 클락션을 눌러서(처음에는 소리쳐 불렀지만 너무 힘들어 나중에는 그냥 클락션으로 대신했다.) 부른 후 어디 가는지를 확인했다. 

친한 선생님들이 지나가시다가 잠복근무를 하는 형사들 같다면 안쓰러운 웃음을 지으셨다. 

미리 준비해 온 간식과 음료수를 먹으며 차에 있으니까 진짜 영화에서처럼 잠복근무를 하는 형사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어 옆에 있는 샘께 그곳을 맡기고 학교를 돌아다녔다. 빈 교실과 화장실 또 학교 내 인적이 드문 곳들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그런데 아이들이 잘 눈에 띄지 않았고 빈 교실에 화장을 고치고 있던 여학생 몇 명만 있어 잘 타일러 축구장으로 돌려보냈다. 내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들이 화장실만 바로 이용하고 바로 다시 체육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축구장으로 돌아갔다. 체육대회 행사장안을 돌아보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리에 있어고 열심히 경기를 참여하고 응원하고 있었다. 

예전처럼 체육대회에 참여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교실에 남아 있거나 개별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식전행사로 학과별 등장 댄스에 참여하고 교내 순찰, 밥 먹는 시간 외에는 거의 하루 종일 차에 앉아 잠복 아닌 잠복을 했다. 우리가 밖에서 잠복(?)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서 그런지 밖으로 나오는 학생들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여러 다른 학교들을 돌아다니며 보았던 어떤 체육대회 보다도 아이들의 참여율과 호응이 높았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 왜 아이들이 이렇게 열심히 체육대회에 참여했을까 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코로나로 인한 몇 년간의 비대면 교육으로 인해 관계의 단절을 경험한 아이들에게 체육대회가 모처럼 만의 탈출구이며 해방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어쩌면 학생부장으로서 우리 아이들을 너무 나쁘게 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가도 살짝 들기도 하였다. 

어째튼 대부분의 시간을 차속에서는 보내는 교직생활 중 처음 경험하는 신박한 체육대회였던 것 같다. 그리고 진짜 형사들이 잠복하는 것처럼 하루 종일 나와 같은 차속에서 같이 고생해준 P샘에게도 고마운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애초의 나의 기대와 신뢰보다 훨씬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준 우리 학교의 아이들에게도 고마운 생각이 든다. 어쩌면 교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 사고를 처리해야 하는 학생부장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너무 믿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너희들의 밝게 웃는 모습과 열정을 가지고 큰 소리로 응원하는 모습들을 축구장 펜스 밖에서 지켜 보게 되어 아쉽기도 했지만 반면에 좋기도 했다. 교실에서도 그런 열정과 웃음을 계속 보여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그리고.

"너희들이 보여준 오늘의 행동과 태도들은 정말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체육대회 때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이렇게 규칙을 잘 지키고 따라 주었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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