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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Aug 18. 2023

6번째 사직서를 제출했다

6번째 사직서를 제출했다.


6번의 사직 역사상 처음으로 전자결재로 사직서를 올렸다.

그간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업무메신저가 네이트온에서 카카오톡으로 바뀌고, 서류결재가 전자결재로 바뀌었다.

10년이란 세월은 이렇듯 많은 것을 바꿔 놓았는데, 나라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변했을까?


언젠가 사직서를 들고 기관장실 앞에서 떨고 있었던 게 생각난다.

퇴사는 나의 결정이지만 꼭 사고를 쳐서 교장실에 불려 간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화를 내시진 않겠지?’

꼭 울 것만 같은 기분으로 방에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이번은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쉬웠다.

떨림없이 전하는 퇴사소식과 막힘없이 진행되는 절차들, 나도 많이 변하긴 했나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퇴사 경험이 쌓였다는 것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사직서를 올리기 전, 먼저 같은 팀 동료와 팀장님께 퇴사 소식을 알려야 했다.

월요일부터 팀장님과 만남을 고대했건만,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업무에다가 육아까지 모두 소화하느라 바쁜 우리 팀장님을 따로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사실 바쁘기는 나도 만만치 않았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해도 계속해서 밀려오는 일은 같은 건물 2층 사무실에 있는 팀장님을 만나러 올라갈 여유조차 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오는 전화에, 요청하는 서류에, 하루하루가 전쟁터였다.


'이 직장에서의 내 미래는... 그래 딱 팀장님의 모습이겠지.'


굳은 다짐을 하고 갔던 월요일에서 어느새 시간이 흘러 금요일이 돼버렸다.

틈만 나오면 이야기 나눌 기회를 만들려 했지만, 그 틈은 쉽게 나지 않았고, 갑작스레 팀장님의 아이가 아픈 바람에 수, 목은 팀장님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더 미룰 수는 없었다.

업무도 조정하고 새로운 사람도 채용하려면 한 달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빠듯했다.

무엇보다 내 공백을 채우기 위해 바빠질 팀장님과 동료를 생각하면 미리 말해 조정하는 게 꼭 필요했다.


금요일,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퇴사 소식을 먼저 알리기로 했다.

오전 회의가 1시 넘어서까지 진행되어 회의를 마치고 점심식사로 팀원과 독대할 시간이 생겼다.

마침 1시가 넘어 점심시간은 모두 끝난 상황이라 회사 근처에서 식사해도 우리 대화를 들을 사람이 없었다.

나의 퇴사를 우리 팀이 아닌 다른 동료들에게 먼저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꼭 이런 독대가 필요했다.

마침, 동료가 먼저 퇴사 계획과 그 이후의 계획에 대한 화두를 먼저 던져 주었다.

혹시 어떤 눈치를 챈 건가 싶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나는 나의 퇴사가 곧 다가올 것임을 멋쩍게 웃으며 알렸다.


“저는 조만간 하차할 것 같아요”


가볍게 내뱉어진 나의 말에 동료는 큰 충격을 받았다.

팀장 1명, 팀원 2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팀에서 나의 퇴사는 남은 이들에게 큰 짐이 될 것이 자명했다.

동료는 다른 팀에서 근무하다가 1년 전 이동해 왔기 때문에 처음 우리 팀에 왔을 때부터 나를 많이 의지해 왔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의 퇴사 이유를 듣곤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일 거라며 나의 결정을 인정해 주었다.


그다음 주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팀장님께 독대를 요청하였다. 

동일한 소식을 팀장님께도 전했다.

2년여 짧은 시간이지만 처음부터 함께 해쳐온 일들이 많기에 충격이 더 커 보였다.

하지만 나의 퇴사사유는 이미 팀장님도 어느정도 알고 있던 내용이었기에 차마 잡진 못하셨다.

대신 앞으로의 일들이 막막한 듯 가기 전에 가능한 많은 일들을 처리해 주고 갈 것을 부탁하셨다.


이후 절차는 결재라인을 타고 부드럽게 이어졌다.

팀장님과의 면담 이후 바로 중간관리자, 기관장 면담까지 이루어졌다.

윗선에선 많은 말과 제안으로 설득하고 회유하려는 시도가 이어졌지만 몇 달을 고민하고 내뱉은 퇴사가 회유하는 말과 미래를 약속하는 제안으로 돌이켜지진 않았다.

근무여건의 개선, 승진제도 도입, 보조인력의 충원, 업무조정…….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일들이었다.

퇴사를 내뱉을 때 나는 이미 이곳에서의 미래를 지웠기 때문이다.


결재란에 박힌 담당, 기관장 두 칸의 결재방이 나의 퇴사까지 남은 유일한 스탭이다.

지금까지 회사생활도 이렇게 쉽게 풀리는 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나를 힘들게 했던 그 모든 문제들은 퇴사 직전, 나를 설득하기 위해서만 해결을 약속받을 수 있었을까?

과연 내가 이곳에 남아있는다면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정말 일어날 것인가?

하지만 결재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런 생각들은 사라졌다.


'하……. 오늘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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