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저 다음 달에 퇴사합니다!
2. 요즘애들은 끈기가 없다고요?!
3. 나의 1번째 퇴사기 : 열정페이인데 경력인정도 안된다고?
4. 나의 2번째 퇴사기 : 계약직이라 이건 안되는데 저건 해야 돼?
5. 나의 3번째 퇴사기 : 여기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가렴
6. 낯선 휴식, 치열하지 않아도 괜찮아
7. 나의 4번째 퇴사기 : 관행? 이 정도는 괜찮다는 건 뭔데
8. 나의 5번째 퇴사기 : 가스라이팅 당한 거라고?!
9. 나의 6번째 퇴사기 : 병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10. 나의 N번째 퇴사기 : 끝나지 않은 이야기
나의 4번째 입사기 : 내일부터 출근입니다!
낯선 휴식을 마치고 귀국한 지 7일째 나는 출근을 하고 있었다.
귀국 3일 차, 소속되어 있는 봉사단체에 복귀인사를 하고 상담을 진행하였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기에 일을 하며 대학원을 다니고 싶단 이야기를 했더니 보육원 일을 하며 대학원을 다니는 지인이 있다며 보육원을 진로로 추천해 주셨다. 보육원? 생활시설 쪽은 알아본 적이 없었지만 아이들을 만나는 곳이면 다 좋았던 나는 한번 고민해 보기로 했다.
귀국 4일 차, 취업사이트에서 보육원 공고를 보았다. 2교대 근무로 운영되는구나, 여기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하는 생각으로 당일에 이력서와 자소서를 써서 지원을 해보았다. 해외봉사를 다녀온 2년여 동안 쉬었기에 첫 지원에 바로 합격하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귀국 5일 차, 언니의 이사를 돕던 와중에 전화가 한통 왔다. 오늘 오후 면접이 가능하냐는 연락이었다.(아마도 이날은 토요일이었을 거다. 면접연락을 받으리란 생각조차하지 못했다.) 이사를 돕던 차림새에 다 해진 운동화 차림, 급하게 언니옷을 얻어 입고 신발은 포기한 채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누가 봐도 나를 좋게 보고 있는 듯한 면접관은 바로 원장님 면접까지 진행하자며 나가셨고, 원장님이 들어오셔서 간단한 대화를 나누곤 바로 채용이 됐다. 아마 사람이 급했었나 보다.
귀국 7일 차, 그렇게 나는 다시 출근하게 되었다.
슈퍼 이모 탄생기 : 이모 금방 갈게!
정신 차려보니 나는 아가방에 있었다. 36개월이 채 되지 않은 8명의 동갑내기 남자아이들이 나를 향해 '이모' '이모!' 하루종일 불러대니 가끔 내가 어디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혼미할 지경이었다.
시차 적응도 안되었고 음식과 물이 달라지니 장도 말썽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점은 너무나도 입에 잘 붙어있던 현지어가 떨어지지 않아 아이들에게 한국말과 외국말을 섞어 쓰고 있단 점이었다.
'귀띱뚜르~(기다려~)'
3~4살짜리 남자아이 8명을 키운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나는 뼈저리게 경험으로 배울 수 있었다. 사랑스러운 8명의 아이들을 만난 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목소리 작고 수줍은 소녀에서 목청 큰 든든한 슈퍼 이모로 거듭난 것이다.
사랑에 목이 마른 아이들은 빠르게 나를 양육자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마음 깊이 품을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도 나도 참 괴로웠다. 바로 하루 뒤 만나게 될 터였지만 매일 한바탕의 눈물파티가 벌어졌고, 나 역시 아이들을 놓고 가기 힘들어 가끔은 퇴근시간을 1~2시간 넘겨서까지 아이들과 놀아주곤 하였다.(나 뿐아니라 모든 선생님들이 출퇴근할 때마다 눈물파티가 벌어지곤 했다.) 출근하는 날이면 지하철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보육원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일 뛰어가다시피 하곤 했다.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내로남불 : 꽃으로도 안됩니다.
* 본 글에는 아동학대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활시설에서 훈육을 목적으로 한 체벌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으며, 체벌의 강도나 내용보다는 대상이 보호자가 없는 아동이라는 점에서 저자는 이를 심각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아가방(36개월 미만)은 2인 1조 2교대로 근무가 진행되었다. 선임 1명, 일반 1명이 짝을 이루어 근무하였고 파트너는 매달 바뀌었지만 같은 급수끼리 근무하지 않았기에 나는 나와 같은 일반 직급의 선생님과 교대 때만 마주칠 수 있었다.
그런데 배변훈련이 한창이던 여름 평소 존경하던 A선임으로부터 의미심장한 말을 듣게 되었다.
'아이들이 혹시 C선생님에 대해 이야기 안 해요?'
양육자가 4명이나 되던 아이들의 입에서 다른 양육자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흔한 일이나 A선임의 표정과 말투에서 심상치 않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A선임이 느끼기에 C선생님(일반)이 아이들을 거칠게 대하는 것 같으며 가끔 문을 닫고 훈육을 하는데 아이들이 C이모가 때렸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는 것이다.
아가방 팀장인 A선임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나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아이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환경에서 사실을 확인하고 B선임에게도 혹시 문제 되는 상황이 있는지 살펴봐달란 말을 몰래 전해달라셨다.
B선임과의 근무날, 상황을 공유하였고 아이들과 대화도 진행해 본 결과 어느 정도의 문제 상황들이 파악되었다. A선임은 이것을 상부에 보고하였다. 아동학대신고 처리까지 이루어지나 지켜보았으나 이 사건은 C선생님에 대한 경고 조치 정도로 마무리되었고 A선임은 이런 가벼운 처리는 아이들을 위한 게 아니라며 분을 내었다.
나 역시 그에 동의했었다. C선생님은 아이들 훈육에서 배제되었고 이후에는 전혀 그러한 문제가 없었다. 나는 A선임의 행동력, 결단력을 존경게 되었다. 아이들을 향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더 본받아야 하겠다 생각했었다.
좋은 어른, 따라가야 할 선배, 그렇게 생각했었다.
불과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모든 아이들이 배변훈련을 잘 마친 겨울 즈음, 막 36개월을 지난 남자아이들은 힘이 넘쳤고 인지능력은 힘만큼 자라나지 않았다. 여전히 말은 잘 안 통하는 아가들이었다. 8명이 함께 지내는 방에선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분명 지치는 시기였지만 지금껏 그래왔듯 시간이 아이들을 때에 맞게 성장시킬 것이었다.
하지만 A선임은 그 시기에 대한 인내심을 잃었던 것 같다.
훈육을 하러 들어갈 때 아이들을 향한 거친 태도, 쾅하고 닫히는 문과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무언가 잘못되어 감을 느끼게 하였다. 의사표현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 아이들은 자기 전 나에게 '이모 A이모가 맴매했어'라는 말을 하였다.
의심은 곧 확증으로 바뀌었다. A 선임은 특히 몇명의 아이들에 대해 인내심이 약했고, 훈육을 위해 아이들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면 어김없이 수상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아이들의 증언, 닫은 방에서 들리는 소리. 일단 모두 녹음했다. 그리고 B선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머리가 아파왔다. 불과 몇개월전 꽃으로도 때리면 안된다던 사람이 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관행이라고요? 이 정도는 괜찮다고요?
보육원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든다. 베이비박스에서 온 아이들이 이곳에선 그나마 가장 덜 아픈 아이들이다.(아이들의 아픔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부모의 양육능력 부족과 방임, 가정의 해체, 희귀병, 정말 말 그대로 버리고 간 아이까지 다양한 사연들이 있지만 그 아이들 중에 가장 아픈 아이들은 단연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날 8명의 아이들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내가 식기를 설거지하고 있던 때, 두 명의 아이가 A선임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고 A선임의 흥분한 목소리와 아이들의 울음 그리고 다른 소리들이 들려왔다. 설거지하던 내게 이 상황을 알린 것은 다름 아닌 4살 아이들이었다. 흥분한 A이모와 방으로 들어간 친구들의 모습에 겁이 난 아이들 나에게 달려왔다. 한 아이는 무서운지 울음을 터뜨렸다.
녹음기를 켜고 들려오는 소리를 짧게 녹취한 뒤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자 소리가 잦아졌고 몇 분 후 모두 방에서 나왔다. 목욕시간 나는 휴대폰을 들고 들어가 증거를 살피고 남겼다. 아동학대사건의 핵심은 증거라 증거 없이 무작정상황만 막을 수는 없었다. A선임은 이 시설에서 10여 년을 일한 팀장이었다.
*요즘은 심증만 있어도 아동학대 신고가 가능하나 당시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조사조차 진행되지 않는 일이 허다했다. 이 경우 불이익을 받는 것은 당연히도 신고자였다.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갔을 때 그 방에 들어갔던 아이 중 한 명이 발작적으로 울며 집에 가겠다 소리쳤다. 학대 경험이 있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처음 입소했을 때 입버릇처럼 '이거 이렇게 하면 나 때려요?'라는 말을 하곤 했었다. 나는 이곳에선 아무도 아이를 때리지 않는다 안심시켰었다. 아이는 내 말을 믿고 이곳에 적응해 왔었다.
마음이 무너지고 분노로 휩싸였다. 아이들은 친구의 아픔에 공감한 듯 하나둘씩 함께 울기시작했고 성토대회처럼 체벌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아이들을 모두 끌어안고 나도 울었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몰려왔다.
5명의 아이들을 끌어안고 재워주었다. 한바탕 눈물파티를 벌였던 아이들은 내 곁에서 누구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방을 나서는 순간까지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다. 이 건은 내가 A선임하고 담판 지어서 해결될 건이 아니었다. 날이 밝으면 당장 이 문제를 알리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1시간여 뒤 태연하게 다른 아이들을(방 2개에 나누어서 재웠다) 재우고 나와 나에게 별일 없었냐 묻는 A선임의 말에 내 이성은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경멸의 눈초리로 선임을 바라봤고, 선임은 내 눈빛을 문제 삼으며 먼저 화를 내기 시작했다.(A선임은 엄마뻘이었다.) 그 뒤로 어떤 말이 오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기억나는 건 '관행이야! 이 정도는 괜찮아!' 정도였다.
다음날 아침 교대하러 온 B선임에게 나는 전날의 일을 알리고 사진과 녹취파일을 공유했다. 그리고 교대 이후 총괄 팀장에게 독대를 신청하여 상황을 알렸다.
나의 4번째 퇴사기 : 한. 통. 속.
진지하게 내 얘길 듣던 총괄 팀장은 얘기해 주어 고맙다며, 이 이야기는 아직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내가 직접 A선임과 이 상황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후에 만난 A선임은 내가 오해를 했다며, 그런 일은 없었다 잡아떼다가, 내가 증거가 있다는 말에 화를 내다가, '그 정도 체벌은 가정에서도 한다' 합리화를 거쳐 갱년기 핑계까지 온갖 말들을 늘어놓으며 변명했다. 더 들을 가치도 없었으나 이후 총괄팀장은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C선생님 때에 있었던 경고조치조차 없었다.
B선임과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전문기관에 신고할 생각으로 그간 모은 미심쩍은 증거(아이들 몸에 남은 흔적들, 방문너머 들려오는 혼내는 소리와 우는 소리, 자기전 아이들의 증언, 마찰음 등)들을 함께 돌아보았지만 당시기준으로 신고가 처벌로 이루어지려면 확실한 증거(학대장면 촬영 등)가 필요하다는 말에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이 이루어졌다.
우리 방에서 A선임을 제외한 B선임, C선생님, 그리고 나 모두가 이동되었다. 분명 분리되어야 할 사람은 A선임이었으나 아이들 옆엔 A선임만 남았다.
게다가 B선임과 나는 각각 다른 방, 다른 시간대로 분리되었으며, 옮긴 방에서는 경력, 입사 순서 모든 조건 상 내가 선임으로 올라가야 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수습교육을 시켜준 7개월 차 신입이 선임(경력전무)이 되었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에 현타가 밀려왔다. 얼마 뒤 새로 옮긴 방에 있던 다른 또래 선임으로부터 이 인사이동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총괄팀장과 A선임은 10여 년간 이 시설에서 같이 근무하였으며, 원래도 절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시설에서 팀장 급 이상은 대부분 굉장히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들이기에 고발을 받아줄 리 없으며, 이번 인사이동은 보복성이 확실하단 이야기였다.
보복성 인사이동은 끝이 아니었다. 8명의 남자아가들 방에 새로 배치된 선생님들은 그 후로도 바뀌지 않았던 A선임의 거친 훈육방식에 대한 의문과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의 열쇠가 나임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되었고, 나에게 찾아왔다. 선생님들과 밖에서 만나 상황을 공유하였고, 내가 가지고 있는 증거들도 공유받기 원하여 전달해 주었다.
이후 거의 대부분의 아가방 선생님들이 상황에 대해 알게 될 무렵,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A선임이 직접 뽑아넣은 팀원들은 A선임의 훈육 방식에 단체로 문제를 제기하였고 보복성 인사이동은 곧바로 한번 더 진행됐다.
나는 아가방에서 아예 분리되어 다른 층 초등방을 맡게 되었다. A선임은 여전히 8명의 아이들과 함께였으며, 2인 1조였던 해당 방의 근무방식은 1인 방식으로 바뀌었다. 해당 방을 거쳤던 모든 선생님은 분노했고 이의가 제기되었으나 묵살되었다.
아이들을 보고 버티던 나도 계속되는 보복성 인사발령에 지쳤다. 게다가 10년 이상 근속한 선임들 사이에서 나는 엄마뻘 선임에게 대든 싸가지 없는 MZ세대가 되어있었다. 핵심인 체벌 문제는 쏙 빠진 채 나의 경멸하는 눈빛과 말투만이 문제가 되었다.
여러 선생님들이 증거를 모았었으나 결정적인 증거는 잡기 힘들었고 아동학대 신고를 위한 상담까지 진행하였으나 지지부진하였다. 더구나 이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도 없었다. 양육자가 자주 바뀌는 상황 속 아이들의 곁에는 A선임만이 남아있었기에 아이들은 더 이상 다른 이모들에게 맴매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정말 관행이고 괜찮은 게 맞았을까?
내가 힘이 없어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건 아닐까?
심신이 지쳐가던 나는 공부를 위해 원을 나왔다.
계속 이곳에 있는다면 나 역시 이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공부하고 힘을 키워야 내 말에도 힘이 실리지 않을까?
만신창이가 된 것만 같은, 죄책감에 차마 발을 떼기 어려웠던 나의 4번째 퇴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