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경이롭습니다. 태초의 동굴에서 전해 듣는 세상의 반향부터, 숨을 내쉬고 그 원동력으로 땅에 발을 딛고, 산산이 부서져 우주의 일부가 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경이의 찰나가 이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경이의 찰나를 잇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권태입니다. 거대한 덩어리로 보이는 경이의 틈을 바퀴벌레처럼 끝없이 비집고 들어가면 사이사이에는 그 순간에 대한 권태와 회의, 의심이 우리를 맞이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경이를 무한 정 늘리면 그 순간들이 감각이나 사고의 중독과 편견으로 부패해, 연속적인 권태로 변질됩니다. 결국 경이를 박제시키고 방부하는 것은 유한한 시간입니다.
시간의 유한성에 묶여있는 삶에 대한 경이를 자유롭게 하고, 그것을 우리의 의지에 맞추는 데 제일 자유로운 도구는 소설입니다. 다른 매체는 직면하는 순간부터 오감을 자극하며, 막 개봉한 통조림처럼 경험의 부패와 휘발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소설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글자의 조합은 눈에 보이지만, 그것이 곧바로 감각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꿰고 상상력을 극한까지 동원하여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의지입니다. 손바닥에 돋아난 열 개의 편모를 꼼지락거리며 타인의 삶에서 흥미로운 순간들만 뽑아냅니다. 경이로운 순간과 그 주위에서 머물며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할 수 있고, 지독한 권태가 쫓아온다면 손가락을 벌려 저 멀리 도망치기만 하면 됩니다. 몇몇 사람들은 권태로운 부분만을 찾아 나설 수도 있습니다. 다만 경험의 경이를 받아들이는 순간은 매번 다를 것이고 언제나 멈출 수 있습니다. 경험을 휘감아 끌어당기는 유한의 구덩이에서 벗어나는 순간입니다.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은 그 능력을 갖추는데 연습할 수 있는 단편들을, 평론과 대중이 엄선하여 시대별로 모아놓은 테마파크입니다. 다른 사람의 시간에 서보기도 하며 때론 공감하고, 어느 때에는 거리를 둡니다. 작가들이 정교하게 쌓아올린 상징과 비유를 구경하며 천천히 거닐 수 있습니다. 완전히 돌아다닌 후에는 각자의 비유와 상징, 전체적인 주제의 통일성을 통합하는 과정도 도전할 수 있습니다.그 후 이 소설이 쓰인 시간으로 발길을 옮겨 이 소설이 탄생하는 순간을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답을 찾지 못하고, 길을 잃고 손가락을 뻗어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질문을 시작하고, 그 질문을 향해 사고의 걸음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발은 단단해질 것입니다. 어느 순간에는 시간의 일방통행로에서 벗어나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에 도달할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읽는 순간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