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기업 인수
어느 날,
동기 중 한 명에게서 연락이 왔다.
국내 재벌 그룹 일가.
이미 상당한 자산을 물려받아,
실패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인물이었다.
그 동기는 당시
국내 대표적인 학원 사업을 운영하던 상장 기업을
사모펀드를 통해 인수하는 과정에 있었고,
그에게 함께하자는 제안이었다.
이미 외부 대주주들과의 합의는 끝났고,
경영 주체인 대표이사와도
큰 틀의 협의를 마쳤다고 했다.
남은 것은
회계·재무 실사와 최종 가격 협상.
두세 달간
실사와 협상 과정에 함께 참여하여 내용을 검토하고,
인수가 마무리되면
경영을 함께 하자는 부탁이었다.
그는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실사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다.
대표이사가
횡령한 것으로 보이는 금액이
생각보다 컸다.
장부상 숫자와
실질적인 기업 자산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었다.
그 차이는
회계상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를 대하는 경영자의 태도 문제에 가까웠다.
결론은 분명했다.
기업의 실제 가치는
당초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고,
인수 가격은
현실에 맞게 다시 논의되어야 했다.
그러나
대표이사는
횡령을 인정하지 않았다.
초기 논의된 인수 가격을
조정할 생각도 없었다.
몇 주가 지나도록
서로 물러설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실질적인 자금원이자
인수 주체인 동기에게,
실사 전 과정을 함께 지켜본 그는
신중하게 제안했다.
이 회사를 정말 함께 키워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비전에 동의한다면,
프리미엄이라 생각하고
초기 가격으로 인수하자.
그렇지 않다면,
협상을 접고
이미 매수한 주식을
조용히 정리하는 것이 낫겠다고.
그러나
그보다 몇 살 아래인 동기는
결국 자신의 판단과 책임을
사모펀드 대표의 결정에 맡기고 말았다.
사모펀드와 대표이사 간 갈등이 깊어지는 사이,
대표이사 횡령 의혹이
조용히 시장에 퍼지기 시작했다.
주가는
서서히 미끄러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30% 이상 하락했다.
그는
다시 한번 동기에게 말했다.
대표이사는 전혀 물러설 기미가 없고,
주가는 더 떨어질 수 있다.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정리하는 것이 낫다고.
그러나
이번에도 동기의 선택은 다르지 않았다.
수백억 원에 이르는 투자금의 절반 가까이를
손실로 인정하기에는
그 결단이 너무 컸다.
며칠 뒤,
경영권 분쟁과 횡령 의혹이
매스미디어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주가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다.
되돌릴 수 있는 선택지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결국
동기는 뒤늦게 인수를 포기했고,
투자금 대부분을 잃었다.
잘못된 판단을 이끈 사모펀드와는
책임을 두고 다투다 결별했다.
대표이사의 부정은 점차 실체가 드러났고,
그 회사의 주가는 90% 이상 떨어진 뒤
거래 정지와 상장 폐지 수순에 들어갔다.
그는 그날 이후 확신하게 되었다.
일이 무너지는 순간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판단과 책임을 남에게 넘기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이었다.
돈은 다시 벌 수 있다.
그러나 판단을 잃는 순간,
그 자리는 반드시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