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개인적인 것이 창의성이다

아이들 (어른)의 창의성이 사라지는 것을 담은 영화 어라이크 (Alike

by 김남정

주변 환경이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일을 반복하는 습관은 분명 그 사람의 취향이자 색깔이다. 어떤 일을 반복한다는 것은 그 일에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상은 취향(색)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이분화되어 있을까.



우리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산다. 비단 어른들만의 일은 아니다. 유치원을 가는 순간부터 각 단계마다 계단을 오르느라 앞만 보고 간다. 옆을 볼 시간이 없다. 그렇게 우리는 목표를 향해 똑같이 연령에 맞는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오른다. 어떤 사람은 목표를 향해 쭉쭉 나아가지만,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



며칠 전 필라테스가 끝나고 나오는데 함께 운동하는 회원이 내게 '커피 한잔하실 시간 있으세요?'라고 했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운동 후에 마시는 커피는 참 맛있었다. 산미가 있는 것보단 고소한 맛을 좋아한다는 그녀와 나의 커피 취향(색)이 잘 맞았다. 커피 맛 이야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저~ 뭐 하나 여쭤볼 게 있어서요."



라며 우물쭈물했다.



"그럼요, 얼마든지요."



라고 나는 대답했다. 막내 동생뻘 되는 회원이 날 볼 때마다 살갑게 이야기하고 커피까지 마시자고 하니 기분이 매우 좋았다.



어렵게 꺼낸 이야기는 다름 아닌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 학습 이야기였다. 딸아이가 모(학습지)을 그만하게 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 생각에는 내년에 중학생이 되는데 지금 학습지를 그만두는 것이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딸아이는 똑같은 문제(유형)를 매일 푸는 것은 '노동'이라며 차라리 스스로 문제집을 풀고 엄마가 채점을 해주면 좋겠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술(그림 그리기)은 하루 종일 그려도 싫증 내는 법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다 성장한 딸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조언을 구하는 것이었다. 선뜻 대답하기가 망설여졌다. 내가 그녀보다 앞선 학부모 경험은 있지만 조심스러웠다. 나도 딸들 초등학생 때는 학습지로 공부를 시킨 학부모였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는 뭐라고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놀라운 것은 20년 전 초등학생 딸아이가 했던 학습지 공부가 여전히 아이들에겐 힘든 것이라는 점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왜 교육 방법은 그대로일까. 많이 안타깝다.



내 입에서 명징한 조언이 나올 것을 기다리는 그녀의 눈빛에 간절함 가득했다. 그 순간 불현듯 '어라이크' (Alike, 2015)라는 짧은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본 지 꽤 오래되었지만 울림이 컸기 때문이리라. 8분짜리 짧은 애니메이션, 지금도 생생한 장면들이다.


KakaoTalk_20250626_150204176.jpg ▲어라이크 포스터 사진 어라이크는 8분짜리 애니메이션 영화다. ⓒ 네이버 영화


'어 라이크(Alike)' 내용은 이렇다.



<무채색의 도시에서 유일하게 색깔이 있는 존재가 있다. 주인공 아이와 나무 밑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악사만 색깔이 있다. 그 아이는 바이올린 연주를 보면서 색이 진해진다. 아이는 막 기뻐한다. 아빠는 아이에게 책가방을 주면서 회사로 출근을 한다. 아빠 역시 아이랑 있을 땐 블루색이었다. 출근한 아빠의 책상 위에 일감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그 순간 힘을 잃고 무채색인 사람들과 함께 일에 익숙해진다. 이 아빠가 힘들게 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 컬러가 바뀌냐 하면 아이가 막 달려와서 아빠에게 안기는 순간에 블루색으로 바뀐다. 너무나 감동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 아이가 학교에서 알파벳을 써야 되는 종이에 알파벳은 쓰지 않고 오늘 본 꽃과 나무 그림을 그린다. 선생님은 이를 무시한다. 그리고 아빠에게도 자랑을 하는데 아빠 역시 아이의 그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아이는 실망한다. 아이는 점점 알파벳을 똑바로 쓰는 아이가 돼간다. 그렇게 학교에서는 자기의 색을 잃어 가는 방법을 배운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노란색이던 아이의 색은 점점 무채색으로 변한다. 너무 슬펐던 기억이다. >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도 무채색 어른으로 성장했고, 내 딸들 역시 무채색으로 성장시켰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하다. 지금도 우리는 매일 무채색 교육을 하고 있다. 결국 '세상에 어떤 일도 정답은 없다' 어떤 길이 옳은 길인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좀 느리더라도 내 아이의 속도에 맞는 학습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우선 부모의 용기 있는 결단과 아이를 지켜볼 줄 아는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구조화된 학습 시스템에 아이의 창의성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난 그녀에게 '어라이크' 애니메이션 영화를 추천했다.


미술을 하루 종일 그리는 아이가 무지갯빛 어른(취향, 색, 창의성)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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