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 먹일 것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팔순을 훌쩍 넘긴 엄마의 하루
지난 주말, 엄마에게서 카카오톡 사진이 여러 장 도착했다. 바구니 가득 담긴 냉이였다. 깨끗이 손질해 씻어 바구니에 담긴 냉이는 뿌리는 뽀얗고 통통했다. 잎은 겨울을 지나고 있는 흔적처럼 짙고 질겨 보였다.
엄마는 친구분들과 겨울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길에 지난가을 고구마를 심어둔 밭고랑을 갈아엎어 놓은 곳에서 냉이를 캐왔다고 하셨다. 꽁꽁 언 땅이었지만 냉이는 눈에 띄었고 생각보다 쉽게 손에 잡혔다며, 산삼이라도 캐온 사람처럼 들뜬 목소리였다.
팔순을 넘기신 지 한참인 엄마는 지금도 사계절을 산에 오른다. 등산복을 챙겨 입고 양손에 등산지팡이를 짚은 채, 예전보다 느린 걸음으로 산길을 천천히 오르신다. 숨이 차면 쉬고, 무릎이 아프면 잠시 멈춘다. 그래도 산에 오르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내려오는 길에 고구마를 캐낸 빈 밭을 보고, 흙을 보고, 풀을 본다. 냉이는 그렇게 엄마의 눈에 먼저 들어왔다.
나는 냉이를 봄나물로만 알고 있었다. 연둣빛 새순이 올라오는 3월쯤에나 먹는 풀, 꽃샘추위 속에서 향을 퍼뜨리는 나물 말이다. 그런데 한파가 이어지는 요즘에도 냉이는 땅속에서 살아 있다. 냉이는 뿌리가 깊어 추위를 견디는 풀이다. 겨울 냉이는 잎이 작고 질기지만, 향과 영양은 오히려 더 진하다. 그래서 예부터 냉이는 '사계절 나물'로, 어려운 시절 밥상을 지켜준 풀이었다.
엄마에게 냉이를 캐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다가 보였고, 손이 움직였을 뿐이다. 그런데 냉이는 결국 자식에게 온다.
"요즘 대구철이잖아. 냉이 넣고 끓이면 시원해."
엄마의 말은 늘 요리로 끝난다. 자식의 밥상을 먼저 떠올리는 말이다.
요즘은 대구가 제철이다. 겨울 대구는 살이 단단하고 국물이 맑고 시원하다. 엄마가 캐온 겨울 냉이는 결국 냉이 대구탕이 되었다. 무와 미나리, 버섯, 마늘을 넣고 먼저 끓인, 뒤 마지막에 냉이를 넣었다. 봄 냉이처럼 화사하지 않지만, 겨울 냉이 특유의 달큼한 향이 국물의 깊이를 더했다. 한 숟갈 뜨니 속부터 풀리는 깊은 맛이었다.
냉이는 흙이 많으므로 물에 오래 담그지 말고 여러 번 물을 갈아 씻고 잔뿌리는 정리하되, 굵은 뿌리는 살려두는 것이 좋다.
- 겨울 냉이 대구탕 끓이는 방법
*대구는 토막을 내어 소금물에 살짝 씻는다.
*디포리, 멸치, 다시마, 양파껍질, 얼려둔 대파 뿌리로 육수를 낸다.
*무를 큼직하게 나박 썰기 해서 끓여둔 육수에 먼저 넣고 끓이다가 씻어둔 대구를 넣는다.
*끓기 시작하면 준비해 둔 야채를 기호에 맞게 익는 순서대로 넣는다(미나리, 버섯, 두부, 마늘).
*마지막에 냉이를 넣고 국간장과 젓갈로 간을 맞춘다(식성에 따라 고춧가루와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어 얼큰한 맛을 내도 된다). 겨울 냉이는 오래 끓이면 질겨지므로 마지막에 넣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의 삶은 늘 이렇게 계절을 따른다. 제철을 알고, 몸이 허락하는 만큼 움직이고, 그 수고를 자식에게 건넨다. 자식들은 어미 어른이고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데도, 엄마의 하루는 여전히 '먹일 것'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요즘 겨울 날씨가 유난히 춥다. 기후가 달라졌다는 말도, 농사가 힘들어졌다는 말도 흔하다. 그런데도 어떤 삶은 변하지 않는다. 겨울산을 오르고, 얼어붙은 밭에서 냉이를 알아보고, 그걸로 국 한 그릇을 끓이려는 마음이다.
바구니 가득 담긴 겨울 냉이를 맛있게 다 먹었다. 하지만 사진은 남았다. 겨울산을 오르내리며 캐온, 팔순을 훌쩍 넘긴 엄마의 사랑 한 바구니. 그 사랑은 오늘도 말없이 겨울산을 오르내리며, 제철을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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