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
문을 열었다. 서늘한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든다. 문턱을 따라 신발을 그었다. 왼손으로 문 손잡이를 잡고, 나머지 손으로 문턱을 잡고 몸을 넘어질 듯 기울였다. 습한 곰팡이 냄새가 코 끝을 찔렀다. 그는 한참 동안 그 자세로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한 채,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부엉이처럼 고개만 두리번거렸다. 한 번의 심호흡 후, 그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뛰어 올랐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이번에도 똑같았다. 열흘 넘게 그는 문 밖의 기억을 잃어버렸다. 문 밖을 나서면, 곧바로 그는 문을 닫고 있었다. 처음엔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렸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엔 자기 자신의 기억력에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세 번째부턴 몸의 말초부터 서늘하게 굳어버렸다. 10번이 넘어간 후부턴 방의 변화를 기록했다. 에어컨을 끈 후 문을 나섰다. 방 안으로 들어설 땐 후끈한 여름 공기가 몸을 훑었다. 방을 나서면 시간은 흐르고, 외부와도 차단이 된 것은 아니라는 것에 안심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그의 머릿속엔 또 다른 불안함이 스쳤다. 그는 튀어나가 냉장고를 열었다. 하루 별로 소분해둔 야채들의 끝부분은 이미 갈변 하는 중이었다. 그는 한숨을 쉰 뒤 신경질적으로 냉장고를 닫았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확실하다. 단지 내 기억만 수술용 나이프로 도려낸 것처럼 말끔하게 사라질 뿐이었다. 핸드폰도 조용한 걸 보니 회사는 결근하지 않는 것 같다. 그는 눈을 감고 냉장고를 따라 미끄러지듯이 주저 앉았다.
‘또 뭐가 문제지?’
그는 체스 말 같은 사람이었다. 정해진 규칙으로만 움직이고, 남과 만날 때면 먼저 꺾거나 멈출 뿐이었다. 그의 칸 주위는 복잡한 수들이 얽혀있었지만, 칸 안으로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다.
‘내가 원했던 거잖아.’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아무런 고생과 상처의 기억도 아물어버리는 공간에 온 것이다. 그가 그렇게도 원하던 안식처다. 고개를 들고 방 안을 훑었다. 요일 별로 나뉘어져 바닥에 정렬된 옷 세트도, 각 맞춰 개진 이불도 평소와 같았다. 달라진 건 없었다. 그나마 시들어가는 야채가 말썽이었다. 그는 야채를 주문하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그 순간 다시 손가락이 굳었다. 모니터 옆 창문에서 쏘아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시야에는 존재하지만, 뇌는 서둘러 지우는 사각지대에서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초자연적 현상에 한껏 예민해진 본능이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던 불안감을 터트렸다.
그는 무선 마우스를 집어 던졌다. 내던져진 플라스틱 마우스는 파열음을 내며 바퀴벌레처럼 여러 파편으로 쪼개졌다. 헝클어진 머리와 붉게 충혈된 눈동자만이 거울 속에서 그를 같이 노려다 보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