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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들 사이에서

익숙함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달라지는 것들

by 김남정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하루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삶은 조금씩 변한다. 그 변화를 만드는 건 결심이 아니라 반복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분명히 믿게 되었다.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 반복하는 사람이 결국 자신의 삶을 만든다. 나는 그것을 내 삶의 결이라고 부르고 싶다.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반복되지만, 반복된다고 해서 단조롭지 않고, 나를 닮아가고, 나를 바꾸고, 결국 나를 지켜내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바꾸는 건 어떤 거대한 계기보다, 끊기지 않는 반복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다짐 보다 '유지'를 더 중시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무엇을 새로 시작할 것인가?"보다 더 중요해졌다.

아침이 되면 몸이 먼저 운동복을 찾는다. 책상에 앉으면 글을 쓰기 전에 어제 공책에 적어 놓은 단어와 문장들을 먼저 다듬고 개요를 짠다. 책을 읽다 마음에 걸리는 구절이 나오면,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메모 앱을 연다. 이런 나의 행동들은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몸에 남은 방식이다.


운동을 한다고 해서 몸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하루 30분 스트레칭이 100일을 지나면 바뀌는 건 몸이 아니라 '익숙한 삶의 틀'이 된다. 책을 한 권 읽는다고 생각이 깊어지는 건 아니지만, 하루 20쪽씩 읽는 사람은 어느 순간 '생각이 쌓인 사람'이 된다. 글을 한 편 쓴다고 나를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매일 문장을 쓰는 사람은 스스로를 설명할 언어를 갖게 된다.


예전의 나는 하루에 몰아붙이는 건 잘했지만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던 거 같다. 그런 내가 바뀐 건, 의지가 강해져서가 아니라 '끊어지지 않도록 나를 설계'했기 때문이었다. 운동은 '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하루를 정돈해 주는 의식처럼 되었다. 무리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시간은 오히려 생각을 쉬게 해 준다. 땀을 흘리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근육은 삶을 버티는 가장 현실적인 힘이 되어 준다. 몸을 돌보는 일이 곧 마음을 돌보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제는 시간보다 '습관의 자리'가 되었다.


살림도 반복의 범주에 있다. 예전엔 정리가 '치움'이라는 행위에 그쳤지만, 지금은 '살림을 간결하게 정돈하는 일'이 곧 나를 정돈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정리는 그 구조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물건을 줄이기 시작한 건 미니멀리즘이 멋있어 보여서가 아니라, 결정해야 할 것이 많아질수록 생각할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래 쌓인 물건들을 꺼내 놓으면 물건이 아니라 시간이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구분하는 과정은, 생각을 정리할 때의 과정과 닮아 있다. "이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가?"라는 질문 하나가, 물건에도, 관계에도, 감정에게도 적용된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다.


책상을 비운날은 글쓰기에 필요한 시간이 아니라 글로 진입하는 시간이 짧아졌다. 정리는 물건과 거리를 두는 일이 아니라, 집중과 가까워지는 일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주방을 정리했을 때였다. 10년 넘게 쓰지 않는 그릇을 내보내고, 설거지하기 쉬운 그릇만 남겼다. 그날 이후로 식사는 '차리는 일'이 아니라 '즐기는 일'이 되었고, 설거지는 '귀찮은 일'이 아니라 '마무리되는 기쁨'이 되었다. 살림을 줄인 것이 아니라, 삶에서 마찰을 줄인 것이었다.


글쓰기는 도구와 방식 대신 '반복 가능한 최소 단위'를 정했다. 그리고 독서는 목표 권수를 정하지 않고 '멈추지 않을 분량'을 정했다. 꾸준함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다.

글쓰기는 결국 나 자신에게 말을 거는 행위이기도 하다.

"나는 왜 이 생각을 반복할까?"

"왜 그렇게 느꼈을까? 정말 그런가?"

"이 행동을 1년 뒤에도 하고 있을까?"

질문을 던지는 순간, 나는 나를 한 발짝 바깥에서 바라보게 된다. 성찰이란 거창한 철학의 무게가 아니라, 작은 질문을 망설이지 않는 자세에서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멈춰 있다는 느낌이 들면, 나는 배움을 시작한다. 언어를 배우거나, 새로운 플랫폼을 익히거나, 요리법을 하나 더 체득한다.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 살아 있다는 감각을 얻는다. 배움은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정체되지 않기 위한 움직임이다. 거창한 목표는 잊어버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복은 잊으면 살아가는 방식이 흐려진다. 목표는 변해도 상관없지만, 몸에 밴 방식은 쌓여서 나를 만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특별한 결심 없이 같은 일을 반복한다.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정리하고, 배운다. 이 삶이 누군가에게는 지루해 보일 수 있다. 똑같은 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코 똑같지 않다.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내가 미세하게 다르듯,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도 아주 작은 차이들이 숨어 있다. 차이를 기록하지 않으면 알아채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계속 쓴다. 살아있는 '느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쓴다.


나는 이제 안다. 삶을 크게 바꾸려 할 때 어지럽고, 작게 반복할 때 단단해진다는 것을. 반복은 나를 묶는 것이 아니라, 나를 정확하게 하는 힘이다. 나는 다짐하지 않는다. 대신 유지한다. 유지되는 것이 결국 나를 설명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같은 날들의 결을 곱게 이어가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익숙한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숨어 있다. 나는 그 힘을 믿는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 반복이 나를 만들어 왔고, 앞으로의 나도 거기서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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