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실패하기 위해 사는 삶

by 단귤
젊음이 타고 남은 재 위에 놓인 불꽃
그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대의 사랑이 더욱 강해져
머지않아 떠나야 하는 것을 잘 사랑하리


셰익스피어 소네트의 일부인 이 글은 책 속 주인공인 윌리엄 스토너가 문학과 사랑에 빠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그 이전까지는 농부의 아들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처리해 내는 삶에 불과했던 스토너가 문학과 사랑에 빠지게 하는 글이다. 어쩌면 이 글을 만나 사랑에 빠진 이후의 스토너의 삶은 이 소네트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귀결될지 모른다. 스토너는 삶에서 좋은 것들을 찾아 헤맨다. 진리, 선, 아름다움 그리고 사랑. 하지만 위의 글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그 모든 시도는 시간과 죽음 앞에 타버리고 결국 재만 남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재 위에 남은 작은 불씨를 스토너는 인생 전반에 걸쳐 놓지 않고 소중히 지켜냈고 그 미약한 불씨에서 우리는 그의 삶을 강하고 아름답다고 느끼게 된다.


빼앗긴 사람들

스토너의 삶은 사회의 보편적인 기준에 따라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실패했다고 보인다. 이디스와 첫눈에 반해 결혼했지만 사랑에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해 긴 수감생활 같은 결혼 생활을 했고, 딸 그레이스에게 애정을 쏟았지만 부부간의 불화 속에 그레이스는 우울의 늪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캐서린이라는 학생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세간의 시선에 못 이겨 서로의 손을 놓았고 대학 내 친구인 고든 핀치와 데이비드 마스터터와 함께 우정을 나누었지만 그 사이 거리감은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교수로서 열정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쳤지만 그를 기억하는 학생은 적었고 눈에 띄는 학문적 성과도 남기지 못했다. 그가 추구했던 “연인, 학생, 자녀, 동료”로서의 사랑의 관계는 결국 세상이 그어 놓은 여러 한계들에 의해 빼앗긴 것들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윌리엄 스토너가 빼앗김의 고통을 받는 까닭은 무언가 추구하고 바라는 존재이기에 때문이다. 데이비드 마스터가 묘사한 것처럼, 스토너는 돈키호테처럼 꿈꾸는 자이자 꿈꾸기 때문에 연약한 자이다. 항상 더 좋은 것이, 더 배워야 할 것이 삶에 남아있다고 생각하지만 종국에는 그 어느 것도 온전히 소유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는 이상주의자이기 때문에 세상의 더러움과 불공평함, 악함에 약한 존재가 된다. 그는 너무나 올곧고 이상주의적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구부러지지 못한다. 그의 순종적인 기질과 맞물려 그는 그저 이러한 것과 맞서 싸울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그저 자신을 잡아먹도록 내버려 둔다.

이런 운명은 단순히 스토너만의 것이 아니다. 누구든 죽음 앞에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운명이다. 따라서 대학은 이런 무능력하고, 만족하지 못하며, 연약한 사람들이 모인 요양원이 된다. 고든 핀치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좋은 영향력을 끼치기를 바라지만 그는 이를 위한 희생이나 타락까지는 감수할 수 없다. 결국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그 무엇도 바꿀 수 없음을 깨닫게 되고 결국 실패할 무능력한 자로 남는다. 데이비드 마스터는 세상의 문제와 악함에 대해 잘 알고 있을 정도로 현명하지만 그와 함께 공허와 무력감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행동하지 못하고 결국 그의 말들은 불평불만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은 죽음을 망각한 듯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마스터가 인용한 말처럼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등장하는 에드가가 미치광이 톰으로 위장해야 한다. 평범한 사람을 흉내내기 위해서 여러 타협과 체념은 어쩌면 불가피한 것들일 것이다. 수많은 실패와 포기, 그리고 결국 삶의 모든 것을 빼앗길 운명이라고 해도, 우리는 스토너의 삶을 실패라고 감히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의 묵묵하고 성실한 삶에서 그는 한 명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빼앗기지 않고 지켜냈던 그 미약한 불씨는 무엇일까?


각자의 오답을 향하여

스토너의 첫사랑은 문학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만난 그 순간, 비로소 그의 자아가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일생일대의 사랑의 대상이었던 캐서린을 사랑하게 된 것 또한 캐서린이 문학에 가진 열정과 뛰어난 식견 때문이었다. 그의 문학에 대한 사랑은 캐서린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된다. 이 사랑은 함께 비슷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으로서의 동료애와 닮아 있다. 딸과의 관계에서도 그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열정을 발견한다. 그의 삶의 시작과 끝은 문학과 대학에 있었다. 사생활에서는 끝없이 회피했던 그였지만 일에 있어서는 타협하지 않고 맞섰다. 자격 없는 사람이 강단에 서는 것은 옳지 않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그는 박사 학위를 받기에 불충분한 학생이었던 워커가 강단에 서는 것을 궁극적으로 막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를 막아냈다. 그리고 그 결과 향후 20년간 워커를 지지하던 동료 교수인 로맥스로부터 온갖 괴롭힘을 당하지만 묵묵히 모두 감내했다.

그렇게 온 일생을 바쳐서 학문과 가르침에 열정을 쏟은 그였지만 그는 삶의 마지막에서 특별한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문학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원했는지 혹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랐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평생에 걸쳐 남긴 책은 아무런 쓸모도 없고, 그가 가르치고자 했던 것들은 실제와 말 사이의 커다란 간극 속에 사라져 전달되지 못했다. 그가 목적하던 것이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하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에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그의 책이었다. 그 내용과 가치에 대한 의문은 하찮은 것이었다. 다만 그 책은 그가 삶 전체에서 그가 자신이 찾던 이상향에 가 닿기 위해 시도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그 시도가 그를 '그'답게 만들어 주었고 그의 전부가 되었다. 삶의 수많은 좌절과 공허에도 계속해서 어떤 방향성을 품고 미련하리만치 성실하게 묵묵히 삶을 걸어간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감동을 느낀다. 어쩌면 우리 모두 역시 삶에서 무엇을 품고 있던, 종국에는 빼앗길 운명일지 모른다. 하지만 죽음 앞에 남는 것이 고작 재뿐이라고 해도, 우리가 꿈꾸는 그것에 가 닿기 위해 어떻게 살았는지가 결국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지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각자만의 오답을 향해 각자만의 방법으로 끝없이 손을 뻗는 존재일지 모른다.


이 책은 어떠한 위대한 업적도, 극적인 반전도 없다. 다만 독자들은 스토너의 조용한 여정을 한 장 한 장 따라가며 무엇이 스토너의 삶에서 감동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지 곱씹게 된다. 그 삶을 따라가며 독자는 세상이 정한 성공과 실패의 기준 너머, 자신만의 불씨를 묵묵히 지켜내는 한 인간의 고집스러움 성실함과 그 삶의 과정에야 말로 진정한 위대함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삶의 끝까지 겨우 지켜냈던 그 불씨마저도 죽음 앞에서는 꺼져 버리고 말 것이다. 모든 노력과 시도가 마지막에 재로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는 각자만의 사랑과 신념을 품고 끝없이 뻗었던 그 수많은 시도와 과정 속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완벽한 정답이 아니라, 각자가 내보이는 각자만의 고유한 오답과 치열했던 순간들이 결국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책을 덮고 나면, 누구나 스스로에게 묻게 될 것이다. 당신이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당신만의 불씨는 무엇인가 하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콘클라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