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3번째 퇴사기 : 여기보다 좋은 곳으로 가렴

5. 여기보다 좋은 곳으로 가렴

by 하루

목차

1. 저 다음 달에 퇴사합니다!

2. 요즘애들은 끈기가 없다고요?!

3. 나의 1번째 퇴사기 : 열정페이인데 경력인정도 안된다고?

4. 나의 2번째 퇴사기 : 계약직이라 이건 안되는데 저건 해야 돼?

5. 나의 3번째 퇴사기 : 여기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가렴

6. 낯선 휴식, 치열하지 않아도 괜찮아

7. 나의 4번째 퇴사기 : 관행? 이 정도는 괜찮다는 건 뭔데

8. 나의 5번째 퇴사기 : 가스라이팅 당한 거라고?!

9. 나의 6번째 퇴사기 : 병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10. 나의 N번째 퇴사기 : 끝나지 않은 이야기


나의 3번째 입사기 : 떠나기 위한 준비


나의 3번째 입사는 사실 떠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2번째 퇴사 후 나는 준비하던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사이버대학으로 공부하던 것도 마쳤다. 자격증 개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늘어났지만 정작 그즈음의 나는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취업을 빨리한 편인 나는 아직 대학생인 친구들이 휴학을 하고 해외로 봉사하기 위해 떠나는 모습을 마냥 동경했던 것 같다. 나도 아직 학생이었다면 경제적인 면에서 더 자유로웠다면 떠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선 왠지 지금이 아니면 떠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정규직으로 입사하고 20대 중반을 거쳐 후반을 향해 달려가면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날 수 있을까?'

'포기할 게 없는 지금이 떠나기 위한 적기 아닐까?'


그렇게 떠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떠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했던 것이 바로 직장이었다. 떠나기 위해선 어학도, 훈련도 필요했고 그 모든 것에는 애석하게도 돈이 필요했다. 떠나는 것 자체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해외봉사에는 항공료, 숙박비, 생활비가 필요했다. 당장 벌어야 했다. 그것도 이전보다 많이.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사회복지 관련 상담을 하는 콜센터 공고를 보게 되었다. 근무시간도 장소(종로에 위치)도 훈련을 받고 언어 공부를 하기에 적당해 보였다.


실업급여가 끝나기 직전 입사지원을 했고 바로 합격을 했다. 취업난이 심했던 때여서 인지 20대 또래 동기들도 꽤 있었다. 교육을 받고 업무에 투입될 쯤엔 한 명 밖에 안 남았지만...


성과로 인정받는 시스템 : 수당을 준다고?!


처음으로 해본 콜센터 업무이지만 전공 관련 법과 정책을 설명해 주는 일이라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일하게 되었다. 입사해 보니 동갑내기 친구도 있어 직장생활이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9시 업무개시 6시 칼퇴가 철저하게 지켜지니 이보다 편할 수 없었다.


기본급은 이전직장과 다르지 않았지만 여기엔 특별히 다양한 수당이 존재했다.

처음엔 거기까진 욕심이 없었다. 그냥 공부하고 훈련받으며 즐겁게 다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대상과 범위가 확실한 콜센터라 콜센터 치고 진상이 없기도 했다. 그렇게 첫 달 수습이 끝나고 실적발표가 났다.

내가... 2번째라고...?!


입사 첫 달, 더듬더듬 일을 배워나가던 중이라 생각했는데... 요령 피우지 않고 열심히 했더니 사고를 제대로 쳤다. 첫 월급을 받아보니 수당이 50만원 이상 나왔다. 당시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생각보다 짭짤한 대가였다. 수당과 더불어 한 줄로 전달되는 그달의 성적표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 뒤 회사생활은 보다 치열해졌다. 무조건 상위권에 랭크되기 위해, 가장 높은 수준의 수당을 받기 위해 나는 매뉴얼을 달달 외우기 시작했고 웬만한 문의는 책을 펼칠 필요 없이 바로 안내가 가능했다. 한 콜을 끝내면 쉬지 않고 바로 콜을 받았고 매일 출근하면 화장실을 가는 척 움직여 벽에 붙어있는 전날의 실적표부터 들여다보곤 했다. TOP 3안에 들지 않은 날이면 물마실틈도 없이 전화만 받았다.


성과가 바로 수입과 연결되다니... 내가 속해있는 업계의 특성 상 그 후로 지금까지 다시는 그런 직장을 만나지 못했다. 성과로 인정받는 시스템... 나한텐 참 잘 맞았던 것 같다.


나의 3번째 퇴사기 : 여기보다 좋은 곳으로 가렴


승승장구하던 업무성과, 좋았던 동료관계, 술을 마시지 않는 회식문화 모든 게 참 좋았지만 윗선에서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ㅇㅇ아 여기는 네가 오래 있을 곳이 아니야.'

'이직 준비하고는 있지? 더 좋은 데로 가야지'

'우리야 ㅇㅇ가 여기 있으면 좋지만 ㅇㅇ한테는 손해야'


입사 첫 달부터 퇴사할 때까지 매달 진행되던 면담에서 팀장, 부장, 센터장 모두가 돌아가며 나의 퇴사를 종용(?)했다. 오래 있을 생각이 아니었지만 왠지 퇴사계획을 밝히긴 어려웠기에 웃으며 얼버무렸더니 윗선에선 계속해서 나를 근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있으면 안 될 곳에 있는 건가(?)'


20대 초반의 나는 그 시선들이 이해될 듯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데 왜 저분들이 안타까워하지? 내 인생인데...


어쩌면 아니 확실히 나쁘게 말하면 그분들의 걱정은 오지랖일 수도 있다. 내 인생이기에 내가 선택한다는 20대 초반 나의 마인드도 틀린 건 없다. 하지만 30대 초반인 지금의 나는 그때 그분들의 시선과 말이 진심으로 나를 위한 것들이었단 걸 안다. 스스로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실적에 목메는 어린 청년에게 더 큰 세상이 있단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그 마음들이 이제와서는 마음에 와닿는다.


결과적으로 나는 딱 내가 계산했던 시기에 계약만료와 함께 퇴사했다. 그리고 마지막 면담에서 나의 퇴사와 이후 계획을 알렸을 때 우리 팀장님은 잘 생각했다며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너는 뭐든 잘 해낼 거야.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거야'


비록 나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경력은 아니었지만

나의 사회생활 중 가장 따뜻한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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