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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모리정 Aug 24. 2022

뉴질랜드 소도시에서 카페 잡 구하는 건 쉽지 않아~

플랫화이트가 뭐죠..? 카페인 쓰레기, 카페 잡 구하기

내가 있는 곳은 넬슨.

인구가 6만 명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도시이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

버거킹, 맥도날드, 피자헛, 도미노피자, 도서관, 정확한 개수는 모르지만 대략 70여 개가 넘는

식당과 카페들.

작지만 영화관, 스타벅스, 큰 마트 4개, 호텔, 그리고 차로 15~20분 거리에 비치까지.


중요한 건 이 중에서 나를 채용할 곳이 있느냐는 것이다.

보통 잡 구하는 방법은 직접 이력서를 돌리거나 인터넷에 올라온 구인공고에 온라인으로 지원하는 방법이다.

대도시의 경우 온라인에 올라온 잡이 많아 굳이 직접 이력서를 돌리러 가지 않아도

되지만 소도시인 넬슨의 경우는 다르다.

구인공고가 올라온 인터넷 사이트는 있지만 그 수가 많이 적고

또 내가 원하는 직종의 채용 공고가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직접 발품을 팔기로 했다.


일단 이력서 50장 프린터부터 시작했다.

이 50장 안에서는 일을 구할 수 있겠지..?


내가 원하는 곳은 카페 바리스타 잡 구하기!

일단 시티 중심 쪽에 있는 눈에 보이는 카페란 카페는 다 돌아다녔다.

내가 준비한 영어는

“ Are you hiring now? ”

“ This is my CV. Thank you. ”


기본적으로 이 두 문장만 쓰면 되고

받는 매장마다 ‘너 지금 학생이니?’, ‘언제부터 일 할 수 있니?’, ‘지금 트라이얼 가능하니?’

등등의 질문들이 뒤 따라오는 경우도 있다.


트라이얼이란 사장마다 정해놓은 기준이 다르지만

짧게는 1시간, 길게는 하루 정도 일을 시켜보고 이 사람이 업무를 어떻게 수행하는지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대충 파악하고 이 사람을 고용할지 말지 정하는 개념이다.

혹은 그냥 들어와서 커피 하나 뽑아보라고 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1시간을 시켜도 페이를 챙겨주거나

매장에서 파는 샌드위치나 빵 혹은 커피를 챙겨주는 곳도 있고,

하루를 일해도 페이도 없고 meal도 챙겨주지 않는 곳도 있다.


처음에는 ‘엥..? 일을 시켰는데 돈도 안 주고 심지어 밥도 안 준다고?

이게 무슨 불합리한 상황인 거지? 한국이었으면 신고 각인데..’ 이런 생각이었는데


이력서를 수차례 돌린 결과..

트라이얼이라도 시켜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고,

밥 안 줘도 되니까 내가 일을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저 매장에 들어가서 직접 이력서를 주며 “너네 사람 구하니?”

를 물어보지? 너무 떨리는데.. 하면서 가게 앞에서 10여분을 발을 동동 구르다

겨우 들어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이력서를 전달해 주었는데

몇 차례 돌려보니, 사실 이 사람들은 사람을 뽑을 생각이 없어도 “응 일단 놔두고 가”

하며 나에게 흥미가 딱히 없는 경우도 많고, 나처럼 일을 구하는 사람들이 몇몇 다녀가서

이 상황이 익숙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나도 이제는 그냥 이력서 돌리러 나온 게 아니어도 가방에 2~3장 정도 넣어 다니며 카페가 보이면 바로 들어가서 이력서만 전달해주고 나오기 달인이 되었다.








첫 번째 트라이얼 연락이 온 곳은

장 보러 자주 가는 마트 근처에 있는 한 브런치 카페였다.

집에 있는데 트라이얼 가능하니 라는 연락이 와서 오케이를 했고

옆에 있던 집주인 분께 말하니 아들인 킬라가 주말 알바를 하는 곳이라고 했다.

거기 음식도 맛있고 넬슨에서 유명한 곳이라며 아주 잘됬다며 축하해주셨다.

축하받긴 이른 것 같지만.. 근데 집주인 아들이랑 같이 일하면 좀 어색하겠는데..


약속한 날짜와 시간이 되어서 매장에 방문했더니

바로 들어가서 커피 하나를 뽑아 보란다.

갑자기..? 홀에 손님들도 있고 그 안에 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냥

유니폼 없이 들어가서 커피를 만들라는 건가..?


원래 소심한 성격에 해외에서 일하는 건 처음이라,

그리고 트라이얼을 통해서 나를 채용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확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매장마다 사용하는 그라인더 기계와 에스프레소 기계가 달라서

대충 뭘 누르면 되는지 설명을 간단하게 들었다.

나는 대학에서 바리스타 수업도 듣고 자격증도 따놓은 상태라 학교에서 배운 그대로 하면 되겠지

생각하고

원두를 내리고 탬퍼 뒤 쪽으로 탁탁 쳐서 원두가루가 균형 있게 배치되도록 하고

한 번 가볍게 누르고 탬퍼로 다시 탕 치고 다시 한번 꾸욱 누르고 에스프레소를 내렸다.


근데 그냥 머그잔이나 테이크아웃 잔에 바로 에스프레소를 담으면 되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내림 버튼을 누르고 샷 잔을 찾다가 급하게 싱글 에스프레소 2 잔에

에스프레소를 담아 버렸다.

그리고선 그걸 다시 테이크아웃 잔에 담고 스팀 우유를 한 다음에 하트라도 시도해 보려고 했으나 하트는 나오지 않았다...

거기 매니저인지 홀 총책임자인지 모르겠지만 그분이 보고서는

원두 가루 탬핑할 때부터 잘못되었다고, 그렇게 탕! 쳐버리면 안에 크랙이 생겨서

누른 보람이 없고, 또 왜 싱글 에스프레소 잔에 샷을 내려받느냐고 묻길래

당황한 나머지 아.. 아.. 말을 더듬거렸다.


이제 가보아도 좋다고 하길래 아.. 여긴 글렀구나..ㅠㅠ 싶었다.


두 번째 트라이얼은 시티 중심에 있는 한 작은 브런치 카페였다.

여기는 내가 제과제빵과를 나와서 주방에서 일해 본 경험을 보고선

오전엔 주방에서, 오후에는 커피 쪽을 트라이얼 해보자고 연락이 온 곳이다.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였는데 오전에는 남편 분이 주방에서 나를 트레이닝시켰다.

주문이 들어오면 빵을 굽고, 달걀도 수란, 스크램블 만들어서 내는 법, 베이컨이랑 버섯 굽는 법,

그리고 냉장고에 채워야 할 재료들을 손질하는 것 등등

주방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영어를 전부 알아듣지 못해도 대충 눈치껏 알아들어서

시키는 건 거의 수행을 했고, 못 알아듣는 건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시범으로 한 번만 보여주면 바로 할 수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물론 시키는 사람은 그렇게 못 느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주방 트라이얼이 끝나고 오후에는 홀로 나가 커피를 배웠다.

처음엔 그냥 트라이얼이라 커피 뽑아보라고 시킬 줄 알았는데

어느 선생님 같은 분이 와서 커피 만드는 법을 교육을 시켜주셨다.

그래서 오잉.. 교육을 하는 거면 지금 나를 채용하려고 하시는 건가?

그렇게 커피 몇 잔을 만들어 보고 이제 퇴근하면 된다고,

결과는 나중에 따로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신다.


그렇게 며칠, 일주일이 넘도록 기다렸지만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그냥 아예 연락을 안 줘서.. 여긴 뭘까 싶었다.


세 번째 트라이얼 볼 뻔(?) 한 카페.

시티 중심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있는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브런치 카페에

이력서를 들고 찾아갔는데 가자마자 그 자리에 매니저가 있어서

간단한 인터뷰를 바로 시작했다.

말이 빨라서 좀 알아듣기 힘들긴 했지만

웬만한 질문들은 다행히 다 알아들어서 대답을 다 했더니

그럼 트라이얼을 해보자길래 오 알겠다고 했는데

나는 왜인지 모르겠는데 당연히 나중에 트라이얼 날짜를 잡아서 연락을 줄 줄 알고

그 자리에서 오케이하고 그대로 매장을 나왔다.

뭔가 찝찝해서 매장 앞에 있다가 ‘아냐.. 뭔가 바로 트라이얼을 시키려는 분위기가 아니었어..’

이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매니저에겐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중에 다른 한국 워홀러 한 분이 그 매장에 이력서 들고 찾아가서

나처럼 똑같이 그 매니저 분께 간단한 질문을 받았는데

그 워홀러 분이 잘 못 알아들으시니까 한국어로

이 질문들도 못 알아들어서 일을 어떻게 할 거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나도 뭔가 매니저 분 딱 봤을 때 ‘한국인인가..? 아냐 그냥 동양인 일 수도 있지.’

했었는데 진짜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내가 인터뷰당했을 때는 내가 다 알아듣고 대답을 해서 트라이얼 해볼래?

라는 말까지 나왔던 것인데 나는 영어 질문들을 다 알아듣고

마지막에 트라이얼을 지금, 아니면 몇 분 뒤에 한다는 것만

못 알아듣고 그대로 매장을 나왔으니 황당했을 만도 하고, 그래서 연락을 안 줬구나 싶었다.

이런 바보가 다 있나...



네 번째 트라이얼 연락이 온 곳.

여기는 그냥 커피만 파는 커피 전문점이었다.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곳도 별로 없고 아주 작은 규모였지만

동네 사람들이 안에 서서 커피를 마시고 계신, 이 동네에선 나름 유명한 커피 집 인 듯 보였다.

시티에서 비치 가는 도로 중간쯤 위치해 있어 거리는 멀지만

일을 준다면 자전거를 빌려서라도 출퇴근을 하리 라는 생각이었다.

문자로 며칠 뒤인 언제, 몇 시에 매장으로 와서 트라이얼을 해보자고 연락이 왔다.

근데 여긴 커피 전문점이기도 하고 또 앞서 트라이얼을 다 망친 경험이 있어

꼭 붙어야 한다는 생각에 트라이얼 가기 전에 커피를 좀 알아보고 가야겠다 생각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는 한국과 다르게 플랫화이트라는 커피 종류가 있다.

지금이야 많이 유명해져서 한국에도 웬만한 카페에는 플랫화이트를 팔고 있지만

그 당시에 한국에서는 대중적이지 않은 메뉴였다.

그래서 나는 이론적으로는 라떼와 플랫화이트, 카푸치노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알고 있지만

커피를 못 마셔서 직접 마셔본 적이 없었다. 근데 카페에서 일하고 싶어 하면서

이 나라 커피 맛도 모르고 일을 하면 안 될 것 같아, 트라이얼 보기 전 날

가까운 카페에 가서 3종류 커피를 다 마셔보기로 했다.

오후에 마시는 것보단 오전이 조금은 낫겠지 싶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카페로 향했다.

한 카페에서 3종류 커피를 다 시켜서 마셔보면 되는 걸

나는 혼자 가서 그 3개를 다 시키면 종업원이 이상하게 볼까 봐 첫 카페에서는

라떼만 시켰다. 이런 소심한...

거품 폼 두께가 어느 정도 되는지 확인하고 맛만 살짝 보면 되는걸

나는 또 종업원이 열심히 만들어 줬을 텐데 거의 안 먹은 거처럼 보이면 실망할까 봐

얼굴을 찌푸리며 한 잔을 다 마셨다.









두 번째 카페에 가서는 플랫화이트를 시켰다.

이번에도 폼 두께를 확인하고 3분의 2 가량을 마시고 카페를 나왔고









마지막 세 번째 카페에 가서는 카푸치노를 시켰다.

역시 폼의 두께를 확인하고 카푸치노를 절반 정도 마시고 있었는데

‘띠링-’

문자 하나가 날아왔다.

내일 트라이얼을 보기로 한 그 카페에서 온 문자였는데

미리보기로 맨 앞에 영어를 보았는데 “Unfortunately"

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불행한 예감..

문자의 내용은 "불행히도, 우리는 이미 사람을 구했으니 내일 트라이얼은 취소한다" 는 내용이었다.

..... 하하.. 커피 마시기 전에 연락 주지.. 하하





그렇게 나는 남은 카푸치노 잔을 내려놓고

가방에 이력서가 두어 장 있지~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구글 지도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중,

내가 이력서를 내지 않은 카페가 있는지 검색을 해서 바로 이력서 돌리기에 나섰다.

그런데 웬걸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

카페까지 걸어가는데 몸이 비틀비틀거리고

심장소리 쿵쾅대는 소리가 너무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머리도 살짝 띵- 한 것이 아무래도 카페인이 너무 많이 들어간 듯싶다..

그렇게 비틀거리는 상태에서 카페에 들어가

“너네 사람 구하니?”

“아니 지금은 안 구하는데 구하게 되면 연락 줄게. 이력서 놓고 가.”

이래서 이력서를 전달해주는데 손이 달달달...

최대한 정상(?)인 것처럼 카페에서 나와

더 이상 돌아다니면 안 될 것 같아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카페 일 구하는게 쉽지도 않고, 도시도 작아 더 이상 돌릴만한 가게도 없고..

이제 웬만한 카페에 한 구석탱이에는 내 이력서가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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