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 5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시작하는 노래를 자꾸 흥얼거린다.
끝까지 들어본 적도 없는 낯선 옛날 노래이지만,
어딘지 정이 가는 멜로디 때문에 제목도 모르는 노래를 운전 중에 불러보았다
고향이 그리워서 인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절절한 멜로디와 가슴 아픈 노래가사가 내 마음에 와닿은 것은 며칠 한국에서 오신 부모님과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보는 부모님 얼굴은 많이 달라서 있었고 그중에서도 아빠도 금세 팍 늙어버리신 듯했다.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자꾸만 어리광을 부리시는 모습
한없이 나오는 입언저리
어딘지 불만에 가득 쌓인듯한 얼굴 표정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절망에 빠진 모습처럼 보였다
마음이 아팠고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우리 아빠는 몸이 아픈 게 아니고 지금 마음이 많이 아프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가면서
어쩌면 노인이 되면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렇지만 삶의 지속해야 하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한 공포
그동안 준비하지 못한 노년의 삶에 대한 후회들로
무거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없는 절망의 늪으로 빠지는 것이 아닐지라며
짐작해 본다
아빠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게 두려웠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알게 될까 봐
아빠를 그 절망에서 구해주지 못할까 봐서
그래서 난 아빠의 덥수룩한 머리를 잘라 드리기로 했다
아주 왕초보 미용사인 내가
이발기를 준비하고 투명 가운은 옷장에서 꺼내와 아빠의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했다
우선 나는 멋쟁이 '추성훈' 사진을 보여드렸다
"아빠 추성훈처럼 잘라줄께"
"그 사람이 누군데?"
나는 대답했다
"요즘 정말 핫한 남자 유명인이야. 특히 머리 스타일이 정말 멋있어"
아빠는 "그래? 그럼 한번 해봐."
그러고는 눈을 꼭 감으셨다.
"아빠 자꾸 말하면 머리카락 입으로 들어가"
아무 말 없이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고
'윙'소리를 내며 기계로 옆머리, 뒤머리카락을 손질했다. 정말 어려웠다.
남들 머리 깎는 것을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해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인데 역시 실제로 해보는 것은 어렵다
아빠에게 "옆에는 그냥저냥 잘랐는데 뒷머리는 미용사가 필요하겠어."라고 말했지만 괜찮다고 하셨다.
깔끔하게 뒷머리도 정리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도구가 없어서 조금 기른 듯이 자르면서 마무리를 했다
여기는 미용실이 아니니까 아빠에게 머리는 스스로 감고 나오시라고 하고는
베란다에 사방에 흩어져있는 머리카락을 빗자루로 쓸었다.
이렇게 짧은 머리를 잘랐는데도 머리카락은 상당히 많은 양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머리를 감고 나온 아빠에게 스타일링을 위한 왁스를 발라드렸다
물론 추성훈 비스므레하게 나왔다고
나 스스로 자화자찬하면서 이발소 놀이는 끝이 났다
"아빠 이제 추성훈처럼 못짱 아저씨 되면 되겠네. 그럼 멋있다고 다들 난리도 아닐 거야"
아빠는 정말 신이 난 듯이 보였고
표정도 그전보다 훨씬 밝아져 계셨다
'아빠도 꾸미고 싶었구나'
'아빠도 멋있고 보이고 싶고'
'누군가 관심을 갖고 신경써주기를 바랐던 거였어'
사람은 누구나 머리 스타일이 중요하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조금만 이상해도 보이는 부분은 차이가 많이 난다.
모두가 내 모습이 멋지고 이쁠 때 더욱 자신감이 생길 테니까
놀이 삼아 아빠의 머리카락을 잘라 드리긴 했지만,
그보다도 아빠에게 조금의 자신감을 안겨 드린 거 같아서 기뻤다
우리 아빠도 멋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어서 더욱더 기뻤다
격려와 사랑 속에서 우리 모두는 자란다
우울했던 아빠의 표정이 많이 밝아지셨다
그것을 지켜보는 엄마도 행복해하셨다
나는 오늘 사소한 일을 하나 저질러서
부족한 리즈 이발소에서 모두가 행복해졌다
우리 아빠를 다음번 만날 때에는 '추성훈'같은 몸짱 아저씨가 되어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