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살아요.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으면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디디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으면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으면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으면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아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 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으면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도종환>
이 시는 어쩌면 내가 바라는 이상형이었나 보다.
34년을 부부로 살아온 당신이
이제는 구절초처럼 고개를 끄덕여 주고 표정만 보아도
무엇이 필요한지 느낌이 오는 그런 사이가 되어 강물처럼
함께 흘러갈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둘이서만 여행해도 심심하지 않고
둘이서만 밥을 먹어도 맛있고
둘이서 영화를 보며 공감하고
둘이서 산책을 하고
가끔 티격태격 의견 충돌이 있더라도
금세 풀 줄 아는 나이
이렇게 함께 건강히 여행할 수 있는 시간들이
얼마나 허락될지 알 수는 없어도
즐겁게 우리들의 시간들을 채워나가길....
당신과 나,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서로를 지지해 주며 살기로 하자.
당신과 내가 흐르는 강물처럼 손을 잡고 인생길 가는 동안
물오리 떼 悠悠自適 쉬어가는 그런 날들 이 기를.....