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가스라이팅 당한 거라고?!
코로나였다.
우한독감이라는 바이러스가 나타났다. 그 바이러스는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개명하더니 몸덩이를 키워나갔다. 전세계가 이 바이러스 하나로 옴짝달싹 못하니 시장은 꽁꽁 얼어 붙었다. 마스크를 쓰는게 필수가 되었다. 온갖 괴담들이 공포감을 몰고왔고 사회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여파가 가장 처음 내게 와 닿았던 순간은 졸업식이 취소됐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였다. 내가 어떻게 논문을 쓰고 이 시기를 버텼는데... 너무 허무하게도 학위증서와 졸업증을 우편으로 받게 되었다. 지도교수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할 시간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축하를 받을 기회도 없었다. 학위를 받고 멍하게 한참 처다보는게 나의 유일한 학위 세레모니였다.
다시 취업을 해야했다. 하지만 자리가 많이 나지 않았다. 코로나가 불어닥쳤는데 자기 자리를 털고 나올 사람이 어디 흔하겠는가. 이 시국엔 일단 퇴직욕구를 꾹 눌러담고 자리를 보전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지원할 곳이 많지 않았다. 특히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더더욱 없었다.
결국 아이들을 직접 만나기는 힘든, 조금 거리를 두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들에 지원을 하였다. 서류 넣은 곳 중 2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한 곳은 큰 규모의 협회 소속 계약직이었고, 한 곳은 작은 규모의 기관 정규직이었다. 큰 규모의 회사에서는 면접이 자꾸 미뤄졌다. 2번이나 미뤄진 면접 사이에 작은 곳의 면접을 보게 되었고, 합격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면접조차 보지 못했던 큰회사는 포기하게 되었다.
'샘은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하하!'
나 빼고 2명의 직원 중 1명은 이번달 10일까지 일하고 퇴사라고 하였다.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것이다.
'근데 00샘도 다음달 퇴사예요. 하하! 그래도 샘이 들어와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잘부탁해요!'
'???'
그나마 믿고 의지해야겠다 생각했던 다른 샘 마저 다음달 10일 퇴사라고 하였다. 입사3일차, 이 회사에 나밖에 남지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계산해보자... 내 자리에 있던 직원이 2월자 퇴직, 옆직원이 3월자 퇴직, 앞직원이 4월자 퇴직이면... 줄지어나간거잖아...? 이유가 있을 텐데...? 심지어 지금 나가는 2명 모두 1년만 딱 채우고 나가는건데, 그렇단건 작년에도 같은일이...?
도망쳐야... 하나?
가스라이팅 :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새로운 직원이 뽑히고 나는 곧바로 가장 먼저 입사한 선배가 되었다. 신규직원들은 나에게 질문을 했지만 '내가 뭘 알턱이 있나...' 센터장은 내가 똘똘하게 잘 해나갈 거라며 독려했다. 나보다 연차가 많은 옆 직원이 선임, 내가 중간역할을 해주길 바랬고, 옆 선임과 호흡을 맞춰 처음부터 체계를 갖춰나갔다.
나는 일이 빠른 편이었고, 대학원을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머리도 확확 잘돌아갔던 것 같다. 작은 조직이다보니 중간 연차인 내가 능력을 발휘하기 좋은 구조였고, 진취적인 성격 덕에 많은 일들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단합도 매우 잘 되었다. 당시 선임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탁월했던 것 같다. 우리는 인근 아파트에 장이 열리는 날이면 점심시간 찾아가 시장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고, 함께 먹고 함께 빼는(?) 작은 공동체였다.
센터장은 자리에 있는 날이 적었다. 5일 중 2~3일 센터에 있었고, 이외의 시간은 재단의 일을 겸직하며 시간을 보냈다.(기관 정책은 겸직금지로 되어있었으나 당시 재단은 안하무인이었고, 내가 퇴사하기전 뉴스에도 등장할 정도로 엉망인 경영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주 1회 진행되는 주간회의에는 꼭 참석하여 센터 일을 같이 논의하고 이끌어가셨는데 이 회의의 분위기는 그때 그때 센터장의 감정과 의도에 따라 달라졌었던 것 같다. 그리고 회의 때마다 늘 '타겟'이 존재했었다.
타겟이 된 직원은 모든 부분에서 까였다. 모든 안건에 대한 질문은 타겟에게 가게 되었다. 자신의 담당업무가 아닌 분야에도 대답해야했고, 대답의 성실도와 상관없이 모든 대답은 다시 까였다. '생각이 없다.', '그 연차에 그 대답이 나오는게 맞냐?', ' 너 정말 어쩌려고 그러냐' 그리고 회의의 끝엔 항상 그날의 타겟에게 '내가 너 키워주려고 하는거야 알지? 나처럼 너 생각해주는 사람이 어딨냐?' 라는 말을 던지고 사라졌다.
내가 타겟이 된 날은 총성없는 전쟁터였다. 나름 자존감 킹으로 자부하던 나는 절대 억까를 당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센터장 : 00이 건은 어떻게 해야한다고 생각해?
나 : 현재 ㅂㅂ재단을 통해 도움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고, ㄴㄴㄴㄴ분과에도 케이스 공유하여 도움받을 수 있는 방안을 더 알아보고자 합니다.
센터장 : 누가 그런거 물었어? 내가 뭘 말하는지 몰라? 니가 뭘 어떻게 할거냐고
나 : 00이와 00이 부모님과의 연락은 매일하고 있으며, 가정방문은 공문을 통해 당분간 자제 요청이 왔기에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센터장 : 답답하네 진짜... 내가 무슨말하는지 모르겠어?
나 : ???
센터장 : 됐고! ㄷㄷ사업 계획안은 언제 올릴꺼야?!
나 : 지난주 목요일에 올려서 결재해주셨습니다.
센터장 : 내가? 언제? 가져와봐! (훑어보기) 누가 A방안으로 진행하래? 전면 수정하고 다시 올려
나 : 지난회의 때 A, B 중에서 A방안 진행 이야기 해주셔서...
센터장 : 내가 언제? B로 가! 넌 이래서 안돼, 니가 생각할땐 A가 될것 같아? 생각을 안하는거야?
(회의 끝) 다~니가 발전하길 원해서 그러는거 알지?
다음 주 회의
센터장 : ㄷㄷ사업 계획안 재단에서 보더니 너~무 좋데! 봐봐 내가 A로 가자 그랬지? 이사장님이 아이디어가 참신하다며 얼마나 칭찬해주시던지
나 : (A는 내 제안이었는데...?) 센터장님 B로 바꾸라고 하셔서 계획안 다시 써왔는데요
센터장 : 응~? 내가 언제~빨리 진행시켜 다음주 회의 때 다시 보고 해야해~ ㅁㅁ샘 ㅁㅁ사업 계획안은 어떻게 됐어?! 아직도 이 수준이야? 넌 왜 애가....
센터장의 이러한 방식은 너무도 당연하게 직원들의 퇴사를 불러왔다. 입사 7개월 차, 행정직원이 퇴사를 하겠다 말했을 때 퇴사하는 마지막 근무날까지 센터장은 해당 직원을 타겟으로 엄청나게 갈구기 시작했다. 마지막 근무날 치킨을 시켜준대놓고 치킨이 오기 직전까지 해당 직원을 갈구더니 치킨을 오자 못먹겠다는 직원에게 복도가 떠나가라 쌍욕을 하며 나갔다. 해당 직원은 마지막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행정직원이 떠나가고 새로운 직원이 왔지만 경력이 1개월도 없는 신입직원이 뽑혔다. 행정, 회계와 관련없는 내가 행정일을 가르칠 정도였으나 잘 이끌어가려 노력했고, 선임마저 재단일로 차출되기 시작하자 센터일은 내가 총괄하게 될 때가 많았다. 다시 말하지만 전체 직원이 센터장 빼고 3명이었다. 선임이 재단일로 나가면 나와 신입 행정직원 둘만 남았다.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다. 가르쳐가며, 이끌어가며 일했고 내가 맡은 바 사업을 일찍 마무리하고 선임의 일을 대신 처리해주고, 사업 한개를 통으로 가져와주기도 했다.(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즈음 타겟은 어느덧 나에게 돌아와있었다. 센터장은 신입 직원이 잘못해도 가르치지 못한 나를 탓했고, 선임이 일을 놓치면 커버치지 않고 뭘했냐며 나를 탓했다. 쉽게 꺾이지 않는 내가 타겟이 되자 다른 이들은 안전해졌다. 꽤나 오래 나홀로 타겟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이런 소통방식에 노출되다보니 자존감 킹이라고 자부하던 나의 정신건강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너는 일을 빠르게만 하고 꼼꼼하게 못하더라?'고 말하다가 '역시 이 일은 우리센터 에이스가 해야겠지~?부탁해~'라고 말하는 센터장에 꼼짝없이 휘둘리기 시작했다. 야근일수는 많아지고 어느덧 센터의 사업 중 절반 이상을 내가 담당하고 있었다.
'아니 그연차에 주임이라도 달아야지? 더 열심히 해야하지 않겠어?'
그 해에 나는 재단에서 성과를 보고 평가하는 '우수직원상'을 받았다. 하지만 심신이 지쳐가고 있었다.
그즈음 나의 남자친구, 친구, 가족들은 내가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그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잠을 못잤다.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센터장의 언어폭력은 나의 심장을 문제라도 생긴 듯 이상하게 뛰게 하였으며, 하루에 3시간도 못자는 불면증을 불러일으켰다. 3일간 잠을 한숨도 못자고 수면제 처방을 위해 방문한 정신과에서 나는 정신이 버뜩 드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의사 : 정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나 : 네?
의사 : 아니 본인이 거기 입사한지 1년도 안됬다고 했잖아요. 근데 센터장과 선임은 재단 일을 하는게 당연하고 당신과 신입이 센터를 알아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게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정말 당신이 빠르기만 하고 할줄 아는게 하나도 없다면 왜 당신에게 센터 일을 모두 맡기죠?
나 : ...
의사 : 왜 당신이 신입과 선임의 업무까지 관리하고 책임져야하나요? 그곳을 책임지는 사람이 당신인가요? 논리적으로 하나도 맞지 않는 말이고 이걸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당신에겐 있잖아요.
수면제를 먹고 깊은 잠에 빠졌다. 자고 일어나니 오랜만에 머리가 개운했다.
병가를 내고 정신과를 한번 더 찾아가 이런저런 검사를 했다. 의사선생님과 상담도 했다. 이상하리만큼 검사 결과가 좋았다. 잠깐 의심했던 공황장애도 아니었다. 스트레스가 매우 높게 나온 것 외에 스크레치 난 자존감도 평균 이상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상당히 건강한 편이라며, 지금 상황을 벗어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 일이 아닌 다른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상황을 다시 보라고 말해주었다. 자고 일어나니 의사 선생님의 말대로 너무나도 명확하게 현재 상황이 보였다.
정신차린 나는 다시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억까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를 본 센터장도 더욱더 열을 내기 시작했다. 내 인내심이 바닥에 닿은 날, 설 전 마지막 출근일이었던 그 날은 전날 2일을 밤을 꼴딱 세워 다같이 전년도 회계서류를 완성한 날이었다. (신입 행정직원이 이전 직원 퇴사 이후 회계서류 철을 하나도 해놓지 않았고, 우린 제출일을 미뤄가며 서류를 완성해 제출해냈어햐 했다. 이 일은 역시나 '야! 00! 넌 얘가 이럴때까지 뭘했어?!'로 내게 돌아왔다)
설 연휴 전날이니 5시에 퇴근하라던 센터장은 4시 50분쯤 연간 사업계획서에 들어간 자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말도 안되는(존재하지 않을) 통계자료를 찾아 수정하고 가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연간사업계획서의 해당 부분은 내가 작성한게 아니었고, 나는 당연히 나에게 한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던 선임이 '네, 알겠습니다' 답하자 센터장은 대뜸 내 쪽으로 서류를 던지며 '야!000!!!' 하고 소리를 쳤다.
???
대뜸 던져진 화살에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센터장은 내가 그 일을 해야하는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화를 내기 시작했다. 명절이 끝난 첫 출근일 10시까지 자료를 작성해 넘기란 말에 그제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네?'라고 반문했다. 센터장은 갑자기 선임빼고 모두 나가라고 소리쳤다. 나도 나와버렸다.
명절 후 첫 출근, 선임은 나와 다른 직원을 향해 자신이 너무 물러 직원들의 성장이 없다며 앞으로 단호하게 하겠다 선언했다. 나와는 대화도 하지 않았다. 납득이 가지 않는 전개였다. 그 업무는 분명 선임의 업무였는데...? 나는 드디어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것을 결심했다.
그 주간 나는 선임을 찾아가 바로 퇴사 하겠다 말했다. 마치 몸집을 부풀린 복어처럼 기합이 들어가있던 선임은 내 말에 모든 힘이 빠져버렸다. 사실은 선임만 남은 그 날, 센터장이 선임에게 '팀장 시켜줬으면 이정도는 해야지? 아랫 직원들이 너를 무시해 그러는거 아니냐, 아랫 직원 잡는 것도 능력이야'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몰랐었던 많은 일들을 듣게 되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직원들은 퇴사전까지 2번이고 3번이고 자신을 찾아와 퇴사하겠다며, 더이상 못견디겠단 말을 했단 것이다. 모두가 힘들어했으나 나는 한번도 그런일이 없어 괜찮은 줄 알았다고, 선임이 압박한건 선임의 뜻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내가 나가면 엉망이 될거라며 나를 잡고 또 잡았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나는 정신과 선생님과의 대화를 그대로 들려주었다.
'그게 정말 말이 되냐고 묻는데, 제3자가 봐도 그게 정말 말이 안되는거였더라고요.'
마침 딱 1년을 채운 시점이었다. 나는 그렇게 미련없이 자리를 떠났다. 내가 퇴사하는 날까지 센터장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피해다녔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내가 걸고 넘어지면 걸릴 게 많은 사람이었다. 당시 우리 재단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어떤 사건에서 본인도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임은 자주 울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미 선임에게도 남은 정이 없었다.
그제서야 생각해보니 나는 그곳에서 호봉에 맞지 않는 급여(1호봉)를 받고 있었으며, 센터장은 새해가 다가오자 자신에게 유리하게 급여체계를 개편하여 센터장을 제외한 모든 직원의 급여가 하향되었었다. 상급관리기관에서 문제를 제기하며 시정하라 하였지만 안하무인인 센터장이 말을 들을리가. (당시 지역마다 있던 같은 기관의 센터장 월급 중 우리 센터장이 탑이었다. 30대 중반에 10년 남짓한 경력, 근거없는 급여 인상이 계속되어왔다.)
게다가 우리센터에 사회복지사는 내가 유일하다는 것도 참 골치아픈 일이었다. 분명 복지기관인데 나빼고 전부가 유관 자격증만 가지고 입사했다.(센터장 포함) 그러니 나한테 의존할 수밖에 없었겠지...
그렇게 나의 5번째 퇴사일이 다가왔다. 내가 맡았던 아이들의 부모님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선생님 작은 것 하나하나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ㅍㅍ이가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고, 존경한다고 하네요.'
'선생님이 ㅎㅎ의 인생에 은인이에요. 평생 감사하며 살게요'
내 끔찍했던 5번째 회사생활의 유일한 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