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협상, 이기지 않고 이기는 법
그가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산은,
눈에 보이지 않는 총판 대리점과의 협상이었다.
총판 대리점은 독일 본사의 주요 판매 제품에 대한
수입품목허가를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
한국 지사의 정체성을 세우고
사업을 지사 중심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수입품목허가를 지사가 직접 소유하고
관리하는 구조가 필수였다.
즉, 그 인허가를 총판 대리점에서
지사로 이전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총판 대리점이
그 권한을 아무 대가 없이 내려놓을 리 없었다.
반면 독일 본사의 입장은 단호했다.
보상은 없다는,
이미 정해진, 흔들릴 수 없는 기준이었다.
수십 년간 총판 대리점으로서
이미 충분한 수익을 거두었고,
최근 수년 간은 정체된 사업을 개선하겠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신속한 해결책이 필요했지만,
문제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와 이해의 문제였다.
그는 판단했다.
부드럽고 허심탄회한 대화만이
이 산을 넘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그가 생각한 협상의 핵심은
상대를 이기는 데 있지 않았다.
먼저 서로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일방적인 양보가 아니라,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서였다.
길어 보였지만,
오히려 가장 짧은 길이었다.
그래서 그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당기기 위해
가능한 모든 식사 자리와 고객 행사,
정기 미팅에 빠짐없이 참여했다.
총판 대리점 사장뿐 아니라
거의 모든 임직원들과 자주 얼굴을 맞대며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 갔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거리는 좁혀졌다.
대화를 거듭할수록 상황은 점점 선명해졌다.
사장의 의도와 예상되는 움직임,
그리고 그의 결정을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총판 대리점은
모든 제품에서 이익을 내고 있지 않았다.
일부 제품군과 특정 영업 영역에서만
수익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는 그 영역에 대한 영업권을
일정 기간 보장하겠다고 제안했다.
대신 모든 수입품목허가는
보상 없이 지사로 이전할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그동안 총판 대리점이 감당해 온
비용과 시간의 부담을
지사가 선제적으로 떠안았다.
중장기적으로는
더 넓은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고,
매출과 수익을 함께 키우고 나눌 수 있는 구조가
가능하다는 점을
Win-Win 포인트로 설득했다.
이 논리적 설득은 사장보다
그의 오른팔과 왼팔에게 집중됐다.
사장은 주관에 빠지기 쉽지만,
참모들은 현실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협상에는
명확한 기한이 있었다.
5월까지 모든 인허가 양수도를 완료하려면
늦어도 4월까지는 협상을 마치고
신규 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지사의 제안이 합리적이라는 점,
기한을 넘기면 그 제안은 의미를 잃고
총판 대리점은 1년 내 계약이
강제 종료될 수밖에 없다는 점,
결국 서로에게 Lose-Lose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긴장의 줄다리기,
석 달에 걸친 논의 끝에
지사 제안이 현실적으로 최선이라는 점을
참모들이 확신하게 되었고,
그들은 사장을 설득할 수 있었다.
갈등을 키우거나
누군가를 몰아붙이는 방식은 없었다.
서로의 현실을 충분히 설명했고,
이해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쌓여 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총판 대리점과 새로운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 사이, 인허가 전문가는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필수 자격 획득을 완료했다.
두 사람은 현장과 실무의
안과 밖에서 각자의 싸움을 치르며
한국 법인이 존재하기 위한
최초의 필수 조건을
헌신, 팀워크, 전문성,
그리고 끝까지 이어진 대화로
완성해 냈다.
그렇게,
법인의 생존을 가르는 첫 번째 산을
혼자가 아닌 방식으로,
끝내 함께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