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티너디 Sep 25. 2021

하산할 땐 항상 절이 있었다

공대.너드.산문

힘든 산을 타고 하산할 땐 항상 절이 있었습니다. 여름 낮에 바깥에 내놓은 물통처럼 내리는 땀을 훔치며 풍경을 들으면 어느새 땀이 말라있습니다. 하릴없이 불공을 드리는 승려들을 쳐다보며 회상에 잠겼습니다. 20대를 막 시작했을 때 저는 성직자들과 그들이 가진 아우라가 부러웠습니다. 무지렁이는 그들을 보며 여러가지를  착각했습니다.


1. 종교 시설을 꽤 효율이 좋은 판매 시스템이다.


2. 아우라를 만드는 데 드는 초기 시설비와 마케팅비 이후엔 인건비가 적고, 일부는 종교활동으로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다.


3. 수익 모델은 교리와 믿음의 유통망으로, 아무리 생산해도 원가가 거의 없는 걸 돈 받고 팔 수 있다.


4. 게다가 실재하는 물건과 다르게 감정이나 감각에 관련된 것들은 구매자 재정상황의 퍼센트로 값을 메길 수 있다.


5. 결국 생산원가는 거의 없고, 가격은 생산자가 지정할 수 있는 수익모델을 만들 수 있다.  


 무지렁이는 기존의 교리를 훔쳐와 저만의 사이비 종교체계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성직자들의 교리나 심성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행동과 언어 분석하고 패턴을 학습하면 아우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지렁이는 사람의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생각의 흐름이 방향이 여러 개인 순서도로 나타낼 수 있고, 그 흐름 사이를 여러 기술로 우회하고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억양과 호흡, 표정, 바디 제스쳐, 몸에 남은 흔적, 소지품, 행동 양식 등을 포함한 정보들로 생각의 경로를 파악합니다. 그리고 최면(설득), NLP(각인과 수정)과 인지행동치료, 상담을 통해 경로를 수정하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수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도서관에서 키워드로 검색해서 나오는 책들은 닥치는 대로 읽고 체득하고자 했습니다. 읽다 보니 파편화된 정보들과 예시들을 묶어 ‘설득’이나 ‘화술’로 판매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공부할수록 세 가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런 것들을 배울수록 제가 즐거워하던 것이 사라졌습니다. 전에는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 취미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분석과 패턴 파악에 대한 강박이 생긴 뒤, 사람을 만나는 모든 과정은 실험의 장이었고 머릿속은 분석하고 결과를 맹신하고 다음 행동을 설계하는 데에만 집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결국 실제 세상에 남는 것이 없는 사상누각일 뿐이라는 회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잘못되면 언어에 속박된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 저는 산에서 하산하며 다시 절을 마주했습니다. 저 분들은 갈수록 평안해지는데 왜 나는 불안해질까? 그 생각을 할 때 머릿속에 풍경 소리를 타고 나지막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분들이 외우고 있는 교리였습니다. 그제야 저는 올바른 심성과 교리가 가득 차야 행동에서 아우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럴 자신도,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께 짧게 인사를 드리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 이후에 산을 다시 오르는 일은 없었습니다. 종종 세상살이에 지치거나 자신이 산을 정복하고 왔다며 떠드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기억의 책장에서 먼지 쌓인 지식들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그리고 조소 섞인 한숨을 쉬고 다시 덮습니다.

 

 참으로 쓸데없는데 귀중한 시간을 버렸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헤르만 헤세'를 읽고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