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_ 길바람 올림]
가끔씩 친구들을 만나면 아팠던 시절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다가 끝날 때 늘 이렇게 물어본다. 지금은 괜찮은 거지? 적어도 이런 글을 쓸 만큼은 괜찮아진 것 같다. 나는 이런 글을 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유를 두 가지만 들면, 첫째, 괜히 글쓰는 사람이 조울병과 정신 병원 이야기로 읽는 사람 우울하게 만들면 안 될 것 같았다. 나야 속에 담고 있는 이야기 해서 좋다지만, 읽는 사람들은 무슨 죄일까. 소음 공해 대신 활자 공해를 일으킬 글은 쓰고 않았다. 가능하다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 사람들 기분 좋게 만드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죽어도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셰어 하우스의 작은 내 방에서 캄캄한 벽을 보며 누워 있는데 그 아이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한쪽 볼에 이빨이 하나도 없던 단발머리 여자애. 경기도. 어느 정신 병원에서 만났던 그 여자애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 병원 이름도 잊어버렸다. 그 아이를 잊어버릴 수 있는 건 나의 특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특권을 사용했던 것 같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병원 바깥 생활이 너무도 편안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여자애와 병원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을 모조리 잊어버렸는지 모른다. 그때, 이 글이 세상에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와 나이가 같던 그 아이에게는 자유가 없던 정신병원을 떠날 권리도, 그 공간을 잊어버릴 자유도 주어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둘째, 내가 사랑하는 나의 평범한 모습들이 조울병 환자라는 프레임에 가려질 것 같았다. 나는 2019년 여름에 부산 해운대 병원에서 조울병을 진단받았을 뿐, 그전까지는 명문대학 재학생이었고 창원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그 이후로는 프리랜서 영어 강사였고, 토익 토플 수험생이었으며 유튜브 영상으로 '성공한 건강 전도사'가 되겠다고 당차게 선언하던 이십 대였다. 그 이십 대가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외에 별다른 특이 사항을 적어 보자면, 나는 엄마에게서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아 다이어트를 전혀 안 하고 비비 크림만 발라도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다. 또한 꿈과 목표를 쫓으면서, 인생의 반려를 찾는 일도 진심으로 했기 때문에 치열한 데이트 경쟁에서 누구보다 인간적으로 살았다고 자신할 수 있겠다. 나는 내가 조울병이란 사실만 빼면 어디 내놓아도 괜찮을 사람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살았고,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음은 물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조울병이라는 내 인생 핵심 단어를 빼고 살다 보니 글쓰기가 점점 어렵고 불편해졌다. 글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많은 선생님들이 동어 단어 반복을 하면 가독성이 떨어지고 지루해질 수 있다고 하는 반면, 핵심 단어의 경우 비교적 많이 써주는 것이 옳았다. 나는 조울병이 인생에 미친 영향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단어를 생략하니까. 글의 명확성이 떨어져서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책이 좋아서 책을 사서 읽다가 독서 모임까지 가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내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글을 쓰며 사는 작가들을 질투하게 되었다. 만약 이런 질투 때문에 불행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좋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쓰지도 않은 내 책이 그리워졌고 결국 불행을 피하기 위해 컴퓨터 화면의 하얀 공간을 바라보려고 돌아왔다.
지금까지 이 글을 왜 쓰게 되었는지 두 가지 이유를 들었는데, 한 가지 이유만 더 들어보고자 한다. 그것은 내가 조울병에 관하여 개인적이면서 특별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고 지금도 바꾸고 있다. 내 가치관과 생활습관, 하루 공부 시간,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좋아하는 일, 풀타임이냐 프리랜서냐 하는 직장의 형태까지 이 병의 영향을 받았다. 심지어 나는 가끔 내 조울병이 완치되면 조울증이란 성격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성격은 DNA에 새겨져 있고 봄이 되면 기분이 뜨고 겨울이 되면 가라앉는 이 순환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조울병은 한 번 진단받으면, 어떠한 노력을 해도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병일까? 나는 이 질문이 나만의 질문이 아니기 때문에 물음표로 남겨두려고 한다. 많은 환자들을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 절실함을 아는 의사들 또한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온종일 공부를 하고 있다. 내게는 대답할 자격이 없다. 하지만 나는 죽는 날까지 조울병을 관리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살기로 했다. 내가 이 믿음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사실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날 죽이려 했던 병을 사랑하는 일은 너무 간 것 같다. 내가 만약 ‘전 조울병을 사랑해요.’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병을 사랑할 순 없지만 함께 살아가야 함을 받아들여보자고 다짐했다. 만약 받아들이지 않으면 볼 때마다 화를 내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니, 조울병이 처음에 제안한 미래 건강과 기대 수명보다 못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 테니까. 병이 밉게 보여도 화내지 말자고. 스트레스받지 말자고.
주변을 돌아보면 세상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질병과 환자로 가득하고 성모 마리아와 히어로가 그들을 돌보고 지켜주는 전쟁이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병원균이 호흡으로 감염되어 다수의 인구가 피해를 보았던 어려운 시기를 이제 막 넘겼다. 그리고 넷플릭스에는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 스테디셀러로 스트리밍 되고 있다. 그 영화는 나와 비슷한 이십 대 중반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아 끝내 목소리까지 잃었던, 그러나 우주의 비밀을 풀어가며 작가로서 영감을 주며 살아간 스티븐 호킹 박사와 그와 대학 시절에 만나 결혼하여 결혼 생활의 모든 것을 다 해낸(간병과 동시에 세 아이를 키우며 어학 강사로 돈을 벌었다) 아내 제인 호킹의 이야기였다. 배우 에드 메드레인은 루게릭 병으로 운동 신경이 마비된 사람의 근육과 걸음걸이 그리고 뒤틀린 손가락을 세세하게 모방해 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그 영화를 보고 나면, 세상이 이런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슬프고 화가 나기보다는 살아 갈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부분을 요약하자면, 나는 여러분들에게 조울병에 관한 글을 쓰는 일을 나에게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다르게 말하면,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갈 곳이 없게 된 2019년 여름, 누구나 힘든 시기라고 여기는 바로 그 시기에, “난 평범한 사람들과 달라 사실 나는 새였어. 날아서 빠져나가보자”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정말로 날려고 시도하다가, 호르몬과 관련한 뇌 시스템을 다쳤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나는 새야. 날 수 있어.”라는 인간이 해선 안 되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사람이다. 이런 모자란 나지만 조울병에 관한 글을 쓰는 일을 나에게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그냥, 진심으로 글이 쓰고 싶다. 세상의 어떤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가 춤을 추고 싶어 하는 것과 비슷한 충동이다. 그냥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