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쌤 Nov 12. 2022

분노 폭발증 처방을 받았다.

선택교과 수업으로 연강이어서 실습실에 그냥 앉아 있었는데 이전 시간에 상담실에 갔다 온 학생이 저한테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약봉투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약국에서 처방하는 약봉투는 아니고 우리 학교 상담실에서 운영하는 마음 약방 프로그램이다. 또래상담 동아리 학생들이 선생님 또는 학생들에게 각각의 특성에 맞는 적절한 처방전(?)을 끊어주고 약봉지를 준다. 약봉지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젤리와 같은 다양한 간식들이 들어있다. 




근데 나의 처방명은 



분노 폭발증이었다. 



솔직히 받고 나서 별로 기분이 좋은 선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왜 나한테 분노 폭발증 처방을 해주었을까 하고 하루 종일 곱씹어 보았다. 아마 학생부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1학기 때에 비하여 2학기 때는 솔직히 지치기도 하고 조금 힘을 빼고 유연하게 아이들을 대하려고 했지만 정말 예의 없이 대들거나 어이없이 행동하는 아이들을 보면 분노가 폭발하기도 한다. 

솔직히 좋은 말로 친절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렇게 이야기하면 아이들에게 얕보이는 경우도 있고 말발이 잘 먹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수업시간에는 가급적 학생부장이라는 책임을 내려놓고 예전처럼 농담도 하면서 유연하고 편안하게 지내려고 하였는데 뭐 그 아이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노 폭발증이 의학적으로 정식 명칭은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분노가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학교에서 다양한 사건사고로 아이들을 상담하고 사안을 조사하다 보면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종종 접하게 되는데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분노조절장애간헐적 폭발성 장애(분노조절장애)의 올바른 의학적 용어는 간헐적 폭발성 장애이다. 간헐적 폭발성 장애는 폭력이 동반될 수도 있는 분노의 폭발을 특징으로 하는 행동 장애로, 종종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건에 의해서도 상황에 맞지 않게 분노를 폭발하는 증상을 특징적으로 한다.


아이들을 상담하고 각종 사고를 조사하다 보면 가만히 잘 있다가 특정 부분(예: 집안 이야기, 부모 이야기)에서 갑자기 급격하게 흥분하여 제어하기가 어려운 아이들이 가끔씩 있다. 역시 학생부 계원인 전문상담 선생님께 보내서 차분하게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심리학을 공부하시고 자격증을 가지고 계시는 상담 샘은 아마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 같고 정신과 전문상담치료가 필요할 것 같다는 조언을 해주시는 경우가 있다. 가족 간의 관계 단절과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우리 사회의 영향으로 아이들은 실제로 다양한 스트레스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자발적 분노조절장애: 자신이 가해자임에도 사안 조사 시작부터 흥분해 있고 거칠게 행동을 한다. 잘못은 네가 한 것이고 선생님은 단지 정확하게 사안을 조사하려는 것인데 예의를 지키라고 하면 자신은 분노조절장애가 있어서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정신과에서 정확하게 분노조절장애를 진단을 받았는지를 물어보면 그건 아니라고 하지만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렇게 자발적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A는 거친 행동과 말로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여러 번 학교에서 중한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학교를 더 다니기 힘들 정도의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요즘 A는 자발적 분노조절장애를 빙자한 기세 등등하게 건방지고 오만한 모습은 다 없어지고 공손한 모습으로 조용히 학생부를 방문한다. 그리고 학생부 선생님들의 지시에도 대답도 잘하고 잘 따른다. 


가끔은 학생부 선생님들끼리 이런 농담을 한다.

"분노조절장애가 있어 이렇게 화를 내는 거라고 하는 아이들이 정말로 문신한 살벌한 조폭들 앞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2년째 수업을 가르치고 있고 나와도 친분이 녀석이 보내준 분노 폭발증 처방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 하루였던 것 같다. 단호할 때는 냉정하고 보통 때에는 친근하게 아이들을 대하겠다는 마음으로 학생부장으로 하루하루 지내고 있었는데 그거는 나만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말 화를 내지 않아야 마음먹어도 쉽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아서 항상 웃기에는 힘들다. 교사가 정말 감정 노동자라는 말을 요즘 새삼 더 느끼고 있지만 나의 분노 폭발증에 너무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이 자리가 마냥 좋을 수만 없기 때문에 때로는 화를 내지만 또 다른 때는 웃기도 하면서 농담도 하고 늘 해왔던 대로 지내려고 한다. 

그리고 개인적 교직관으로 아이들을 항상 좋게 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화를 내고 혼내고 싸우기도 하고 그런 시간들이 지나가면 친구처럼 농담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진정한 교사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애들아 학생부장이 분노 폭발증 대신 웃음 폭발증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면 안 되겠니!!!"


메인이지미 출처:  bustle.com

이전 07화 '내로남불'인데 차마 의미를 설명할 수 없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