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어라운드 2. 벤처 아닌 벤처, 기회를 보답으로 1

1부. 인연, 어둠 속 희망

by Coo Lee

얼마 전,

그는 유난히 마음이 시린

부고 하나를 접했다.


그가 길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닫혀가던 지옥문의 빗장을 열어

그를 다시 끌어내 주었던 사람.


기회라는 이름의 손을 내밀어 주었던

독일의 한 글로벌 기업 회장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이었다.


그분은

때로는 큰누나 같았고,

때로는 어머니 같은 분이었다.


늘 온화하고 인자했지만,

사업 앞에서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정확한 지도자였다.


회사를 글로벌 무대 한가운데로 이끌어

꽃을 피워낸, 진정한 리더였다.


그와의 인연은 벌써 15년 전,

2011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 그는 여러 차례의 벤처 실패 끝에

몸과 마음이 모두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민사 소송과 형사 소송에 휘말린 채

갈 곳을 잃고 번민 속에 묶여 있었고,

시간은 의미 없이

구름처럼 흘러가기만 했다.


3년 남짓 벤처에 쏟아부은 시간은

도전의 기록이 아니라

방황의 흔적으로만 보였다.

모든 것을 털어 넣고도 모자라

빚까지 진 상황에서

함께하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앞도 뒤도 막힌 상태.

낮과 밤의 구분조차 무의미한,

칠흑 같은 세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문득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은 소위 말하는

‘맨땅에 헤딩하는 벤처’보다는

이미 기반은 있으나

어려움에 빠져 있거나

성장이 멈춰 선 사업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데

더 잘 맞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과 조직을 읽고,

고객과 사업의 방향에 맞게 재배치하며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능력을 살릴 수 있는

기업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조용히,

수많은 곳에 이력서를 보냈다.


탈락과 실패가 반복되었지만,

희망만큼은 놓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그 회장님을

말레이시아에서 만날

기회가 찾아왔다.


독일에 본사를 둔 한 글로벌 의료기기 기업이

수년째 지지부진하던 한국 사업을

새로운 전략과 운영으로

전환시키고자 하고 있었다.


한국에 지사는 없었고,

형식상 소속은 싱가포르.

사무실 대신 집에서 근무하며

한국 시장을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시작됐다.


그는 거의 8개월에 걸쳐

시장 조사와 전략 수립에 매달렸다.


사업 구조는 겉으로는 단순했지만,

제품과 기술은 들여다볼수록 복잡했다.

독점 총판 대리점 하나와

10여 개 하부 대리점이 영역을 나눠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품종 소량 생산의 수많은 제품은

다양한 외과의 전문의가 아니면 사용 용도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대리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나눴다.

소위 핵심 고객,

KOL(Key Opinion Leader)이라 불리는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제품과 기술, 회사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반드시 개선해야 할 지점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제품과 기술의 범위가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깊다는 것.

그래서 그 사업은

충분히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문제는 명확했다.

사업이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총판 대리점의 사장은

이 사업에 진정한 관심과 의지가 없었다.

둘째, 개선되거나 혁신적으로 개발된 신제품들이

시장에 제때, 빠르게 들어오지 못했다.

셋째, 다품종 소량 생산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에 비해

광범위한 시장을 커버할 전문 조직은

지나치게 얇고 협소했다.


그의 사업 계획은

이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하나씩 제시하며,

그 결과가 어떤 변화로 이어질지를

구체적으로 담아냈다.


이 보고서는

싱가포르와 독일 본사에

정기적으로 전달되었고,

그는 피드백을 받아

계획을 다듬어 나갔다.


6개월이 넘는 조사와 기획 끝에

그가 내린 최종 결론은 하나였다.


한국 지사 설립.


이는 단기적으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제를 해결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세 번째 문제까지 해결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주인 의식 없이

현실에 안주하는 사업은

결국 표류할 수밖에 없다.

총판 대리점에 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한국 지사를 세워

정체성과 책임을 분명히 해야 했다.


단기 소요 자금,

인력 충원 계획 등

보완해야 할 사항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추가 보고를 마쳤다.


그리고 그해 크리스마스,

그에게는 유난히 특별한 날이 되었다.


마침내 본사로부터

한국 지사 설립에 대한

공식 허가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의 두 번째 턴어라운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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