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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쁨을 소홀히 여기지 말자

10월 마지막 날을 보내며

by 김남정

별것도 아닌 일에도 마음이 기울 때가 있다. 그저 그런 하루의 한 장면, 지나치면 사라질 만큼 사소한 순간. 그러나 그런 마음들이 내 마음의 중심을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어쩌면 그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에도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고 베란다 식물들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그 풍경이 참 따뜻했다. 커피를 내려놓고 한 잔을 그저 바라보는 일. 아무런 말도 없이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요즘 내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남편의 표정은 밝았다. 아킬레스건 수술 후 긴 회복의 시간은 생각보다 더디다. 움직임이 제한되자 답답함이 쌓이고, 오늘은 활력이 없어 보인다. 그런 남편의 표정을 살피며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함께 있는 내 마음도 조심스러웠다. 서로에게 조심스러운 공기가 흐르는 나날을 견뎌야 한다.


그러던 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은 기쁨을 만들자. 그게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드라이브를 제안했다.

"강화도나 한 바퀴 돌고 올까? 운전은 내가 할게."

남편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햇살이 따뜻했던 10월 마지막 날. 차를 몰고 강화도로 향했다. 창문을 반쯤 내리니 가을 공기가 차 안으로 스며들었다. 해안도로에 들어서자 은빛 억새가 한껏 몸을 흔들고 있었다. 바람 따라 물결처럼 일렁이는 억새밭은 그 자체로 한 폭의 풍경화였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안전운전은 내가 맡을게. 당신은 창밖 풍경만 마음껏 감상해."


그 순간 남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그 미소와 달리는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창밖으로 스쳐가는 바다빛도, 그날따라 특별하게 다가왔다.


점심은 노년의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서 먹었다. 뜨끈한 칼국수와 찐만두 한 접시. 특별한 메뉴도 아니고, 근사한 장소도 아니었지만 이상하리만큼 맛있었다. 남편은 한입 먹더니 웃으며 말했다.

"뜨근한 바지락 국물이 시원하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 한쪽이 따뜻해졌다.


돌아오는 길엔 가을 하늘이 더 맑고 따뜻했다. 차창 너머로 오후의 뭉게구름이 흘러가고, 길가의 나무들이 조금씩 빛을 잃어가며 계절의 문턱을 넘어가고 있다. 나는 그 풍경을 눈에 담으며 조용히 생각했다.


작은 기쁨은 멀리 있지 않다. 그건 늘 우리 곁에 있었고, 우리가 그것을 '기쁨'이라 부르지 않았을 뿐이다. 커피 향기 속에, 아침 햇살 속에, 남편의 미소 속에, 그리고 국물 한 숟가락의 따뜻함 속에 이미 삶은 충분히 빛나고 있었다.


요즘 나는 그런 기쁨들을 의식적으로 찾아내려 한다. 그저 하루하루를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그 안에 숨어 있는 빛을 붙잡기 위해서다. 내가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말했듯, "모든 진정한 삶은 만남이다." 내게 작은 기쁨이란 바로 그런 만남이다. 사소한 것들과의 조우, 그로 인해 잠시 멈추는 시간, 그리고 내 안에 잔잔히 일렁이는 감정의 파문.


나는 이제 거창한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대신 오늘의 평범함 속에서 조금 더 섬세하게 살아가고 싶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 김밥 두 줄을 말고, 어묵탕을 함께 나누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일.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 일상이, 그 기쁨이, 내가 그토록 원하던 '살아 있음'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작은 기쁨을 소홀히 여기지 말자. 그것이야말로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 그리고 언젠가 이 계절이 지나 다시 봄이 올 때, 나는 또다시 이런 말로 나 자신을 다독일 것이다.

"그날의 바람, 그날의 빛, 그날의 웃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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