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8월 22일, 여느 때와 똑같이 함께 저녁을 먹고 잠시 편의점에 갔다 오겠다던 엄마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가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걸어가던 엄마를 배달 트럭이 그대로 들이받았다고 했습니다.
정신없이 응급실에 가보니 엄마는 뇌출혈로 누워있었고, 갑작스럽게 엄마를 받아줄 수 있는 대학병원은 없었습니다. 뉴스에서 보던 의료대란의 피해자가 우리 가족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는데 말입니다.
아빠는 일시정지, 멈춤상태가 되었습니다. 나도 주변의 온갖 사람들에게 전화해 병원에 아는 사람이 없는지 물으며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렇게 1시간, 2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다행히 조금 떨어진 곳에 한 작은 대학병원에서 받아줄 수 있다는 연락이 왔고, 쓰러져가는 엄마와 119 응급구조차를 타고 병원으로 달렸습니다.
그때까지도 나는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눈물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 없을 정도로 절박했던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몇 가지 검사를 마치고 담당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출혈이 점점 커지고 있고 범위가 넓어서 수술을 준비해야 할 수 있다. 심각해지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수도 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먹은 저녁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보낼까봐, 하지 못했던 말들이 사무치게 속에서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렇게 중환자실에 보낸 엄마를 일주일 정도 보지 못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죽을 힘을 다해 기도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기도하고 울고, 울고 기도하고, 그러면서도 깨어난 엄마가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갔습니다.
(엄마가 사고난 그 다음 날은 내가 가고 싶었던 회사의 인턴 면접이 있는 날이었고, 밤새 병원에서 울던 나는 무슨 정신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엄마가 기뻐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면접을 갔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면접에서 붙어 현재도 근무하는 중입니다.)
함께 기도해주고 울어주던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 밖에 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내가 참 무력하게도 느껴졌습니다.
너무 가슴이 답답해서 숨이 안쉬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습니다. 마음이 찢어진다는 것을 물리적으로 느꼈던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그토록 아껴왔던게 너무 후회되었고, 나중에 효도하겠다는 말로 그의 사랑을 받기만 했던 것이 너무도 이기적이게 느껴졌습니다.
다행히 누구보다 강한 사람인 우리 엄마는 극복하고 정신을 되찾았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일반병실로 내려와 드디어 엄마를 볼 수 있게 되었고, 나는 내가 하던 모든 일들을 잠시 멈추고 엄마를 간병하러 병원에 들어갔습니다.
간병인을 쓰라는 말도 많았지만, 머리를 다친 사람에게는 그 무엇보다 "사랑"과 "안정"이 중요하다는 말이 머리속을 맴돌았습니다.
엄마를 간병하는 그 시간이 힘들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심한 섬망증상을 보이던 엄마는 이상한 말을 계속해서 했고, 나의 말은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
밤마다 혼자 일어나려는 엄마를 지켜보느라 잠은 거의 자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루 아침에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엄마를 지켜보는 것이 가장 찢어지게 마음아픈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24시간 내내 엄마를 지켜보고 쓰다듬고 안아주며, 저는 사랑과 안정을 온전히 전달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습니다.
섬망증상을 보이는 중에 엄마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집에 가라"와 "밥먹어라"였습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하는 중에도, 엄마는 제 걱정만 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엄마를 제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저와 다른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걱정을 가득 껴안은 엄마는 지금은 많이 호전되어 극복 중에 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엄마를 꼭 안아주며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이, 언제 떠나갈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저는 이제야 깨달아버린 듯 합니다.
24살, 엄마를 잃을 뻔한 경험을 저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이 다짐과 깨달음으로 앞으로 남은 저의 인생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아끼지 말고 살아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