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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티너디 Sep 18. 2021

뽕 뽑아야지

공대.너드.산문

뽕은 뽑아야지


뽕을 뽑는 데 최선을 다한 삶이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도 나는 뭔가를 하면 뽕을 뽑고자 해왔다. 하고 싶은 건 많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때였다. 다만 예전보다 뽕을 뽑을 체력과 호기심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20대 초반의 내 삶을 지배했던 뽕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본전, 원가라고 하기에는 이 단어에 포함된 감정을 담지 못 한다.


보통 이 말을 할 때는 이를 악물고 있거나 혀가 풀려있었다. 도박이나 주식을 할 때 뽕의 의미는 그 말을 꺼낸 시점에 따라 달라졌다. 손해를 볼 땐 본전에 그치지만, 원금에 도달했을 땐 의미에 슬그머니 사족이 붙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의 마음고생, 노력, 참가비와 수수료, 인건비 (물론 일을 하진 않았다) 등이 자주 붙었다.


원금에 도달했을 땐 돈은 최대에 감정은 격양되어있고, 욕심은 불어있었다. 사기꾼이 봤다면 고맙다 못 해 안쓰러울 정도였을 것이다.


불편함을 사는 여행에선 '가성비'라는 말이 붙었다. 미국여행에서 가성비를 챙기기 위해 호스텔에서 제공되는 아침으로 최대한 배를 채우고, 나머지는 대용량 당 음료를 들고 하루를 버텼다. 팁이 아까워 서빙을 하는 식당은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21살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뽕이었다. 나머지 국내.외 여행에서도 밥, 숙소, 차를 포함한 여러 도움을 받았고, 뽕 뽑는 경험을 샀다.

 

인생에서도 뽕을 뽑으려고 했다. 뽕을 뽑기 위해 화학공학과를 갔으며 시간과 노력 대비 수익이적은 글쓰기 대신 여러 지원활동들을 찾았다.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내 돈으론 가지 못 할 곳들을 가봤고, 만나지 못 했을 사람들과 강연에 들어가며 가성비 있는 경험을 했다. 대학원도 원래 가기 힘든 곳을 지원으로 인해 들어갔다. 하지만 뽕을 뽑을수록 인생의 목표는 꼬였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던 꿈은 독서활동과 함께 등한시되었다. 원하던 대학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일이 꼬였고 기약 없는 기다림은 단기 알바로 채워졌다. 인생에 100%는 없고 그런 말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되새겼다. 그렇게 들어갔던 대학원 과정과 회사에 적응을 하지 못 했다. 불면증, 우울증,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불안증세가 심해졌다. 주간 발표 전마다 하는 헛구역질과 불면증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대학원 수업을 따라갈 의지도 없었기 때문에 성적 미달로 대학원 졸업이 늦어졌다. 객관적으로 주위 사람들이 나쁘지도 않았다. 그 점이 나를 더 자학하게 만들었다.

나는 거기에 있을 준비도 경험도 없었고, 그 과정은 그런 준비가 된 사람을 원하던 곳이었다.


내 능력의 뽕을 뽑으려고 할수록 인생의 선택지는 줄어들고 예민해졌다. 어떤 것이든 최대로 뽑아낼 수록 결국 방향은 좁아지고 선택지는 줄어들었다.


아직도 나는 무언가를 할 때 뽕에 대해 고민한다. 다만 내가 원하던 방향으로 뽕을 뽑으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있어도 육체적, 정신적 체력은 갈수록 줄어들기에 귀찮아질 뿐이다.


뽕에는 항상 후회는 따라오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태어나고 자랐으니 평생 후회할 팔자라고 생각한다. 이젠 나한텐 뽕 뽑았다고 생각하는 때가 적기가 아니다. 내가 손해 봤고 상대방은 알맞다는 마음이 들 때가 적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당근마켓에 올린 물품의 가격을 내린 것을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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