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 그리고 나의 정답 사이에서
남편이 절 보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는 가끔 사춘기 청소년 같아".
가장 가까운 가족인 남편이 이 말을 저에게 한 게 뭔가 의미심장하죠. 절 오래 본 사람들이 이따금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30대 후반인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청소년기에 할 법한 진로고민을 지금 하고, 계속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 모습이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주변에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거나, 한 곳에서 쭉 오래 있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저 스스로 더 별난 사람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인생이 여러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거든요. 이 직업, 저 직업에 흥미를 느끼는 건 제 특유의 고질병 같은 습관입니다. 아직 자아를 찾아가는 중인가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계속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게 됩니다. 이 글은 그 과정에서 가장 오래 고민했던 결정, 바로 퇴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전에 다녔던 대기업(이하 A회사)은 저에게 참 감사한 곳이었습니다. 회사는 안정적이었고, 복지도 괜찮았으며, 동료 및 상사분들도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별다른 스펙 없었던 30대 초반의 신입을 받아준 소중한 회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퇴사를 고민할 때가 되자 망설임이 컸습니다. 5년 넘게 근무하면서 30대 중반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회사를 가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이런 결론에 닿았습니다.
‘이 일을 하는 동안 계속 방황하며 살겠구나.’
누군가에겐 안정적이고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제게는 아니었습니다. 남은 날 절반을 이 일로 채운다면 그건 제 삶의 모양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회사는 경제적 수입을 창출하는 곳이고, 자아는 다른 곳에서 찾아라'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자아를 실현하는 것에만 목적을 둘 때 실제로 문제가 생기기도 해요. 하지만 삶의 방식에 정답은 없고 각자의 삶만큼 다양한 해답이 존재합니다. 그 명제는 제 삶의 답이 아니었음을 몇 년에 걸쳐 깨달았고, 그것이 결국 제 퇴사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사직서를 내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새로운 시작이 무서웠던 것 같아요. 도전하기에 30대 후반은 조금 늦은 나이 아닐까? 퇴사하면 돌아오지 못하는데,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지? 주변 사람들의 걱정하는 마음도 내심 신경이 쓰였었고요. 한동안 인터넷, 브런치, 유튜브 등 각종 플랫폼에 퇴사라는 단어를 수없이 쳐보며 고민했던 기억이 새록합니다.
결정적인 터닝포인트는 건강검진이었습니다. 의심 소견이 있어 정밀 검사를 하자는 말을 들었는데, 그 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꿈에 대한 아쉬움'이었습니다. 결과는 다행히 별 문제가 없었지만 퇴사 결정에 가장 큰 동기가 되어주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인생의 마지막에서 돌아봤을 때 지금 퇴사하지 않으면 분명히 후회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그 후로도 수없이 고민했고 사직서를 제출하는 아침까지 마음이 오락가락했습니다. 제출 버튼을 누르던 순간 손끝이 떨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 돌아보면 왜 그랬나 싶지만, 그만큼 정이 많이 들었던 감사한 회사였나 봅니다.
그 후에 바로 다른 회사로 이직했기 때문에 슬퍼하거나 불안할 겨를은 없어서 아직 후회는 남지 않지만 이후에 그런 감정이 들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항상 같은 답을 내릴 것을 알기에 지금 걸어가는 길에 만족하면서 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갈림길 앞에 서게 됩니다. 해답지는 없고 나침반도 없는 길이죠. 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답은 타인이 정해준 정답이 아니라, 스스로 매번 다시 쓰는 문장 속에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오늘도 여전히 사춘기 청소년처럼 또 다른 길을 걸어보고 있습니다. 그게 제 방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