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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친 운전자는 사과 한 마디 없었다

법은 인간을 바꿀 수 있다

by 제로

인간의 삶이 변화하면 법이 바뀐다.

그러나 법이 인간을 바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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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특례법은 피해자를 신속하게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졌으나, 그와 동시에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교통사고 자체를 특별히 취급한다.


교통사고는 본질적으로 피해자에게 손해를 입히는 행위이나, 빈번히 발생하는 모든 교통사고 가해자들을 범죄자로 만들 수는 없는 법이기에, 12개의 중한 과실들(중앙선 침범, 음주운전 등)을 제외하고는 자동차운전보험에 가입한 운전자를 처벌할 수 없다.


형사처벌이 원천적으로 불가한 경우 피해자와의 '합의'는 큰 의미가 없어졌다. (물론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은 별개의 문제이다.)

민사상 손해배상 또한 가입한 운전자보험사를 통해 최대한 깎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는데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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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부주의한 트럭과 부딪혀 심각한 뇌출혈로 죽음의 문턱을 넘어왔고, 모두의 기도로 기적 같이 회복했다.

회복 중인 것과 별개로 엄마와 우리 가족의 일상은 한 순간에 무너졌다.


그러나 그 사이에 주의의무를 위반한 가해 운전자의 연락 한 통도, 사과 한 마디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와 특별히 합의할 필요도 없었고, 보험 합의는 보험사를 통해 충분히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기 전까지, 나는 돈이 대부분의 피해를 회복시켜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돈으로 치유되지 않는 마음이 있다.

우리는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를 원했다. 그것이 없어 치유되지 않는 마음 한 구석이 자꾸 아팠다.


조서를 쓰고 나와 담당 경찰관에게 조심스레 물어봤다.

'왜 운전자분은 저희에게 아무 연락이 없는걸까요?'


경찰관은 말했다.

'법이 바뀐 이후로 세상이 많이 변했어요. 교통사고는 돈으로 해결하면 되는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정작 피해입은 사람에게 사과하고 용서받는 사람은 10에 2명도 안돼요. 그러니 상처받지 말고 그냥 잊어요. 세상이 변한거에요.'라고.


나의 잘못으로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다치게 했다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일 텐데.

참 차가운 세상이 되었구나.


교통사고특례법의 취지와 목적, 그리고 실효성은 법학과 학생으로서 충분히 이해하나, 내가 공부하는 법이 때로는 개개인의 삶에 이토록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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