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아 난 빛날 테니까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의 자존감 문제

by 주형민

황가람 가수의 노래 <나는 반딧불>을 듣다가 울컥했다. 듣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겠지만, 나는 이 노래를 '자존감'에 관한 이야기로 들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자존감을 온전하게 유지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나도 노무사가 되기 전에, 상당한 기간에 걸쳐 다양한 직장 생활을 했다. 노무사가 된 후에는, 훨씬 더 다양한 업종과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만나면서 숱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통상적으로 돈을 주는 쪽이 갑이다. 그러니, 회사는 갑이고 근로자는 을인 관계가 형성된다. 갑과 을의 관계는 수직적이다. 이미 불평등이 내재해 있다. 즉, 근로자는 이른바 '갑질'을 당하기 쉬운 구조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나는 반딧불>에는 벌레와 별로 대별되는 상반된 존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유명한 노예-주인의 변증법이 떠오른다. 흔히, 직장인은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월급 노예'라 부른다. 자신을 벌레 또는 노예로 인식하는 것이다. 근로자를 '일회용품' 취급하는 회사가 참 많다. 그래서 아픈 근로자를 해고하고, 직장 내 괴롭힘을 통해 근로자가 스스로 그만두게끔 유도하며, 출산전후휴가나 육아휴직을 사용하려는 근로자에게 노골적으로 퇴사를 종용한다.


10년 넘게 직장 내 괴롭힘 상담을 하면서 늘 생각하는 게 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자존감을 유지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구조적인 갑을 관계에서, 자신을 스스로 '을'의 위치에 '고정'해 놓았다면 더욱 그렇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걸까. 내가 받는 월급에, 내 인격과 자존감도 돈으로 환산하여 포함된 걸까.


정말로 자신을 '을'로, '벌레'로, '노예'로, '일회용품'으로 인식한 근로자라면, 직장에서 부당한 일을 겪어도 참고 참다가 조용히 퇴사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러한 근로자가 무척 많겠지만, 노동 상담을 통해서 이러한 분들을 만나기는 어렵다.


노동 상담을 요청하는 근로자는, 자신을 '벌레'나 '노예'로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시간을 내어 노동 상담을 요청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근로자에게 나는 자존감과 권리에 관하여 설명한다. 이들 대부분은 나의 말에 수긍하고, 때로는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들이 용기를 내어 자신을 보호하는 행동에 나서기를 바란다. 하지만 인식의 변화가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이들이 행동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좌표를 바꾸어 가기를 바란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대다수는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고, 자존감이 크게 떨어진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한 상황이 길어질수록 몸에서도 이상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우울증, 수면 장애 등이 뒤따른다. 누구에게나 생계는 중요하지만, 그 생계를 유지하는 힘은 자존감에서 나온다. 자신을 온전하게 보호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아무쪼록,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가 자책하거나 '자기 검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을 '벌레'가 아니라 빛나는 '별'로 인식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괜찮아 난 빛날 테니까"라는 노랫말이, 단순한 자기 위로나 자기 합리화를 넘어서, 자존감을 원동력으로 삼아 행동으로 나아가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고, 성과급을 안 줘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