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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쌤 Mar 03. 2022

존중이 있는 대화를 할 줄 알았지만...

# 하기싫지만 모른척 할 수 없는.


따스한 3월의 햇살 속에서 개학한 학교들은 혼란의 도가니에 있다.

코로나 대 위기 속에서 예상대로 개학 후에 확진, 자가격리로 등교하지 못한 학생들이 발생하고 확진 판정을 받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선생님들도 확진이 되어 격리기간을 끝내고 등교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학교 현장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신속항원검사 키트가 분배되었고 확진자 발생 시 조사의 책임이 학교로 넘어왔기에 급식과 학생 이동시 보다 더 신중을 기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선생님들이 느끼는 경각심이나 긴장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일상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에도 아이들은 불안감을 크게 느끼지 않는 것 같고 일상의 행동 등을 그대로 하고 있다. 그러한 행동들로 인해 개학 2일째인 오늘 아이들과 예상치 못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2022학년 학생부장으로 시작한 지 2일째 되는 날 방과 후에 학교 주변 순찰을 돌다 내가 이전부터 알고 있던 아이들과 존중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주변 순찰을 거의 다 돌고 돌아오던 중 골목길로 들어가는 두 명의 실루엣이 보였다.

같이 순찰을 돌던 선생님과 조용히 얼른 따라 들어가서 코너를 돌아보니 한 녀석은 손에 권련형 전자담배를 들고 있고, 다른 한 녀석은 그냥 옆에 서있었다. 둘 다 수업과 동아리에서 다 지도했던 녀석들이었다.



" 얘들아 뭐 하는 거니? "

" 어, 샘 죄송합니다. "

" 죄송한 일을 왜 해?"

" 담배를 못 끊어서, 앞으로 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전자담배랑 권련이랑 이리 줘"

" 네 여기 있습니다. "

" 이거 돌려줄 수가 없어 학생이 가지면 안 되는 거니까"

" 네 알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상상을 했었지만 실상은 아래의 대화가 오고 갔다.

" 얘들아 뭐 하는 거니? "

"..................... "

" 전자담배랑 권련이랑 이리 줘"

" ......................"

" 이거 돌려줄 수가 없어 학생이 가지면 안 되는 거니까"

" 안돼요, 권련을 가져가시고 전자담배를 돌려주세요"

" 학생한테 전자담배를 돌려주는 게 어디 있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 그거 아버지 께요. 11만 원이나 되는 건데, 주세요"

" 암만 비싸도 미성년자가 학생이 소지할 수 없는 물건인데 이걸 다시 돌려주는 게 어디 있어"

" 그리고 너 눈 풀어, 왜 그렇게 쳐다봐!  잘하면 치겠다.!"

" 안 준다고 하니까"

" 내가 잘못한 거니? 네가 잘못한 거고 미성년자가 학생이 전자담배 피운 거 아냐!"

" 내일 학생부로 와"

"..........................."

" 내일 학생부로 오라고!!"

"예"


개학 후 2일째, 학생부장 2일째 학교 주변 골목에서 이렇게 존중의 대화와는 거리가 먼 날것의 거친 대화가 이루어졌다.

그래도 흥분하거나 소리를 치지는 않았다. 이제는 윽박을 지르거나 강제적으로 아이들을 다루면 민원의 소지가 된다. 차분하게 냉소적이면서 그리고 논리적으로 아이들의 가당치 않은 주장들을 뚫어내야 한다.


하지만 처음의 대화처럼 상호 존중해주며 감동이 있는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을 아직도 품고 있다.

언젠 가는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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